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한 정형외과 병원이 겪은 일이다. 응급실로 척추 골절 환자가 왔다. 40대 후반 여성으로 아파트 3층에서 떨어졌다. 척추뼈가 박살 나면서 척추관으로 밀고 들어갔다. 양쪽 다리에 신경 마비 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원장은 척수 신경 손상이 올 것 같아 수술로 신경 압박 골절 부위를 해결했다. 환자는 증상이 좋아져 퇴원했다.


몇 달 후 원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이 환자의 진료비가 삭감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존 치료를 해도 될 환자를 수술했다는 이유로 260만원이 깎였다. 압박 골절로 인한 척추선 굴곡 각도가 미약했다는 것이 익명 상태의 심평원 자문위원 지적이라는 거다.

원장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껏 응급 수술로 영구적 신경 마비가 올 환자를 살려 놨더니 과잉진료라는 덤터기를 쓴 꼴이 됐다. 그는 돈의 액수를 떠나 심평원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변호사 비용 300만원을 들여 소송을 냈다. 결국 법원은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심평원이 환자의 긴박하고 위중한 병세보다는 건강보험 고시 기준을 너무 까칠하게 해석했다는 판결을 했다.

이 사안을 통해 여러 문제가 드러난다. 의사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했으면, 일단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물론 허위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다. 건강보험 진료를 했다는 점은 그래도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다수의 의사들이 인정한 치료를 했다는 것이 된다. 그 적용 범위에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현미경 잣대를 들여다 대고 미주알고주알 지적을 한다면 끝이 없다. 그런 일 한 두 번 겪은 의사들은 급여 진료에 대한 애정이 싹 가신다고 한다. 심평원의 감시 안테나에 시달리느니 비급여 진료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되려 비급여 진료를 키우는 꼴이다.

심평원 자문위원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재판을 받을 때도 판사가 누구인지 아는데, 심평원 심사에는 누가 심사했는지를 모른다. 심사위원이나 자문위원의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이라면 재판하는 판사도 다 숨겨야 한다. 심사 실명제를 해야 심평원과 의료계가 서로 투명하게 발전한다.

이렇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제도권 진료를 하는 의사들에게는 돋보기로 뒤지며 잘잘못을 따지는 보건당국이지만, 정작 사람 생명을 위협하는 사이비 의료에는 너무나 관대하다. 한 한의원은 유방암 주변을 바늘로 찔러 암(癌) 사혈 요법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암 사혈을 통해 나온 거무칙칙한 피를 보여주며 ‘나쁜 피’가 나온 증거라고 한다. 주사 침을 써서 암으로 가는 혈액을 차단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암 덩어리 안에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혈관은 없어지지 않을뿐더러, 되레 어설픈 주사 침 조작이 암 전이를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이런 ‘중세 의료’가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시행되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민간 의료 전문가라면서 방송에 나와 “백신은 무용지물이니 맞지 마라”고 말해도 불이익이 없다. 한 대체의학 전문가는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심폐소생술보다 배꼽 주변을 만져주면 좋다고 대중 강연을 다닌다. 일부 의원이나 한의원은 대조군 연구 없이 ‘○○주사’ ‘○○약침’이 특효인 양 선전한다.

효과가 검증된 제도권 의료는 사소한 오남용에도 진료비 삭감하고 과징금 물리는데, 효과가 불분명하고 어설픈 진료를 해도 아무런 제재 행위가 없다. 정상 의료는 심사에 시달리고, 비정상 의료는 심사 무풍지대니,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는 마치 살상범이 도심 곳곳에 돌아다니는데, 경찰이 그런 범죄자는 잡지 않고, 교통신호 위반하는 차량만 단속하고 있는 꼴이다. 시쳇말로 ‘뭣이 중한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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