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8개 병원에 떨어진 날벼락…불만 있으면 이의신청해라?

어느 날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기관의 진료비 심사조정건수 및 금액을 직원 업무 성과평가에 반영한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다. 심평원이 ‘삭감위한 삭감’을 한 증거라며, 최근 전국의 수백 개 의료기관이 동시에 환수(예정) 통보를 받아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심평원이 환수하겠다며 공문을 보낸 대상은 의료급여 환자에게 투여되는 혈액투석. 가뜩이나 저수가로 인해 투석환자 당 월 수십만 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병원들에게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환수 통보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5년 전 기준 내밀며 무더기 삭감?

A병원은 지난달 18일경 심평원으로부터 ‘의료급여 혈액투석 기준초과 청구건 정산(환수)예정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받았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진료분 중 혈액투석 인정기준을 초과해 청구된 내용이 있다며 10여건, 총 900만원 상당의 진료비를 정산(환수)하겠다는 것이다.

그 내역에는 지난 2014년말 A병원에서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가 혈액투석을 받은 당일 혈액내과에서 재진을 보고 글리벡을 처방받은 것이 포함됐다. 또 투석 중인 환자가 급성복통과 설사 등으로 응급실을 갔고 소화기내과에서 검사를 한 결과, 급성결장염 진단을 받아 치료를 한 경우가 포함돼 있었다.

심평원이 문제라고 본 것은 ‘의료급여 환자가 혈액투석을 받은 날에 왜, 다른 진료과목의 다른 전문분야 전문의가 진료를 한 것을 별도로 청구했냐’는 것이다.

‘의료급여수가의 기준 및 일반기준(보건복지부고시)’을 보면, 혈액투석은 1회당 14만6,120원(코드 O9991)의 정액수가로 책정돼 있다. 이 돈에는 진찰료, 혈액투석 수기료, 재료대, 투석액, 필수경구약제 및 Erythropoietin제제 등 투석당일 투여된 약제 및 검사료 등이 포함돼 있다. 혈액투석과 관련된 진료행위에 대해 일절 추가보상이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만성신부전증 환자가 동일 날 다른 상병으로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 경우 별도 산정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그동안 병원에서는 2~3일마다 투석을 받는 환자가 혈액투석과 관련이 없는 타 과 진료를 받으면 별도로 수가를 청구해 왔다.

그런데 심평원이 돌연, 별도 산정이 되는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는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으로,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등은 같은 내과로 봐야지 다른 진료과목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미 건강보험에서는 2007년부터 인정돼 온 내과 세부전문과목을 의료급여에서 인정하지 않으니 환수하겠다는 논리였다.

더욱이 심평원은 그 근거로 다름 아닌 15년 전 보건복지부가 내린 행정해석을 내세웠다. 지난 2002년 11월 복지부가 ‘혈액투석정액수가와 관련 내과 전문과목으로 진료 시 행위별 진료비 청구 여부’에 대한 이같은 행정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인 2002년 10월에는 별도로 행위별 수가를 산정할 수 없는 기준에 대해 ‘혈액투석을 받는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상병(예 고혈압, 당뇨, 빈혈 등) 및 혈액투석진료의사 만으로도 진료가 가능한 상병’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A병원 관계자는 “어느 날 갑자기 심평원이 2002년 행정해석 자료를 찾아내서는, 수년간 사실상 인정해 온 세부 분과를 일괄 삭감하겠다고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문제는 비단 A병원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른 지역의 B병원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이유로 80여건에 달한 진료비 1,000여만원 환수 통보를 받았다. 이 병원은 위암환자에게 투여한 항암제와 복부 CT건이 모두 삭감될 예정이며, 심장질환 원내처방건 등도 일괄 삭감리스트에 올랐다.

또다른 지역의 C병원은 무려 200여건에 달하는 혈액투석 심사 결정건을 모두 환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적게는 1,000원대부터 많게는 20만원 정도로 총 삭감예정금액이 무려 1,000여만원이다. 이 병원 역시 내분비내과나 류마티스내과, 심장내과 등에서의 진찰료나 검사료 등이 삭감 대상이었다.

이렇게 혈액투석 기준을 초과했다며 심평원으로부터 환수예정 통보를 받은 의료기관의 수는 총 228개소. 이미 심사 결정 된 총 5,000여건이 대상이다.

심평원은 이같은 공문을 보내면서 “문의사항이나 이의가 있을 경우 6월 3일까지 의료급여운영부로 양식에 맞게 이의신청을 하라”고 했다. “기한 내에 이의가 없으면 정산(환수) 예정”이라고도 했다.

백혈병이 고혈압처럼 통상적인 질병?

