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원주성모의원 원장

오는 9월 30일부터 보험사기 행위를 방지하고 보험사기범을 처벌하기 위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시행된다.


문제는 그 처벌 대상에 보험금 수령자 외에도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예컨대 입원이 불필요한 환자가 입원 치료에 따른 보험금을 받았다면 이를 방조한 의사 또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셈이다.

의사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 형량으로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는 형법에 의한 양형 기준보다 매우 무거운 것이다. 사실상 의사들을 잠재적인 보험사기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으로 결국 의료기관과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알다시피 실손의료보험 때문이다.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실손보험 상품을 무분별하게 팔고 보험료를 거둬들일 때는 아무 소리 없던 보험사들이, 이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자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를 잡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 로비를 했다. 그 결과 이런 터무니없는 법이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한 얘기지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걸러낼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의료법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의해서 ‘정당한’ 사유가 없이는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아프다고 입원치료를 원하는 환자를 두고 이 사람이 보험사기범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라는 말인가?

대개의 경우, 보험사기범이란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한 뒤 불요불급한 경우에도 잦은 입원치료 등을 통해 보험금을 수령해 부당한 이득을 위하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입원치료가 필요한지 아닌지 의학적으로 판단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작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요추부 염좌 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2주 이상 입원 치료하는 경우 진료비를 거의 일률적으로 삭감해 병의원들의 불만을 산 바 있다.

그런데 요추부 염좌의 경우도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상태부터 단순히 좀 삐끗한 경우까지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이는데, 이를 어떻게 명확히 구분하여 입원을 시킬 것이며 또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은 심평원은 어떻게 심사·평가를 하겠다는 말인가.

그나마 근골격계 환자들은 좀 낫다. 만약 심혈관계 질환이나 급성 감염증 환자는 초기에 증세가 가벼워보인다고 입원을 안 시켰다가 나중에 병세가 악화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의사가 지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임상소견만 갖고 보험사기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객관적으로 알아보려면 환자가 지나치게 많은 보험에 가입했는지 또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병의원을 전전하며 입원치료를 반복해왔는지 등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정보는 의료기관이 전혀 알 수 없다. 환자의 범죄경력 등은 더욱 더 알 수 없다. 오히려 금융·사법 당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심평원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이다.

그럼에도 이런 특별법을 통해 의사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한마디로 금융·사법당국이나 공단, 심평원 등이 자신의 업무를 해태하는 것이다. 보험사기는 도저히 의사가 미리 알아내서 예방할 수 없다. 만약 극소수 양심불량인 의사나 의료기관이 공모해 보험사기범죄가 일어난다면, 지금처럼 기존의 법률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나아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보험회사 살찌우기 법이다. 보험회사가 의도하는 건 이런 황당한 법의 위세에 눌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의료기관 이용을 자제하고 또 병의원들이 입원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험 가입자들이 지급받는 보험금은 보험사들이 자선사업으로 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납입한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정당하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각종 편법과 강압을 통해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건 또 다른 보험사기다.

수 년 전 세간의 큰 화제가 되었던 아동 학대사건이 있었다. 의붓딸을 오랫동안 학대해오다 때려죽인 계모가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던 일이다. 의사들은 이번 법안을 보면서 초능력으로 보험사기범을 한순간에 가려내지 못한다면 ‘아동학대 살인범’과 다를 바 없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탄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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