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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폴란드왕국의 돈주머니,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 승인 2017.10.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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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비엘이치카 소금광산의 입구(좌), 이곳에서 캐난 소금결정(우)

동유럽에서 눈을 뜬 두 번째 아침이다. 이날은 여유 있는 일정으로 8시 반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첫 일정은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을 구경하는 것이다. 크라쿠프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비엘리치카(Wieliczka)로 소금광산을 보러갔다. 이 지역을 소금과 관련된 마그눔 솔(Magnum Sol) 혹은 비엘리카 솔(Wielika Sol)이라고 했다는 기록은 111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비엘리치카의 소금광맥은 180~20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 바다였던 이곳이 융기한 뒤 물이 증발되면서 소금이 남았고, 이렇게 남은 소금이 바위로 변하기까지 1만5천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소금광맥은 동서로 10km 길이에 달하고, 두께는 500m에서 1.5km에 이른다. 가장 깊은 소금층은 340m를 내려가야 한다.(1)

이곳에서 소금을 채굴하기 시작한 것은 1290년부터이다. 그로부터 1996년까지 무려 700년 동안 소금을 캐왔다. 매장된 소금의 매장량이 고갈되면서 채산성 면에서 천일염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가운데 광산이 범람하는 사태까지 겹쳐 채굴을 중단되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금은 동물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옛날에는 권력을 쥔 자는 소금의 유통을 통제하였다. 당연히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거나 믿을만한 측근에게 맡겼다. 크라쿠프가 한참 전성기에 있던 야기엘로왕조 때는 나라살림의 3분의 1이 소금무역에서 얻을 정도였다. 700년이 넘도록 비알리츠카 광산에서 채굴된 소금의 양은 무려 7천5백만톤이라고 하는데, 이 소금을 화차에 실어 연결하면 적도길이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비엘리치가 소금광산에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채굴장비는 물론 지하수배출, 조명, 환기 등 관련 장치 등 소금채취에 관한 기술의 발전과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런 점이 반영되어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2)

소금광산은 동서로 5km, 남북으로는 1km에 달하는데, 가장 깊은 곳은 지하 327m이다. 광산 내에는 총 300km에 달하는 회랑이 9개 층에 흩어져 있는 2천여 개의 방을 연결한다. 우물, 제단, 강단, 소금을 깍아 만든 조각상은 물론, 4개의 예배당까지 있을뿐더러 호흡기질환을 앓는 사람이 요양하는 특별한 방도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를 개설하였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3) 이곳이 관광지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50년 광산의 일부를 박물관과 전시용 공간으로 개조하면서부터이다. 지하 101m에는 ‘축복 받은 왕의 교회(Chapel of the Blessed King)’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다. 교회의 규모는 길이가 50여m, 폭 15m, 높이 12m에 달한다.

채광을 중단한 뒤에 소금광산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뒤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 등을 고려하여 광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양길에 들어선 광산업을 대체하여 탄광지역에 카지노와 같은 사행산업을 벌인 것 말고, 광산을 관광지로 개발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살 때도 광산을 박물관 겸 관광지로 개발한 곳을 가보았던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광산에서 일하던 분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방안도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소금광산을 구경하려면 반드시 광부출신이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이곳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입장에 앞서 광산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3유로를 내고 사진촬영권을 사야한다고 해서 놀랐다. 여행기를 쓰려면 사진이 필요한데, 그때는 공연히 심사가 뒤틀렸는지 쵤영권을 사지 않고 그냥 입장했다. 사진을 찍지 않고 가이드 설명을 집중해서 들으니 오히려 좋다. 광산 측에서도 3유로를 꼭 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광산의 독특한 모습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였지만, 내가 그들이 아니니 알 도리가 없다.

통나무로 보호된 옛 갱도(Wikipedia에서 인용함)

