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 2차 백서 발간
성과 거뒀지만 조사권 한계에 처분 지연 아쉬움
"비윤리 의사 신속한 격리 위해 제도 개선해야"

지난해 8월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마약류 약물을 투약한 20대 운전자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했다. 가해자가 약물을 구한 통로는 의사였다. 치료 목적이 아닌데도 가해자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이 의사를 경찰보다 먼저 조사하고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동료 의사들이다.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 마약류 처방 의사는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이 다룬 마지막 민원 사례다. 치료 목적 외 마약류 처방은 물론 진료기록 거짓 작성과 불법 촬영, 준강간 혐의까지 있었다.

민원을 접수한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조사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사회가 "전문가평가단이 사업 취지를 살려 '자체조사권'을 가졌다면 더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다. 이 의사는 지난달 구속됐다.

서울시의사회는 18일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운영 백서 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과와 개선 방향을 논했다(ⓒ청년의사).
서울시의사회는 18일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운영 백서 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과와 개선 방향을 논했다(ⓒ청년의사).

서울시의사회는 18일 오후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전문가평가단 백서 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간 성과와 개선 방향을 다뤘다.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은 의사 자율징계권 확보를 목표로 시작했다.

지난 2019년 5월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 출범 후 처리한 민원은 총 72건이다. 8개 시범사업단 중 가장 많다. 주요 민원은 ▲홈페이지·방송매체 광고 ▲불법 성형 관련 애플리케이션 광고 ▲유튜브 동영상 등 불법 의료광고 관련 민원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이 다룬 민원은 ▲의료인 폭언·폭행 ▲전공의 음주 ▲교수 직함 사칭 ▲동료 의료인 비하 ▲비윤리적 마약류 처방 ▲비윤리적인 다이어트약 처방 행위 등이다.

이 중 35건은 '주의' 조치하고 11건은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불법 처방한 사례가 여기 포함된다. 서울시의사회가 회원을 고발한 사례도 1건이다.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고 무면허의료행위를 방조한 사례였다.

롤스로이스 사건 연루 의사처럼 경찰이나 보건소가 대상자를 조사하면서 전문가평가단이 '조사 중단'한 사례는 12건이다. 사업 초기인 지난 2020년 환자와 의료진을 성희롱한 서울아산병원 인턴 사건 조사도 보건소가 해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중단됐다.

황규석 단장(부회장)은 "'롤스로이스 사건' 연루 회원처럼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의사회가 바로 조사하고 싶어도 법적 근거가 없어서 어렵다. 누가 민원을 제보해야 조사에 나설 수 있다. 우리가 조사하고 있어도 경찰이나 보건소 조사가 들어가면 중단해야 한다"며 "비윤리적 행위를 근절하고자 의지를 가져도 권한과 제도의 미비로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박명하 회장은 전문가평가단 조사를 거쳐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에 행정처분을 의뢰해도 실제 처분이 지연된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 출범 당시 첫 번째 단장으로 일했다.

박 회장은 "전문가평가단이 행정처분을 의뢰해도 복지부가 보건소를 통해 재조사하거나 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처분을 지연하기도 한다"며 "그럼 환자로부터 문제 있는 의사를 격리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동료 의사로서 빠른 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어렵게 처분을 요청한 건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 변호사처럼 의사도 시도의사회가 문제 회원 업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며 "또한 현재 보건소로 제기되는 동료 의원이나 시민 민원 중 취지에 맞는 사례는 시도의사회로 이첩돼 빠르게 처리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물론 의협도 전문가평가제 정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황 단장은 "시도의사회 윤리위원회를 거쳐 의협 중윤위로 올라가는 것도 소요되는 시간이나 절차가 복잡하다. 그런데 중윤위에서도 심리가 지연되거나 재심을 거치는 등 복지부 행정처분 의뢰가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렇게 중윤위 내 판단이 계속 늦어지는 것도 제도 실효성을 떨어트린다. 이런 부분에서 중윤위 역할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황 단장은 "전문가평가제도에 충실하게 일하면 7개월 안에라도 행정처분을 통해 문제 회원 영업정지 단계까지 갈 수 있다"며 "전문가평가제는 우리 의사가 윤리적인 면에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본 사업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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