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에서 찾는 지속가능한 의료서비스의 미래②
환자-의사 간 라포 형성돼야 제대로 된 왕진 가능
포스트코로나 시대, '전화진료+왕진시스템'이 최적

일차의료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왕진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처럼 의원급 의료기관 중 왕진이 가능한 의사가 신청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이들 중 거리와 시간이 맞는 의사에게 요청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시범사업까지 하면서 살펴보고 있는 이같은 시스템으로는 절대 왕진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왕진은 왕진의가 환자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고, 더해 의사와 환자 간 라포가 형성돼 있어야 있어야 하는데 현 시범사업은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이란?

복지부가 추진 중인 다양한 시범사업 중 왕진제 도입을 목표로 하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은 왕진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도 정작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은 국민의 다양한 의료적 요구에 대한 대응과 거동 불편 환자에 대한 의료접근성 개선을 목표로 한다. 의원급 의료기관 중 방문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1인 이상인 곳이 신청을 통해 시범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방문진료는 질병, 부상, 출산 등으로 진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으나 보행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해 환자나 보호자의 방문진료 요청이 있는 경우 가능하며, 진찰, 처방, 질환관리, 검사, 의뢰, 교육상담, 기타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19년 시작된 시범사업은 최근 2차 사업을 시작했는데, 시범사업 추진부터 의료계와 수가책정을 놓고 이견이 있었고, 2차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수가는 좀 올랐지만 전국에서 약 300여개 기관만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시범사업 수가는 방문진료 시 발생하는 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에 대한 비용을 포함하는 방문진료료1의 경우 12만700원이며, 이 경우 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에 대한 수가는 별도 산정할 수 없다.

방문진료 시 발생하는 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을 포함하지 않는 방문진료료2는 8만3,970원이며, 방문진료 외 별도로 이뤄진 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은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요양급여비용 산정기준에 따라 별도 산정할 수 있다.

환자가 아무 의사나 부르는 건 왕진 아니야

이같은 시범사업에 대해 일차의료 전문가들은 비판 일변도다. 현 상황을 보면 제대로 될 수도, 제대로 돼서도 안되는 시범사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사들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는 시범사업에 참여할 기관 기준으로 왕진이 가능한 의사가 있는 의원급 기관이라는 기준만 정했는데, 그 말은 어떤 전문의도 시범사업에 참여해 왕진을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직접 왕진을 나가보면 대부분 환자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의사가 봐야 하는 환자”라고 말했다.

이비인후과나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도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신청했다면 왕진을 갈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들이 거동이 불편한, 수술 후 환자 등에게 해줄 수 있는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시범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 없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정 원장은 “왕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의사들의 참여를 늘려야 하는데 (벌써 사업이 2차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나같이 왕진에 관심이 큰 사람도 ‘왕진’에 대해 검색해보다 우연히 시범사업에 대해 알고 참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왕진에 관심이 큰 의사도 이 정도인데 일반 의사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며 “환자들에게도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지, 시범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 환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의사-환자 간 ‘라포’ 형성이 왕진의 기본

이 외 정 원장은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로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낮은 수가를 꼽는데, 수가보다 제대로 된 왕진이 불가능한 시스템이 더 문제라고 했다.