광산에 입장하면 우선 나무로 된 378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전날 마차를 뒤쫓느라 상태가 나빠진 무릎을 달래가며 64m를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나무계단 사이의 좁은 틈으로 내려다보니 바닥이 가물거릴 지경이다. 지하 64m의 1단계로부터 지하 327m에 위치한 9단계까지 지하의 갱도가 이어지는데, 일반 관광객들은 지하 135m에 있는 3단계까지 볼 수 있다. 3단계까지 구경한 다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다. 소금을 캐낸 공간에 생긴 2,040개의 방이 있지만, 일반 관광객을 위한 탐방코스는 1단계에서 3단계까지 3km를 걸어 모두 28개의 방을 구경하게 된다. 갱도에는 외부로부터 투입된 공기의 흐름이 꽤나 거센 편이다. 그래서 중간 중간 문이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은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었지만, 중간에 있는 옛 갱도에서는 통나무로 천정과 벽을 가로막아 낙반사고를 막는 구조도 볼 수 있다. 영어권의 전통적인 인사말인 "신의 영광(God Bless You)"은 여기 비알리츠카 소금광산의 광부들이 서로 지나치면서 주고받던 인사말이라고 한다. 아마도 채굴과정이 위험하고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행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처음 발길을 멈춘 곳은 3번방이다. 4.5m 크기의 소금기둥에 둥근 지구를 손에 든 코페르니쿠스의 조각이 서 있다. 1973년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것인데, 크라쿠프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코페르니쿠스가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을 방문하적이 있다고 한다. 중세 기독교사회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천동설에 반하는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1473년 폴란드 비수아 강변의 토룬에서 출생했다. 1491년 신부가 되기 위하여 크라쿠프대학에 입학한 그는 불제프스키교수에게 수학과 천문학을 사사하였는데, 당시 유럽 천문학계가 신봉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실제의 천문현상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천동설이 가진 한계는 제례일이 계절과 일치하지 않음으로 해서 종교적 권위를 떨어트리고 원양항해도 심각한 위험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1496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으로 유학한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철학과 천문학을 공부하였고, 1502년에는 다시 파도바대학에서 의학과 교회법을 공부하여 각각 학위를 받았다. 1506년 귀국한 그는 외삼촌의 교구에서 의술을 베풀다가, 1512년 외삼촌 사후에 뒤를 이어 신부로 사역하였다. 그때부터 옥상에 망성대(望星臺)를 세워 별을 관측하였다. 관측결과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행성계의 개념, 즉 지동설를 구축하기에 충분하였다. 지동설에 관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1525~1530년간에 집필되었으나 당시 로마 가톨릭이 천동설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었다. 자비를 들여 소규모로 출판하여 일부 천문학자와 당시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도 전해졌다고 하며, 본격적인 출판은 제자 레티쿠스의 권유에 따라 1542년 뉘른베르크의 인쇄소에 넘겨져 1543년 그가 임종하는 자리에 견본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의 천체모형은 지금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지구 중심의 천체모형을 버리고 태양 중심의 천체모형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당시 우주관의 대변혁을 가져온 것으로, 흔히 사고의 틀을 바꾸는 것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킹가공주(좌)와 킹가공주의 전설을 묘사한 조각을 볼 수 있는 방(우)(Wikipedia에서 인용함)

이어서 일행이 발길을 멈춘 장소는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 얽힌 전설, 킹가(Kinga)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조각된 방으로 1967년에 조성되었다. 킹가공주는 헝가리왕 베라4세(Béla IV)의 딸이다. 강성한 체코왕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헝가리왕국은 킹가공주를 크라쿠프의 볼레스와우(Bolesław V)왕자와 결혼을 시켜 혼인동맹을 맺기로 하였다. 이때 그녀는 지참금으로 가져갈 땅보다도 소금을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왕에게 "폴란드는 부유하고 평화스러운 나라이지만 소금이 없습니다. 헝가리는 소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라고 청하였다. 부왕은 그녀에게 마라마로스(Máramaros)의 소금 광산을 지참금에 포함시켰다. 폴란드로 떠나기 전에 그녀는 마라마로스 광산의 소금구덩이에 볼레스와우 왕자에게 건넬 약혼반지를 던졌다. 신행길에 비엘리치카를 지나게 된 공주는 행렬을 멈추게 하고 땅을 파라고 명했다. 구덩이에서 소금덩어리가 발견되었고, 더 깊이 파들어 가자 소금광맥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발견한 소금 덩어리를 쪼갰더니 그 안에서 공주의 약혼반지가 나왔다. 공주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나보다.

14세기 들어 카시미르대왕은 소금채굴과 무역에 관한 규정을 새롭게 하였다. 이로서 소금의 채굴이 안전하게 이루어졌고, 광부들은 자유롭게 일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광부의 직을 세습할 수 있게 되었다. 소금광산에서는 초산이라고 부르는 메탄이 위험하다. 무색무취한 메탄은 독성은 없지만, 화기를 만나면 폭발을 하게 된다. 새로 굴착한 갱도에서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긴 막대기 끝에 불씨를 매달아 가스가 있음직한 곳으로 기어들어가 태우는 일을 맡은 광부는 ‘고행자들’ 혹은 ‘기어 다니는 자들’이라고 해서 크게 존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서는 여러 차례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1644년에는 몇 달 동안 지속되는 최악의 화재가 발생하였다. 지하갱도를 구경할 때 불을 켜지 말라는 주의가 따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성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금 요정(좌)과 광부들을 도와주는 소금요정들(우)(Wikipedia에서 인용함)

이어지는 방에서는 소금을 캐는 요정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모래가 들어있지 않은 좋은 품질의 소금을 캐는 두 난쟁이 요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환하게 웃고 있다. 그에게 웃음으로 화답하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웃는 난장이는 여성들을 도와주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그의 수염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은 남편감을 찾고 있는 여성들의 키스세례 때문이다. 이 난장이의 수염에 키스를 하면 남편감을 만나게 된다고 전해온다. 특히 그렇게 해서 남편을 만난 여성은 이곳에 다시 와서 고맙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방에서는 8명의 난쟁이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소금을 지키는 요정으로 소금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려줄 뿐 아니라 소금광맥이 있는 바위에 그림을 그려 알려주기도 한다. 요정의 우두머리는 ‘하얀 손(Whitehand)’라는 이름의 여성인데,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탈 형태의 소금이 가득한 방에서 살며, 절대로 늙지 않는다는데, 아마도 소금이 물건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성질에서 온 것 같다.

참고자료:

(1) 스타투어 블로그. 소금광산(비엘리치카 : Wieliczka).

(2) 유네스코와 유산.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Wieliczka Salt Mine].

(3) Wieliczka Salt Mine. Home Page.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yang412@hir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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