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의 계절이 왔다. 4월 22일과 23일 더케이 호텔에서 제69차 정기대의원총회가 개최된다. 7년 전 의협 법제이사로서 처음 대의원총회에 참석했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아수라장이었다. 논의 자체가 어려웠다. 마지막에는 정족수가 미달되어 의결 자체가 불가능해 졌다. 총회장을 나서면서 느끼는 자괴감은 매우 컸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

최근 대의원총회의 모습은 옛날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도 논의가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세련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의원총회를 국민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의원총회는 협회 내부적인 문제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 자리였다. 그러나 사람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대의원총회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내부적인 문제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마치 무언가 중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정작 중요한 것인 사회와 언론,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국민이기 때문이다.

물론 협회 회원들의 민의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내부적인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사전절차와 대의원총회의 역할은 구별할 수 있다. 의협 정관 개정절차와 대한민국 헌법 개정절차를 비교해 보면 이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헌법 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그리고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처럼 헌법 개정은 법률의 제·개정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회에서 미리 논의하여 개정안을 만들어 과반수로 의결을 하고 최종적인 국민투표는 오로지 찬반만을 결정한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헌법 개정안을 마음대로 수정하여 가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법률의 제·개정은 국회 본회에서 최종적으로 의결한다. 그러나 일반 법률의 제·개정도 국회 본회의에서 마구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상임위, 법사위 등에서 논의하여 최종적인 안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반면 의협 정관은 정관 개정 절차와 다른 안건의 심의의결 절차를 구별하지 않고 않다. 동일한 절차를 거쳐 심의의결이 이루어진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가중정족수 요건이다. 정관 개정은 재적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 개정절차와 비교해 보면 의협 정관 개정절차는 사전에 논의하여 최종적인 안을 확정해 놓는 공식적인 절차가 없다. 그래서 대의원총회 현장에서 정관 개정안이 즉석에서 수정되기도 한다. 실수와 허점이 없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헌법 개정절차의 단점도 있다. 엄밀한 사전절차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핵심은 국민투표라는 최종적인 의사결정 이전에 국회에서의 개정안 확정 등 사전절차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투표는 찬반만 결정하면 된다.

대의원총회는 1년에 한 번 전국의 대의원이 모이는 행사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내부적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자리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국민에게 대한민국 의료가 왜 이렇게 왜곡되었는지 알리고 미래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외치는 자리로 만들 것인가? 후자가 바람직할 것이다.

사전절차와 대의원총회의 역할 분담은 사원총회가 도입되어도 마찬가지다. 회원의 민의를 반영하는 사전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원총회가 도입된다면 현장은 더 아수라장이 될 수 있다.

대의원총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회원의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사전절차를 잘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거기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으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최종적인 결론에 대해서 대의원총회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의원총회는 회원의 단합을 과시하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사회와 언론,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국민을 향한 메시지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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