이같은 소식에 병원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수년간 별 문제없이 청구를 해왔고 이미 심사를 마친 2년 전 진료분에 대해 일순간 기준초과라니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병원마다 삭감되는 항목 수나 기준, 대상이 상이해 삭감하는 기준을 모르겠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내과가 세부전문분과로 운영된 지 오래됐다. 건보에서는 이미 인정돼 왔고 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 심평원은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심사와 평가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유권해석을 내밀며 전문 진료를 하지 말라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이 관계자는 “혈액투석 환자는 2일에 한번씩 외래를 오기 때문에 병원에 온 날 타과 진료를 받으려고 한다. 그동안에는 별 문제없이 진료비를 지급해 왔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유권해석을 찾아서 삭감하겠다고 한다”며 “현장의 상황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삭감부터 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이의신청을 하라는 꼴인 건데 심사 시 기준은 세워놓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심평원은 심사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문제가 되는 기준은 오히려 개선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문제점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혈액투석이 정액수가니 삭감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심평원이 제시한 규정에서도 인정된 별도산정 부분에 대해 잘못된 심사기준을 들이대고 있다고 목소리가 높다.

별도 산정이 불가한 상병은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상병’인데 고시에서 예로 든 고혈압, 당뇨, 빈혈 등과는 차원이 다른 백혈병이나 암 등도 일괄적으로 삭감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심평원이 뒤늦게 과거의 행정해석을 찾았고 그 기준이 바뀌기 전까지는 세부분과 진료에 대한 삭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별도산정이 되는 백혈병 등은 왜 삭감하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통상적인 상병이 백혈병도 포함되는지 물었을 때 직원조차 ‘아닌 거 같지만 절차상 어쩔 수 없다. 이의제기를 하라’고만 했다”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삭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병원들, 대안 마련에 고군분투

이로 인해 전국 병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환수 예정 통보를 받은 병원들은 저마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상태다. 타 병원의 환수건수와 사유를 비교해보면서 삭감 이유가 무엇인지 환수대상 진료분을 분석하는 한편, 동일 날 다른 과목 진료를 받지 못하도록 환자를 회유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미 신장내과에 삭감에 대해 통보를 했다. 병원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 기왕이면 환자들이 투석을 하는 날이 아닌 다른 날 다른 과 진료를 받으라고 해야 하는데 말하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소화기내과에서 검사한 후 다음 진료 전 채혈을 해야 하는 경우, 환자들은 투석 받으러 온 날 채혈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2~3일마다 오는데 굳이 채혈 때문에 또 오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환자들이 협조해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러한 삭감이 계속될 경우 환자 진료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혈액투석 정액수가에, 별도 산정이 불가피한 진료비까지 병원이 감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혈액투석 정액수가 14만6,120원은 행위별 수가와 비교하면 약 7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 병원의 2015년 7월부터 8월까지 2개월간 혈액투석 환자의 진료비를 행위별로 산출해 본 결과, 행위별 평균 진료비는 19만4,303원으로 정액수가보다 4만8,183원이 많았다. 정액수가가 행위별의 75.2% 수준인 셈으로, 이중 추가 처치 및 검사가 이뤄지면 많게는 40여만원이, 적게도 15만원의 진료비가 발생한다.

여기에 백혈병 등 희귀질환자가 진료를 받으면 수백만원(글리벡 400여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 때문에 혈액투석 환자 당 월 수십만 원의 손실을 봐야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혈액투석 환자는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의료급여 혈액투석 환자수는 2009년 이후 1만2,898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5년 1만7,650명으로 36%가 증가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혈액투석 환자가 2~3일에 한번 씩 투석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많을 때는 한 달에 15번 투석을 받는다. 때문에 일부 병원에서 투석횟수를 과장해 청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소수의 병원 때문에 모든 병원을 대상으로 확대해 일괄 삭감하려는 것 같다. 문제가 있는 병원만 선별적으로 조사를 해야지 이런 식의 삭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구방법 변경에 따른 사후점검일 뿐”

그러나 심평원은 전혀 다른 이유를 들고 있다. 심사 기준이 바뀐 것도 아니며, 삭감을 위한 삭감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의료급여 정액수가의 청구방법이 바뀌어서 사후관리 차원으로 협조 공문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심평원 의료급여실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4년 9월 바뀐 의료급여 정액수가 청구방법이다.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외래 혈액투석은 기존에 정액수가 및 행위별 명세서를 하나의 접수번호로 청구했다.

