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원>의 저자 오승원 교수 “믿고 다닐 수 있는 병원 이미 많아”

늦은 밤 문을 열고 새벽에 닫는 병원이 있다. 그곳을 찾는 환자들은 낮에는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편의점 사장과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콜센터 직원은 자신의 병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환자들의 아픈 곳을 찾아주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곳이 있다. 바로 반딧불의원이다.

책 <반딧불의원>은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오승원 교수가 쓴 페이크 다큐 형식의 의학 드라마다. <반딧불의원>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수분 동안 경청하는 의사 이수현 원장은 ’3분진료‘, ’회전문진료’가 일반화된 현실과 조금은 달라 언 듯 비현실적이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 교수는 반딧불의원 같은 병원이, 이수현 원장 같은 의사가 사실은 우리 주변에 많다고 강조한다.

1차의료를 담당하는 개원의들이 보람을 가지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오 교수를 만나 <반딧불의원>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오승원 교수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본지가 제정한 한미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 반딧불의원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첫째 아이가 정해준 이름이다. 밤에 여는 동네의원에는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생각하던 중 아이에게 ‘아빠가 밤에 여는 병원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해.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라고 물었더니 반딧불이라고 하더라. 아이가 내놓은 그 반딧불이라는 단어가 책의 제목이 됐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스러운 공간을 생각했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으려고 했다. 이름만 보고도 밤에 문을 여는 신비한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고 싶었다.

- 장르가 독특하다.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책 출판이 결정되자, 다음 고민은 어떤 종류의 글을 쓸지였다. 제안을 받았던 것은 ‘일상 에피소드’ 그리고 ‘건강 정보글’이었다. 이 둘을 함께 엮을 수 있는 방식으로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를 제안받았다. 딱딱하게 정보만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쪽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장르가 결정되고 나니 남은 것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것이었다. 환자를 보며 느낀 것이 의외로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강정보, 상식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라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 현재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책 속의 배경은 동네의원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원의들이 보람을 느끼며 환자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무대를 의원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고 동네의원의 의사들은 보람과 자존감을 잃어간다. 의료전달체계 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원의들이 보람을 느끼며 환자들 진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책의 배경을 밤에 문을 여는 동네의원으로 설정하고 이상적이라고 느끼는 모습을 담았다. 환자들이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배경으로도 의원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배경설정이다. 의사면허를 따기 전에는 의사가 되고 개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전공도 가정의학과를 선택했다. 현재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나 개원의로서 동네의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 새벽에 문을 닫는 의원이라는 설정보다 환자의 말을 몇분이고 경청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더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3분 진료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지만 3분을 훌쩍 넘겨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의사도 많다. 주변만 보더라도 한 동네에서 오래 병원을 운영하며 환자와 가족 같이 지내는 개원의들도 있고, 한 동네에 사랑방처럼 의원을 경영하는 선배님들도 있다. 그들은 단골 환자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하고 있다.

모든 의사들은 환자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환경적 제약이 있기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을 뿐이다.

- 책을 통해 환자들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

우선 주변을 돌아보면 반딧불의원 같은, 이수현 원장 같은 의사가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실제로 잘 둘러보면 밤에 연다는 설정만 뺀다면 우리 주위에 반딧불의원 같은 의원은 많다. 책을 통해 이수현 원장 같은 환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그런 의사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고, 믿고 다닐 수 있는 병원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또하나의 목적은 올바른 건강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다. 진료하다 보면 환자들이 고혈압약, 당뇨약 등 만성질환 약물치료에 대해 거부감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환자들은 약물치료를 실패로 받아들이고 약물의 내성과 부작용을 걱정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었다. 독자들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접하면서 ‘내가 이런 부분은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고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책을 집필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삶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책을 쓰면서 병원에 오는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책의 내용이 환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인 만큼, 환자가 당뇨, 통풍, 치매 등의 건강문제를 들고왔을 때 어떤 생각으로 병원을 찾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의사는 매일 이런 환자들을 본다. 그러나 환자들은 내몸의 문제를,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의사가 병에 대해 어떻게 해줬으면 할까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을 구상하면서 예전보다 환자들의 반응을 잘 살피게 됐다. 태도, 눈짓 등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책 속에 있는 건강관련 지식들이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보니 책으로 정리된 부분은 설명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 환자들도 자세한 설명이 보다 받아들이기 쉬운 듯하다.

- 이력 중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경력이 눈에 띈다.

응모 계기는 한미수필문학상 공모 마감 3일 전 청년의사로부터 받은 홍보메일이었다. 글은 이전부터 써왔으나 그전까지는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메일을 받고 문득 ‘한번 글을 내보자’는 마음이 들어 글을 고쳐써 냈던 것이 수상으로 이어졌다. 부족한 글솜씨였지만 환자와의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낸 것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되돌아보면 좋은 경험이 됐다. 글을 써오며 ‘내 글을 누가 재밌게, 좋게 읽어줄까?’라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글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내 글을 좋게 봐주는구나 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었다.

- 향후 작품활동 계획이 있다면.

반딧불의원의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책이 나온 직후에는 ‘이제 진짜 끝이다. 속 시원하다’ 생각했는데 후에 글을 다시 살펴보면서 이수현, 간호조무사, 의원 주변 상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 이들의 이야기를 또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직 환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건강문제도 많으니까,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 써볼수도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