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 원장

[청년의사 신문 조승연] 부끄러운 통계가 또 하나 발표됐다. OECD 회원국 중 인구 당 병상 수로 우리나라의 출산사망률이 벽, 오지가 훨씬 많은 중국과 비슷하고 GDP가 훨씬 낮은 스리랑카보다 높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취약 지역에 제대로 된 산부인과 시설과 의료진이 적은 게 원인이고 이는 공공의료의 몫일 것이다.


모든 지방의료원은 이달 안으로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지방의료원 육성을 위한 3개년 운영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크게 공공의료기능 강화와 경영개선 계획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도시지역의 의료원은 민간병원과 경쟁분야는 축소해야 하고, 반면 일반적자를 이 기간 내에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거기에다 지역에 부족한 필수의료분야는 중점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단다. 그렇지 못한 의료원에는 지원이 없다한다. 해마다 반복돼 왔듯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라는 주문이다. 그것도 3년 말미 안에 말이다.

지방의료원 경영진이 이 미션을 이루자면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할 정도로 신통방통해야 할 것 같다. 민간병원이 수익성 없어 포기하는 분야를 강화하고, 그나마 수익성이 있는 분야는 민간과의 경쟁을 축소하고, 또한 경영 수지는 맞추어야 하다니.

국립대병원 수익성을 비중 높여 평가하려는 교육부 안이 여러 반대에 부딪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목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대기환자가 줄 서며 각종 복지혜택과 수준 높은 의료 인력으로 물적, 행정지원을 많이 받고 있는 이들 병원조차 수익적 사업을 강화하고 공공적 기능을 축소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까 우려한다. 하물며 도시외곽, 공단 한 가운데 산꼭대기에 지어놓고 낮은 임금과 복지로 간호사, 의사가 지원하기 기피하는 지방의료원이 적자를 줄이면 예산지원해 주고 그렇지 못하면 그나마 못 받게 된다.

지방의료원은 시설장비예산은 중앙정부(복지부)와 지방정부가 절반씩 부담(매칭펀드)하고 있으나 운영비는 전액 설립주체인 지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마다 재정상황과 공공의료에 대한 입장이 다양해 각 의료원에 주는 지원이 천차만별이다. 충분한 운영비 지원은커녕 이미 책정된 예산조차 재정형편 상 매칭을 못해 도로 반납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각 지방의료원 간 수준차이가 심해지고 이로 인해 해당 지역 주민이 누리는 공공보건의료 수준이 점점 벌어지는 양극화가 앞으로 고착돼 갈 것이라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주의료원 폐업사태 이후 국회와 정부에서 노력해 만든 국회 국정조사보고서와 이후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중앙정부가 직접 운영비를 각 지방의료원에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지만 그 지원은 미미하고 더디기만 하다. 이미 복지부가 시행한 용역 결과, 지방의료원 적자의 60% 이상이 공익적 적자로 추산됐다. 물론 여기에는 접근성이 취약한 곳에 설립된 점과 공기업으로서 경직된 고용구조로 인한 높은 인건비 비중 해소의 어려움이 가장 크게 기여함에도 적자의 원인에서 제외된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밝혀진 공익적 적자의 보전 또한 아직 이루어 진 것이 없고, 이 와중에 많은 지방의료원들은 서서히 헤어나지 못할 만성 중병에 걸려 고사해 가고 있다.

의료취약지의 모성사망을 낮추는 일은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한 공공의료기반 확충을 통하여만 가능하다. 분만관련 보험수가를 올려서 해결이 가능하다는 일부의 주장은 시장중심의료에서 발생한 지역 간 보건의료 격차를 또다시 시장가격으로 조절하려고 드는 미봉책이다. 의료취약지 의사의 연봉은 도심보다 훨씬 높게 책정해도 지원자가 별로 없다. 직원들에겐 수년간 동결된 임금마저도 체불이 반복되고, 언제 진주의료원처럼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 벽지근무에 대한 격려는커녕 방만경영을 탓하며 적정한 지원보다 돈을 벌어 경영수지를 맞추라는 해마다 반복되는 주문을 보면서 분만수가 인상만으로 지방의료원에 지원하는 의사, 간호사 지원자가 늘어나고 주민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 하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뿌리가 말라가는 나무를 흙을 채우고 거름을 주어야지 잔가지만 열심히 치고 다듬는다고 도로 싱싱해 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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