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진단용 의료기기 허가 판결에 의료계 반발
"자궁내막암 놓쳐서 환자가 명백하게 피해 입은 사건"
국민 건강 위해 우려…"대법원이 책임 질 거냐"
법조계 "의학·한의학 경계 허무는 판결 이어질 것"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2일 오후 한의사도 초음파 기기 등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반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2일 오후 한의사도 초음파 기기 등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반발했다.

한의사에게 사실상 초음파 기기 등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을 허락한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다가 암 진단이 늦어진 사건에서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라고 한 대법원 판단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자궁내막증식증으로 한의원을 찾은 환자에게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관련 기사: 대법원 “한의사, 진단용 의료기기 써도 된다” 판결…왜?).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게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 사건 환자가 자궁내막증식증으로 한의원에서 진료받다가 자궁내막암 진단이 늦어졌는데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황당하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판결 직후 "대단히 유감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한의사가)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치료가 늦어져 환자가 명백하게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검사 자체 위험도가 낮더라도 검사는 결과가 중요하다. 이번 사건처럼 오진하거나 (한의사가) 초음파를 근거로 잘못된 처치를 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면서 "의협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단을 가리지 않고 총력을 기울여 막겠다"고 했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김교웅 위원장 역시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결론"이라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넘어 황당한 수준"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의사와 한의사 이원적 면허 체계라는 시스템에서 불가능한 판결이다. 피해자가 자궁내막암 치료 시기를 놓친 사건인데 (법원이) 위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면 의사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면서 "의사의 의료행위가 무엇이고 한방의 원리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보조적'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책임을 면피하겠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법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법원이 무리하게 진행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결국 (법원이) 무면허 진료가 횡행하게 만들었다.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해 의협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방특위에서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환자 안전 우려 쏟아져…'한의대 교육 강화만 하면 되냐' 반발도

자궁내막암은 발견이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면 겉보기로는 자궁내막이 두꺼워지는 자궁내막증식증과 구별이 어렵다. 출혈이나 폐경 여부도 진단에 영향을 미친다. 산부인과는 초음파 진단에서 자궁내막암이 의심되면 조직검사로 확인한다.

이 사건 환자 역시 A씨 진료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산부인과 병원에서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자궁에서 덩어리가 보이니 큰 병원에서 진료받으라'는 권유로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 자궁내막암 2기로 진단됐다.

이 때문에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이 보건의료상 위해가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야말로 "국민 건강에 위해를 가하고 사회에 대단히 좋지 않은 신호를 준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로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을 지냈다.

김 회장은 "피해자가 자궁내막암 환자다. 여성에게 자궁내막암은 치명적인 질병이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진단했다가 오진을 하면 말 그대로 환자의 생명이 오갈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대법원이 "한의대가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 관련 교육을 보완·강화"한 점을 들어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리적인 범위에서 국민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판단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김 회장은 "의대 교육과정에 산부인과가 있다. 하지만 의대에서 배웠다고 산부인과 진료를 하겠다는 의사는 없다. 인턴부터 시작해 5년의 수련을 거친 전문의만이 산부인과 진료에 전념한다"면서 "초음파로 병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단순히 공부만으로 되지 않는다. 산부인과 전문의들 역시 수많은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진찰해서 진단을 내리고 치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진단만'이라고 하는데 치료는 못하고 진단만 하는 '의사'를 과연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또한 그런 의사가 과연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인지도 회의적"이라고 했다.

서울시의사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이세라 위원장은 "교육 과정만 보완하면 법률 지식 없는 사람도 바로 변호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냐"며 "(의사 면허는) 국가가 내는 면허다. 교육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의사와 한의사 직역 간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단히 무책임 판결이다. 이후에 발생할 수많은 문제를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이 과연 책임질 수 있겠느냐"면서 "결국 이번 판결이 수많은 사회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법원 판결 '시대의 흐름'…"경계 허무는 판결 이어질 것"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앞으로 의학과 한의학의 경계 붕괴는 더 가속되는 만큼 정책적 차원에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곧 시대를 반영한다. 이례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법원으로서는 국민 건강 보호라는 기본적인 책무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변호사는 "물론 의사 입장에서 초음파 진단이 질병을 파악하고 적절한 처방으로 이어져야 하는 만큼 진료의 전 과정에서 봤을 때 제대로 된 진료라고 할 수 있나 의문이 들 수 있다"면서 "그러나 초음파는 침습적 행위가 아니고 의사가 가진 침습행위에 대한 원상복구 의무나 필요성도 없다. 한의사가 침습적이지 않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의학과 한의학을 구분할 당시에는 의료기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의료기기가 등장하고 의사와 한의사 중 누가 사용하느냐는 결국 정책의 문제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명이 판례 변경이 아니라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비해 의학과 한의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보건의료분야에서 경계를 허무는 판결이 조금씩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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