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페루

본지는 앞으로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번 여행지는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에 이은 우리나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라틴아메리카로,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이카공항을 나선 우리 일행은 파라카스(Paracas)로 이동한다. 파라카스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해안마을이다. 피스코주에 속하는 파라카스지구의 중심도시로 4,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역사적으로는 1820년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이 이끄는 여섯 척의 페루독립군 함대가 칠레를 출발하여 이곳에 상륙하였다. 파라카스는 비를 의미하는 케추아어 para와 모래를 의미하는 aco가 합쳐진 이름으로 ‘모래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1) 파라카스는 바람에 거센 편인데, 건조한 기후 때문에 바람에 섞여 날리는 모래가 마치 비를 맞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파라카스반도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파라카스만에 위치한 이곳에서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부르는 바예스타제도(Islas Ballestas), 파라카스국립보호구역 등으로 가는 배가 출항한다. 배는 정오까지만 출항한다고 한다.


바예스타섬까지는 보통 2시간 정도 걸리지만, 우리가 탔던 쾌속보트를 이용하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배가 부두를 떠나 바다로 향하는데 왼편으로 야트막한 모래언덕이 이어진다.파라카스반도이다. 얼마를 갔을까. 가이드가 왼쪽 언덕을 가리킨다. 모래언덕에 삼지창처럼 생긴 표지가 나타난다. 스페인어로 촛대를 의미하는 엘 칸델라브로(El Candelabro) 지상화이다. 크기가 595피트(181m)에 달하기 때문에 12마일(19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흙을 약 2피트 정도 파내고 주변에 돌을 쌓은 엘 칸델라브로를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운데 초가 정남향을 가리키고 있어 뱃사람들에게는 중요한 표지가 되어왔다. 부근에서 발견된 토기를 방사성 탄소로 연대를 측정해보았더니 기원전 200년경으로 나와 파라카스문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연계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사람들은 남아메리카에 널리 전해오는 전설에 나오는 비라코차(Viracocha)신이 가지고 다니는 삼지창 모양의 번개몽둥이와 흡사하다고 믿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과 관련이 있다거나, 프리메이슨의 표지라거나, 메소아메리카 세계의 나무라고 알려진 주제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2)


엘 칸델라브로를 지나 한참을 가다보면 드디어 작은 바위섬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12개의 바위섬으로 된 바예스타제도는 전체 면적이 0.12 km² 정도 된다. 바예스타제도는 서식하고 있는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허가된 사람만 상륙할 있다. 구아나 흰배쇠가마우지, 펠리칸, 갈매기 등의 천국이며, 특히 빨간부리 바다제비는 페루의 천연기념물로 이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빨간부리 바다제비는 암컷과 수컷의 모양이 똑 같아 모습만으로 구분할 수 없지만, 짝짓기할 때는 가능하다. 암컷은 바다를 향해 멍 때리고 있으면 수컷은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다 암컷에게 준다.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이 잡아오는 생선 가운데 마음에 드는 수컷이 잡아온 생선을 받아먹고, 그 수컷과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훔볼트펭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훔볼트 펭귄은 칠레와 페루의 해안에서 서식하는 펭귄종류로 아프리카펭귄, 마젤란펭귄, 갈라파고스펭귄의 친척뻘이 된다. 그밖에도 바다사자와 물개가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바위 위에 늘어져 따듯한 햇볕을 즐기는 독립군도 있지만, 좁은 해안에 몰려들어 득시글거리는 바다사자와 물개를 보면 엄청나다. 특히 움푹 들어간 해안에 몰려있는 바다사자들이 늑대처럼 울어대는 소리가 절벽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합창은 마치 서라운드 음향시스템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하다.(3)


