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92NF Doctors ③ 한국릴리 의학부 이끌고 있는 제약의사 최현아 부사장

청년의사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A92NF Doctors”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다. 청년의사가 창간된 1992년 이후(After 92)에 의대에 입학한 젊은 세대 의사들 중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New Frontier(혹은 New Face) 의사들을 만나보는 코너다. 이번호에는 한국릴리 의학부를 이끌고 있는 제약의사이자 내과전문의인 최현아 부사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내과전문의이자, ‘제약의사’인 한국릴리의 최현아 부사장은 지금도 환자를 만난다. 물론 진료실에서 직접 환자를 만나 진단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는 어떻게 환자를 만날까.

“제일병원(구 삼성제일병원)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했지만, 더 젊을 때 새로운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 외국 생활로 접한 다양한 문화경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병원이 아닌 곳에서 환자의 생명연장에 기여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물론 당시 부모님께선 의사가 회사에 왜 가느냐며 제 선택에 의문을 가지셨어요. 제약사에서 일하는 의사가 많지 않아서 더욱 그러셨던 것 같아요.”

‘의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병원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최현아 부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반드시 임상의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환자를 위한 길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선택이 제약의사였다.

최현아 부사장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이후 2006년 초까지 1년여간은 내과 전문의로 지냈다. 그러다 2006년 유럽계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에 메디컬 어드바이저로 입사하며, 제약의사로서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제약사’라는 기업 조직은 의사로서 살아왔던 그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180도 달라진 환경과 문화는 새로우면서 난감하기만 했다.

“당시에는 제약사에 의사가 많지 않던 시기라 막연한 기대와 생각을 갖고 입사했던 것 같아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죠. 주위에는 온통 저보다 나이는 어리면서도 경력은 많은 직원뿐이었고요. 그들에게 많이 배웠는데, 특히 가장 큰 배움은 ‘제약사가 만드는 단 한 장의 브로슈어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거였어요. 신약 허가부터 문제해결, 전략 수립 등 매일 매일이 다이나믹했죠. 제약사로 입사한 것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은 할 틈조차 없었어요.(웃음)”

제약의사로서 첫 마음가짐이 ‘새내기 대학생’ 같았다는 그는 그 ‘좌충우돌’의 과거가 결국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제약의사로서, 로컬 메디컬 어드바이저로서의 입지를 다지던 그에게 2009년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으로부터 이제 막 승인된 릴리의 순환기 제품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아메리카,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지역에서 허가 및 출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해외국가 의료진을 만나고 의료시장을 이해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코자 하는 그는 이 업무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단다. 릴리 입사 후 해외 업무를 맡은 2년 6개월여의 기간 중 절반은 서울에 없었고, 여권에는 입국도장이 계속 찍혀 남는 페이지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가 ‘기회’였다고 했다. 어릴 때 해외에서 지내면서 갖춘 영어실력은 이 기회를 잡는 데 한 몫 했다.

“가장 많이 배운 시기였지요. 신흥국가의 경우 한국처럼 신약에 대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죠. 허가 과정, 병원 운영방식, 보험 제도, 생활수준 등 각국의 다양한 환경에 맞춰 약의 출시전략을 짜기 위해선 의료진과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쉴 새가 없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아 비교적 영어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었죠.”

이후 2012년 4월, 그는 제약업계에 투신한지 6년여 만에 한국릴리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본사와 긴밀한 협력을 이뤄가며 신흥국가 등 해외 시장을 경험하고 이해했던 것이 고속 승진의 바탕이었다.

최현아 부사장은 한국 지사에 온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릴리가 위암 표적항암제 ‘사이람자’, 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 ‘트루리시티’, SGLT-2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자디앙’ 등 3개의 신약을 출시했는데, 그 뒤에는 최현아 부사장이 이끄는 의학부의 역할이 컸다.

한국릴리 의학부는 개발 단계부터 국내 의료진의 의견을 토대로 국내 시장 도입 필요성을 전달해 글로벌 임상시험을 유치했고, 제품 시판까지 수년에 걸친 준비과정에서의 전략을 수립했다. 의학부 조직이 크게 성장한 것도 그 기여도를 인정받았기 때문인데, 현재 한국릴리 의학부는 영업부 다음으로 큰 조직을 갖췄고 직원 수만 70여명에 달한다. 최현아 부사장은 현재 이 모든 업무와 인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메디컬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요. 전략이 잘 수립돼야 약물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국내 환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의학부나 제약의사의 역할이에요. 궁극적으로는 병원 내 임상의사와 제약사 내 제약의사 모두 (환자를 위한) 같은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거죠.”

제약‘의사’로서의 역할


최현아 부사장은 제약의사와 임상의사가 궁극적으로 환자 치료와 환자의 삶의 질 향상, 의학 발전 측면에서 같은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제약의사로서 새로운 치료제 개발 및 의학연구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 환자 치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임상의사는 최전선에서 환자를 개별적으로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면서 환자에게 기여한다면, 제약의사들은 더 좋은 약물을 개발하고 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학술적인 근거를 마련해 환자에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방식만 다를 뿐, 역시 ‘의사’로서의 보람은 충분히 느낀다고 했다.

또 그간 국내 제약산업 내에서 제약의사에 대한 입지가 변화해왔으며, 향후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약의사로서 처음 회사 명함을 들고 병원을 방문해서 고객들을 만났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다들 저보고 ‘의사네’하면서 놀라워했죠. 하지만 지금은 놀라지 않아요. 지난 10여년간 많은 변화와 노력들에 힘입어 제약의사의 역할과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어요. 이처럼 제약산업에서 의사의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만큼 산업 내 환경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제약의사를 꿈꾸고 있는 의대생이라면 배우려는 오픈마인드와 자신감이 필요해요. 단순히 임상의로서의 일이 부담스러워서 회사로 오고 싶어한다면 말리고 싶네요.”

제약의사가 변화해온 지난 10여년간, 최현아 부사장 역시 숨 가쁘게 달려오며 소위 성공가도를 밟아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에 멈출 생각이 없다. ‘제약의사’로서의 자부심은 물론이요, 새로운 경험을 찾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 국내 로컬과 신흥 시장을 대상으로 일을 해봤지만, 본사에서 제가 해보지 못한 일들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특정 제품으로 국한되지 않고 전 영역에 걸쳐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략을 수립하고,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부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결정할 수 있는 본사의 핵심에 참여해서 더 많은 환자에게 기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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