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확인 후 논란은 해소됐지만 국민 건강권 침해 등 또 다른 문제 불거져

합천군 보건소가 상품명 처방이 아닌 성분명 처방제도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의료계가 긴장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의 처방제도가 변경된 게 아니라 지자체에 의약품을 성분명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공급계약 방식 때문으로 이를 놓고 사실상 성분명 처방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처방제도의 변경을 떠나 이같은 의약품 공급계약은 국민건강권 침해와 정책적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합천군 이외에도 이미 보령군 등에서 시행되고 있던 것이라는 점에서 의약품 성분명 계약이 확산될 조짐이다.

이번 사건은 T제약이 합천군 보건소에 의약품 납품 방식을 전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합천군보건소는 지난 1월 입찰을 통해 T제약과 의약품 납품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당시 의약품 납품 방식은 제품명 납품이었다.

하지만 최근 T제약이 ‘납품으로 인한 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당초 제품명 납품 방식을 성분명 납품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T제약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정부기관에 의약품을 납품할 경우 생물학적동등성에 차이가 없다면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그 근거로 제출했다.

보건소 및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반발했지만 결국 ‘국내 매출 상위 20위 이내 제약사 의약품을 납품한다’는 단서를 달고 납품 방식이 변경됐다.

T제약 관계자는 “낙찰을 받고 납품을 하다가 손실이 너무 커 계약 변경을 요청하게 됐다”면서 “국내 매출 상위 20위 이내 제약사 정도면 양질의 약을 생산하는 곳으로 효능 등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계에는 내년부터 성분명 계약으로 대부분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충청남도 일부 지역은 예전부터 성분명 납품을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계에는 ‘성분명 처방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기 시작해 한동안 술렁였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합천군 보건소 사례는 성분명 처방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이는 지자체에서 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일뿐 처방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다만 합천군 보건소와 T제약과의 계약 변경으로 인해 국민 건강권 침해와 의료서비스의 정책적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비용을 이유로 보건소에 오는 환자들에게 저렴한 약만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같은 성분이라도 약에 따라 그 효능이 다른데 이를 무시하고 저렴한 약으로만 처방하려는 지자체의 작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의협은 지난 15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에 공문을 보내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청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관계자도 “이번 논란이 다행히 성분명 처방과 연관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의료취약지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싸구려 약을 처방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차별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는 국민 건강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으며,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의무와 권리 역시 침해하는 것”이라며 “공보의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처방한 의약품이 제대로 환자에게 전해질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실을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한 T제약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제품명 납품에 동의해 낙찰 받아 놓고 손실이 발생한다고 해 더 싼 약을 납품하겠다는 업체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업체 스스로가 계약 성사를 위해 낮은 값에 입찰을 신청한 것 같은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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