바예스타제도에 살고 있는 새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가이드는 1억 마리 가량 되었다고 하고, 최근 어린 새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는 벌레가 상륙하는 바람에 7천만 마리까지 줄어들었다 했다. 조류학자들은 벌레의 천적인 도마뱀을 이용하려고 섬에 도입했지만, 오히려 새들이 도마뱀을 잡아먹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새들이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일행이 탄 배가 섬에 접근하자, 모여 앉은 새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희들은 왜 왔니?, 귀찮게!’하는 표정이다. 그나마 바위 위에 늘어져 몸을 말리는 물개들은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섬을 온통 뒤덮을 듯 몰려있는 새무리와 새들이 바닷가 바위위에 흘려놓은 흔적들을 바라보다, 생각이 구아노(guano)까지 미쳤다. 케추아어 와누(wanu)에서 온 스페인어 구아노는 바다새, 물개, 혹은 동굴박쥐들의 배설물이 쌓인 것을 말한다. 구아노는 질소, 인산, 칼륨 등이 풍부하여 아주 좋은 비료로 사용된다. 화학비료가 개발되기 전인 19세기까지 구아노는 농업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잉카제국에서도 이미 구아노의 사용하고 있었던 것을, 1802년 11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우연히 이를 발견하고 페루의 칼라오(Callao)에서 비료로서의 효능을 조사하여 유럽사회에 소개한 이래, 주요 수입품목이 되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인 구아노는 두께가 50m에 이르기도 했는데, 먼저 발견한 자의 소유를 인정해주던 시절도 있었다. 1864년부터 1866년 사이에는 스페인과 페루-칠레 동맹군 사이에 친차(Chincha) 섬의 구아노를 둘러싸고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페루정부는 구아노 자원의 고갈을 우려하여 자국 농업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제한을 두기도 했다.(4)


바예스타섬의 새들, 바다사자, 물개들과 작별을 하고 파라카스로 돌아왔다. 배에서 내린 일행은 점심으로 페루의 전통음식 세비체(ceviche)를 먹었다.우리가 먹는 막회처럼 썰어낸 생선횟감에 라임을 뿌리고 양파와 고구마를 곁들이는 것이 달랐다.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 먹을 것도 없겠다 싶어 모두 먹었다.세비체는 페루를 비롯하여 멕시코, 에쿠아도르, 콜롬비아, 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해안지방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해물요리이다. 스페인 정복자를 따라 그라나다지방에서 온 무어여인이 세비체를 들여왔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어원을 따져보면 세비체는 스페인, 아랍을 거슬러 멀리 페르시아에 이른다. 하지만 페루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2,000년 전에 페루의 북부에 살던 모체문명(Moche culture)으로부터 유래한 바나나를 발효한 즙과 관련이 있다. 잉카제국 시절에는 생선에 곡물을 발효한 치차를 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5)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리마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쿠스코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가이드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보면 페루 일정은 마이애미일정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마이애미 일정이 시차적응단계였다면 페루일정은 일종의 고도적응 단계인 셈이다. 핵심요점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기와 생수를 많이 마시기로 정리된다. 술은 금기사항이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권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리마로 돌아와서 일단 한식당에서 등심으로 저녁을 먹었다. 음식 맛은 평범한 편이다. 저녁을 먹고 대통령궁, 대성당 그리고 시청사 등이 있는 마요르 광장과 독립영웅 산 마르틴 동상이 있는 산 마르틴 광장을 버스로 돌아보았다. 밤이 늦어지고 있어 보안상의 문제가 있었던지 버스에서 내리지는 못하고 그냥 한 바퀴 ‘휘~~’하고 돌아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리마는 인구 885만(2015년 기준)으로 멕시코시티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에서 제2의 도시이다. 구 시가지는 식민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리마는 쿠스코의 잉카제국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에 의하여 1535년 건설이 시작되었다. 리마라는 이름은 도시를 흐르는 리마크강(ro Rimac)에서 유래하였지만, 건설 당시에는 왕의 도시(La Ciudad de los Reyes)라고 불렀다. 리막크는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는 케추아어로 이야기꾼(talker)을 의미한다. 리바는 1542년 페루 부왕령의 수도로 지정되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스페인 식민지의 중심이 되었다. 16-17세기에 걸쳐 알토 페루에 있는 포토 시 은광산에서 캔 은을 리마를 통하여 유럽으로 내보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1808년 나폴레옹의 형 호세 1세가 스페인 왕 호세 1세로 즉위하자, 멕시코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지만, 리마의 크리올로들은 특권을 잃을까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1821년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주도한 호세 데 산 마르틴장군이 리마로 진격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6) 마요르광장의 북쪽에는 대통령궁이 있고, 동쪽으로는 대성당과 리마 대주교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시청사가 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초석을 놓아 1622년 완공한 리마 대성당은 1687년과 1746년의 대지진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런 연유로 대성당에는 피사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다음날 쿠스코로 향하는 일정 때문에 일찍 쉴 수 있도록 배려한 듯, 8시반에 숙소에 들었다. 법원 앞에 있는 쉐라톤호텔인데 이름값대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참고자료

(1) Wikipedia. Paracas (municipality).

(2) Wikipedia. Paracas Candelabra.

(3) Wikipedia. Islas Ballestas.

(4) Wikipedia. Guano.

(5) Wikipedial. Ceviche.

(6) 위키백과.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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