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생명윤리법 등과 충돌 우려” vs 식약처 “업계 성장 위해 별도법 필요”

체외진단의료기기를 별도 관리하기 위해 발의된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안’을 바라보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시각이 엇갈렸다.

복지부는 생명윤리법 등과 충돌을 우려한 반면 식약처는 체외진단의료기기업계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체외진단의료기기 규제혁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제정안은 체외진단의료기기를 ‘사람이나 동물로부터 유래하는 검체를 체외에서 검사하기 위해 단독 또는 조합해 사용되는 시약, 대조·보정물질, 기구·기계·장치, 소프트웨어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으로 정의했다.

특히 제정안에는 체외진단의료기기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임상적 성능시험(신약개발 시 임상시험과 동일한 과정) 심의를 위해 별도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게 하는 등 체외진단의료기기 개발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방안 등이 담겼다.

이는 ‘체외진단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임상적 성능시험 시 검체를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임상에서 사용하고 남아 폐기를 기다리는 ‘잔여검체’ 사용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하지만 제정안에 대해 복지부와 식약처의 입장이 달라 향후 입법과정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우선 복지부는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생명윤리법이나 관련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잔여검체 활용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박미라 과장은 “생명윤리법상 잔여검체는 폐기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임상적 성능시험을 위한 제공 요청이 있으면 서면동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제공이 가능하고, 서면동의가 없어도 체외진단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임상적 성능시험이 의료기관 내 IRB를 통과할 경우 잔여검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이런 과정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IRB가 잔여검체 활용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어 복지부에서 따로 ‘진단이나 치료 후 폐기 예정인 검체는 의료기기 개발용으로 사용할 경우 서면동의가 면제이니 활용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달라’는 진단검체 활용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김승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잔여검체에 대해 정의하고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비슷한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법 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이라며 “규제는 조화가 중요한데, 제정법과 생명윤리법이 충돌하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업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 신준수 과장은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과장은 “산업적 측면에서만 보면 체외진단의료기기시장은 작지만 성장세가 빠르다.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도 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며 “이런 시장을 키우기 위해 별도 법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 과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체외진단의료기기를 별도 법으로 관리해 20% 가까운 성장을 해냈다. 세계적으로 체외진단의료기기는 별도관리하는 추세”라며 “체외진단이 잘못됐을 때 공중위생상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체외진단의료기기를 별도 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신 과장은 “의료기기는 실제 사람의 몸을 활용한 임상시험을 해야 하지만 체외진단의료기기는 검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자에 미치는 위해도가 전혀없다. 그래서 임상적 성능시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며 “여러 부분을 고려했을 때 김승희 의원의 제정법은 의미가 깊고 제품 특성에도 맞다고 생각한다. (제정을 위해) 적극 뒷받침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업계, 학계 관계자도 한목소리로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나흥복 전무는 “체외진단의료기기가 의료기기법 하에서 의료기기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이 업계에서는 모순되고 불합리한 규제라 여기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관리될 경우 관계 기관 및 업계의 고충이 증가되고 산업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전무는 “체외진단 의료기기의 전반적 관리에 적합한 규제체계와 국제환경과 조화를 위한 단독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한국로슈진단 한승미 부장은 자동화분석장비의 예를 들면서 체외진단의료기기만을 위한 심사체계 구성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부장은 “자동화분석장비의 경우 내부에 들어가는 시약 수가 100여가지에 달한다. 체외진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시약과 관련한 의학적 근거 역시 수시로 바뀐다”며 “하지만 국내에서 자동화분석장비에 들어가는 시약을 변경하려고 하면 (심의에만) 1~2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한 부장은 “안전성과 유효성에 중대한 변경이 없는 경우 자동화분석장비에 들어가는 시약 변경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톨릭의대 진단검사의학과 이제훈 교수는 “체외진단의료기기는 환자에 주는 위해도가 낮음에도 임상적 성능평가에 제한점이 많다”며 “특히 검체 취득이 어렵다. 검체 취득과 관련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의대 진단검사의학과 박경운 교수는 “기존 의료기기에 익숙한 IRB 위원들이 체외진단의료기기 관련 심의를 하기 때문에 잔여검체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면 기존 법안과 충돌을 피하면서 잔여검체 부분을 잘 녹여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생명윤리법 등에서 이미 잔여검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IRB 위원들이 거부감을 갖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도 풀어야 한다”며 “차세대 의료기기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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