하지만 2014년 9월부터는 정액건은 정액명세서에 별도로 청구해 행위별과 정액 등 두 가지의 명세서를 작성하도록 변경됐다. 청구방법을 바꾼 이유는 단 한 줄의 ‘의료급여-혈액투석 정액수가 13만6,000원(당시 수가)’으로만 혈액투석 수가를 청구할 경우 세부 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별도의 정액 명세서를 만들어 행위별 진료내역을 모두 기재하고 심사결정금액은 14만6,120원(현 수가)으로 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행위별 진료내역을 보고 수가보상률을 판단하고 수가인상 등 정책검토 자료로 명세서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됐다. 한 환자의 정액 청구와 행위별 청구가 별도의 명세서로 각각 청구되다보니 명세서간 연계가 어려웠던 것.

이에 심평원 의료급여실은 정액수가에 포함된 항목인데 별도로 청구한 경우가 있는지 등을 전산심사 해 중복된 부분을 찾아내는 일종의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환수예정 통보는 사후점검 과정에서 발견된 불일치 항목으로, 해당 진료건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는 취지로 공문을 발송했다는 게 심평원측 주장이다.

물론 심평원은 발송된 공문의 진료내역이 환수 결정된 건은 아니며, 이의제기가 아닌 건별 의견을 심평원에 제시해주면 이를 토대로 전건 추가 분석을 해서 정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공문은 환수(예정)안내라고 보냈지만 실제로는 의견 수렴이며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정 기간 환수대상 진료건에 대한 ‘이의가 없을 경우 환수예정’이라는 문구 역시 잘못됐다고 분명히 했다.

의료급여실 유현자 실장은 “청구 서식이 달라진 시점부터 사후관리를 한 것으로 (청구방법이 바뀌고) 처음이라서 그렇지 내부적으로 기준이 정해지면 이러한(이의신청) 절차가 생략될 것이다. 다양한 사례를 발췌하기 위해 병원에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 실장은 “이의가 있으면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한 것이며, 일부 환수할 것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환수(예정)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렇지 않은 기관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좀 그럴거 같다”며 “명백히 환수할 대상은 정산하고 추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은 그에 따른 안내 문서를 재발송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이번부터 의료급여의 세부분과에 대해서 불인정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의 행정해석에 분명히 명시돼 있는 만큼 임의로 인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의료계에서 세부분과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세부분과 인정에 대해 내부 검토를 해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별도 인정되는 상병, 고가의 진료비가 소요되는 질환 등에 대해서는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삭감대상인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상병의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환수 공문 보내놓고 환수 아니다?

하지만 이번 환수통보에 대한 논란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는 심평원이 환수 예정이라는 공문을 버젓이 보내놓고는 반발이 커지자 돌연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

A병원 관계자는 “(심평원에) 전화했을 때는 억울하면 이의신청하라는 식으로 공문을 던지고 말았다. 병원들이 전화하고 난리가 나니까 최근에 들어 입장을 바꾼 게 아닐까 싶다”면서 “심평원이 보낸 공문은 기존에 다른 심사 종결건에 대한 사후 삭감통보를 할 때와 같은 것이다. 그때 별다른 액션(이의신청)을 안하면 심평원은 한달 뒤 정산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청구방법이 바뀐 것은 맞지만 이번 환수공문이 그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의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수하지 않겠다,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하겠다는 이야기도 일절 없었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환수예정 통보는 ‘곧 환수 할 테니 알고 있어라’는 의미로, 다만 이의신청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의신청을 하면 추가검토를 하긴 하지만 대부분 반영이 안된 채 진행돼 왔다”면서 “공문 제목이 환수예정인데 (환수가) 아니라는 말을 믿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경우 심사기준 등의 변경이 있을 경우 병협 등 의료계와 사전 및 사후 논의를 한다. 자동차보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료급여의 경우 단 한 번도 제도 변경에 대해 사전 논의를 하자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이번 청구방법 변경을 할 때는 물론 이번 사태가 청구방법 변경으로 인한 의견수렴 과정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 협회 차원에서 환수 이유가 무엇인지, 통상적인 상병에 대한 설명을 물었을 때 역시 이의신청을 하라고만 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심평원의 대규모 환수예정 통보가 명확한 원칙 없이 삭감부터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환수 예정 통보를 하려면 먼저 명확한 심사 기준을 정해놓고 해야 한다. 청구방법이 계기가 됐든, 기존에 적용하지 못한 심사기준을 지금에라도 적용해야 했든 이에 대해 의료기관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5,000건에 달하는 진료분을 환수하겠다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검토할 예정이니 기준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공문에 명시된 문구를 믿는다. 환수를 하겠다고 명백히 해놓고서는 의견조회였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심사 기준 없이 삭감부터 하려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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