정 원장은 “왕진은 왕진이 필요한 환자가 주변에 왕진이 가능한 아무 의사나 불러서 하는 서비스가 돼서는 안된다”며 “왕진은 무엇보다 의사와 환자가 라포 형성이 중요하다. 환자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가 없는 의사가 왕진을 가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현 시범사업 시스템은 나에게 소속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외래진료할 시간을 빼서 왕진을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때문에 ‘기회비용’을 계산하게 된다. 이 때문에 진료비 문제도 발생하고 의사와 환자 간 제대로 된 관계 형성도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 역시 시범사업을 신청한 의원 아무곳에나 왕진 신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왕진은 기본적으로 동네의원과 의사 간 신뢰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환자가 왕진의료기관을 검색해서 찾고 왕진을 신청해서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왕진의 기본은 의사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는 것은 물론 라포까지 형성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라며 “의사가 환자에 대한 정보도 없고 라포도 없는데 왕진가서 제대로 된 케어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내 환자 돼야 관리 가능…'주치의'를 말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왕진 필요성을 말하는 전문가들은 왕진을 포함한 지역사회 내 제대로 된 일차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주치의제도’ 도입을 논의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주치의제도를 바탕으로 한 일차의료 강화가 현실화 되면 왕진은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의료서비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재호 교수는 “왕진이라는 서비스는 결국 의사가 환자의 ‘맥락’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주거형태, 가족관계 등 환자가 처한 상황을 의사가 이해하고 있어야 케어가 가능하다. 제대로 된 일차의료가 있으면 왕진은 제도가 아니라 진료의 자연스런 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국 일차의료를 강화를 통해 왕진을 하더라도 환자 맥락을 아는 주치의가 방문해야 제대로 된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지금 형태로 시범사업을 해봐야 환자를 응급실로 보낼지, 다른 의사에게 보낼지 정도만 결정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주치의 한명이 1200명 환자 관리…1억5000원 수입 보장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일차의료 강화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공통점은 현 시스템을 뒤엎고 당장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적어도 1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하의대 임종한 학장은 “의사 한명이 지역에서 약 1,200명의 환자를 관리한다고 했을 때 이들에게 연간 1억5,000만원 정도 수입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개원을 위해 여러 장비 등을 구입하는 것은 필요없고 상담과 만성질환 관리 등을 중심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임 학장은 “해외에서 일차의료를 잘하는 나라들을 보면 일차의료에 투입되는 재원이 전체 진료비 중 30~40% 정도 된다"면서 "이 정도 재원으로 환자 90%를 관리하고 나머지 재원을 일차의료에서 막지 못한 10% 환자의 진료비를 충당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치의제도에 대해 여전히 의료계 내에서 반발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령사회 진입과 진료비 증가 등의 상황을 보면 초고령사회가 되는 2025년까지 노인 주치의제도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히 가야한다”고 언급했다.

환자인센티브→의료기관 인센티브→의료기관 명단 확보

이재호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지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주치의’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주치의제도 도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우선 공단에서 건보 가입 시 환자에게 동네의원 중 원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정하도록 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환자 스스로 의료이용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환자에게 선택받은 의료기관에 관련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두번째고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의료기관에 자신을 주치의료 선택한 환자 리스트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교수는 “(공단 의지를 통해) 먼저 환자가 바뀌고 의료기관이 인센티브를 받는 것을 알게 되고, 마지막으로 의료기관이 (자신이 관리해야 할) 환자 데이터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이런 시스템이면 도입 과정에서 주치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터 시작해 10년 계획 세워야 성공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일차의료 전문가들이 아무리 주치의제도를 이야기 해도 쉽지 않다. 현장은 주치의를 맡아야 하는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인하의대 임종한 학장은 ▲전공의를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수련 시스템 개선 ▲수련비용 국가 제공을 통한 일반의 양성 수련구조 마련 등을 제안했다.

임 학장은 “외국의 경우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일차의료와 관련한 수련구조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3차의료기관에서 전공의를 고용해 인건비를 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며 “교육수련이 우선돼야 변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학장은 “주치의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현장에서 일반의 한명이 약 1,200명의 환자를 관리한다고 계산하면 약 4만명의 일반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10만이라고 하면 딱 30% 정도”라고 설명했다.

임 학장은 “지금도 10만 의사 중 약 1만5,000명이 내과와 가정의학과 의사들인데 이들을 주치의료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나머지 2만5,000명만 더 필요하다”며 “이 정도 일반의를 더 배출하려면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 적어도 10년 정도는 걸린다”고 덧붙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왕진은 대안이 될까?

정명관 원장은 왕진에 대해 고민하고 도입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로 왕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화해야 하는 보건의료체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코로나19 시대에 누구나 비대면 진료를 이야기 하는데 그건 정답이 아니다"라며 "비대면 진료라고 해서 환자에게 각종 장비를 나눠주고 정보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는데, 전화진료 정도만 허용해주고 왕진과 결합하면 완벽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환자들에게 장비를 맡기면 정확한 의료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대면진료를 하고 전화진료로 관리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 왕진을 통해 직접 환자가 처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문재인 정부 하에서 추진 중인 커뮤니티케어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위해서는 왕진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 원장은 “일차의료 활성화, 왕진시스템 도입 등의 문제는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 일반의들이 일할 영역, 준비, 인력 배출, 전공의 정원 등 보건의료체계 전반을 살펴야 한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5~10년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왕진이 활성화 되면 2025년부터 시작되는 초고령사회에 노인인구가 늘어도 입원수요를 줄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의료비도 감소하게 될 것"이라며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는 것이 현재 모든 국가들의 목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를 위한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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