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강의를 하다 보면 “의사가 좋아요, 변호사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통상 이렇게 답변한다.

적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현실적인 차이도 있다. 수입이라는 측면에서 변호사 시장은 격차가 매우 크다. 정말 어려운 변호사도 있지만 거액을 버는 변호사도 있다. 의사 간에도 수입 차이가 있지만 변호사 시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평준화되어 있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

의사의 장점은 비교적 온오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통상 퇴근하면서 당직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하면 퇴근한 의사는 일단 환자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 있다. 집에서 환자 치료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집에 가서도 소송 전략 생각을 하느라 뒷목이 뻐근해 질 수 있다. 변호사의 업무는 상대적으로 온오프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의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환자가 거짓말을 할까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조인, 특히 판사는 언제나 소송당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의심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의심하면서 산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종합해 보면 의사는 소시민으로서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기에 좋은 직업이다. 또 봉사하기에도 좋은 직업이다. 반면 변호사는 정치권력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다.

그런데 의사와 법조인은 사고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의사들은 특정 사안에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의학이 자연과학에 기초한 학문이라서 그런 것 같다. 때문에 의사들 사이의 의견 조정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내가 정답이고 다른 사람은 오답인데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겠는가?

반면 법조인은 많은 법률적 판단에서 다수설과 소수설이 있으며 오늘의 소수설이 내일의 다수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간통죄의 경우 1990년 헌재가 처음 결정을 내렸을 때는 합헌 의견과 위헌 의견이 6대 3이었다. 1993년, 2001년, 2008년에도 헌재는 여전히 합헌 결정을 내렸다. 드디어 2015년 헌재 재판관의 합헌 의견과 위헌 의견이 2대 7이 바뀌어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법조인이라 해서 늘 의견 조정이 쉬운 것은 아니겠으나 다수설, 소수설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의견 조정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의사와 법조인의 사고 방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실과 주관의 분리와 관련되어 있다. 의사는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을 분리한다. 예를 들어, 환자의 증상을 듣고 위암을 의심하는 경우 의사는 객관적 사실 확인을 위해 조직검사를 한다. 조직검사 결과가 음성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주관을 버리지 않고 위암이라고 진단할 의사는 없다.

법조인도 이론적으로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한다. 법률적 판단을 하려면 우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친자관계 확인을 위해서도 과학적인 유전자 검사의 도움을 받아 객관적인 사실을 확정한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확정한 후 법리를 적용해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의사의 진단은 여론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가령 조직검사가 음성인데 여론이 위암을 지지한다고 해서 위암이라고 진단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법조인은 여론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 특정인에 대한 처벌여론이 매우 강하면 법조인은 법리를 구성하기도 하고 사실관계마저 선택적으로 골라내 법률을 적용하기도 한다. 법조인은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엮는” 직업이다.

따라서 특정 법률에 대해 의사들의 위헌 주장이 법리적으로 합당해도 대다수의 여론이 반대하면 헌재 재판관들은 결코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합헌 결정을 내린다. 그게 그들에게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전문직의 핵심적 징표는 여론과 독립된 전문지식에 근거한 전문적 판단을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법조인에게는 여론이 곧 정의일 수 있다. 여론에 반대해 돌 맞기 싫다는 것이다. 법조인의 사고방식이 판결이나 정책형성을 통해 의료현실에 상당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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