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회장 “고어사 독점제품 공급 안할 경우 1인 시위 등 실력행사 나설 것”

고어사(社)가 소아용 인공혈관 등 일부 제품을 국내 재공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소아심장수술 중단위기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보였지만 재공급에 필요한 구체적인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고어사와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인공혈관 공급중단으로 인한 심장수술 중단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

특히 이번에는 인공혈관 재공급을 위해 물밑에서 고어사와 협의해왔던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도 강경하게 나가겠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2017년 9월 고어사는 국내 인공혈관사업에서 철수했다. 당시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와 대한중재혈관외과학회 등 학계를 중심으로 고어사 철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철수를 막지 못했고, 인공혈관 사재기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재기했던 인공혈관이 올초 바닥을 드러내면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소아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는 위기에 직면했고 이로 인해 2017년 철수 당시보다 사회적으로 더 이슈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3월 식약처는 인공혈관 공급 정상화를 위해 고어사와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3월 15일 고어사와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당장 필요한 인공혈관 20개만을 공급받았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

하지만 일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공혈관 20개 공급 이외 고어사와 정부간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공혈관 공급 정상화는 왜 어려울까

사실상 2017년 고어사 철수 후부터 지금까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은 정부보다는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흉부외과학회다.

3월 15일 인공혈관 20개 긴급 공급 때도 고어사와 처음 대화를 한 건 식약처가 아닌 환우회였다. 이 과정에서 환우회는 고어사를 직접 비난하지 않고 정부에 인공혈관 공급 정상화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움직여 왔다.

이랬던 환우회가 드디어 고어사를 타깃으로 인공혈관 공급 정상화를 위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금 상황에서는 식약처 등 정부와 고어사 협상을 통해서는 인공혈관 공급 정상화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고어사 인공혈관사업 국내 철수 뒷 이야기를 풀어놨다.

안 대표는 “2017년 3월 경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와 통화 중 고어사가 국내 인공혈관사업을 철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던 중, 이미 2017년 3월 해당 사업부 직원 모두에게 사표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이후 정부가 협상을 하려고 해도 사실상 협상 대상조차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고어사 철수를 막지 못했고 인공혈관 사재기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안 대표는 불안한 심정으로 선천성소아심장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전문의들에게 인공혈관 재고가 바닥나면 바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올 초 서울아산병원을 시작으로 인공혈관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올 초 안 대표는 흉부외과학회와 함께 다시한번 고어사에 인공혈관 공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안 대표가 선택한 것은 고어사의 의료기기 분야가 아닌 고어코리아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안 대표는 “올 초 고어사의 공급 거절 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고어코리아 대표에게 공문을 보냈다. ‘인공혈관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메시지였다”며 “고어코리아 대표에게 공문을 보낸 이유는 고어메디칼로 봤을 때는 한국 매출이 적지만 등산복, 산업용 재료 등을 파는 고어코리아 매출은 높기 때문에 고어사 오너가에 직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그 후 고어사 아시아 담당자와 통화가 성사됐다. 당시 고어사 담당자는 정부, 학회가 아닌 환우회하고만 통화하겠다고 했고, 배석도 안된다는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에 따르면 당시 식약처도 미국과 한국 대사관 등을 통해 인조혈관 공급 가능성을 타진하고 외국을 통한 공급도 생각했지만 고어사와 연락이 되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아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안 대표는 자신이 고어사 담당자와 먼저 통화한다는 사실을 식약처에 알려주기도 했다.

이렇게 성사된 고어사 담당자와 통화에서 안 대표는 ‘필수치료재료 중 대체 불가능한 품목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고어 측 담당자는 ‘알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 대표와 고어사 간 ‘대채 불가능한 독점 치료재료’의 목록이 달랐다.

이후 고어사는 식약처와 화상회의를 거쳐 당장 필요한 20개 품목을 우선 공급하기로 결정했고, 폰탄수술(Fontan's operation) 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사이즈인 16·18·20㎜ 사이즈 인공혈관 공급도 약속했다. 하지만 12·14·22·24㎜ 사이즈 인공혈관 공급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또한 공급을 약속한 인공혈관도 GMP 면제, 미국 기준 가격 책정 등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경우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는 이에 대해 “고어사는 국내 환자들에게 필요하다고 하니 인도주의적으로 인공혈관 등의 치료재료를 공급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허가나 GMP 실사까지 받으면서는 못준다는 입장”이라며 "마치 아프리카에 식량 지원하는데 까다로운 절차는 받을 수 없다는 요구로 받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가 남았나

현 상황을 정리하면 고어사는 GMP 실사 면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약속한 인공혈관도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어사가 2017년 9월 철수 후 곧이어 취소됐던 허가는 올 초 심장수술 중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살아났다. 회사가 자진취소했고 살리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허가가 살아난 최초 사례다.

남은 문제는 GMP 실사 면제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식약처가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다. 때문에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을 통해 GMP 면제 품목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안전정보원을 통해 고어사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폰탄수술용 인공혈관은 16·18·20㎜ 사이즈 뿐이다. 이보다 작거나 큰 12·14·22·24㎜ 사이즈 인공혈관은 우리가 필요해도 고어사가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GMP 면제 등과 상관없이 공급이 안된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치료재료라는 것이 언제 어떤 사이즈가 필요할지 모르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만 공급하고 나머지는 안하겠다는 것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없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현재 식약처는 향후 협상을 통해 고어사가 공급불가 입장을 정한 품목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 대표는 “3월 화상회의가 끝난 후 정부에서 필요한 목록을 고어사로 보냈지만 고어사는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협상은 이대로 끝난 것”이라며 “화상회의는 협상 시작이 아니라 그걸로 끝난 것이다. 이후 협상도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수가 등도 일부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고어사는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냥 한국은 고어사가 의료기기 사업을 펼치기에 좋은 시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시장 자체가 작고 그 작은 시장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점유하지도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판단이 변할 가능성도 적다”고 덧붙였다.

환우회, 최후 통첩을 날리다

이런 상황에서 환우회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실력행사’다.

안 대표는 “선천성심장병환우회는 정부나 의료기기업체 등과 싸우기 위해 만든 환우회가 아니다. 싸우기도 싫다”며 “그래서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고어사를 비판하거나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하지만 (고어사가 일부 인공혈관만 공급하겠다고 결정하고 변화할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강조하며 “5월 9일 고어사에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환우회에서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치료재료는 심장병어린이들의 생명입니다’를 모토로 진행한 캠패인, ‘100킬로미터 걷기’ 캠페인, ‘눈물의 고어텍스’ 캠페인 진행 사진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치료재료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혈관 정상 공급 거절 답변이 오면 싸울 것”이라며 “집회, 기자회견, 고어코리아 앞 1인시위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또한 이같은 실상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영문으로도 만들어 미국, 유럽 등 고어텍스 시장이 큰 국가로 뿌릴 것”이라며 “보도자료에는 ‘고어사가 특정 국가의 심장병어린이가 사용해야 하는 인공혈관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담길 것이며, 필요하다면 국제환자단체연합회와도 연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고어사 인공혈관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수술에 사용할 치료재료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고어사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제발 우리 목소리와 바람을 버리지 말고 인공혈관을 공급해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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