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 의료계 "환자 피해 책임질 건가" 반발
초음파기기 안전과 오진 위험은 별개 지적 이어져
"의료법 위반 아니라는 판단 근거도 미흡" 주장에…의협 책임론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2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한의사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의료계가 연일 반발하고 있다(ⓒ청년의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2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한의사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의료계가 연일 반발하고 있다(ⓒ청년의사).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다가 암 진단이 늦어진 사건에서 대법원이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대법원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한의사에게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해 국민 건강을 위험에 빠트렸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대한정맥통증학회는 26일 성명에서 "2년 넘는 기간 동안 초음파 검사 하는 시늉만 내다가 암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켰다. 그런데도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사기꾼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빠트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 어떤 범죄보다 무겁다"고 규탄했다.

정맥통증학회는 "한의사 오진으로 환자 피해가 뚜렷한데도 그 피해 사실을 숨겼고 판결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궤변을 무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며 "오진으로 환자 입는 피해가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위해란 말이냐"고 했다.

정맥통증학회는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책임은 대법원에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 환자 피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대법원 몫"이라면서 "대법원은 잘못된 판결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초음파 진단기기 자체 안전성과 이를 이용한 진단 안전성은 별개 문제라고 했다. 지난 2016년 당시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초음파골밀도측정기 시연에 나섰다가 '오진 논란'을 일으킨 점도 상기시켰다.

대개협은 "초음파 진단기기가 비교적 안전하고 사용이 용이하다고 해서 한의학적 진단에 부가적으로 사용하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한의사의 아전인수에 불과하다"면서 "한의협 회장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 시범을 보이다 의료계 웃음거리가 된 것이 불과 수년 전이다. 도대체 그사이 한의학계에 어떤 중대한 발전이 있었기에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초음파 진단이 한의학적 진료 정확성을 높이고 국민 건강을 증진한다면 구체적인 실험과 임상 근거가 전제돼야 한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인기영합주의에 빠진 판단은 결코 용인해선 안 된다"면서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상급심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고 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와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도 이번 판결이 의학과 의료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판결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신경외과의사회는 "사회적 통념이라는 논리로 정통의학과 한방을 동일시한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 의료를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웠다"고 성토했다.

신경외과의사회는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도 심각하지만 그 결과를 이용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면서 "대법원 판결은 진보가 아닌 과거로 퇴행이고 법이 의료를 격하시킨 사건"이라고 했다.

비뇨의학과의사회 역시 "대법원이 의료체계는 물론 국민 건강과 생명이라는 대의를 한 번이라도 고민했는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면서 "의료행위나 진단의 직접적인 위해는 물론 부정확한 검사로 인한 오진 등 이차적 피해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이 금지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구체적인 근거도 없다고 했다.

비뇨의학과의사회는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여부는 의료행위 개발과 적용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해 한의학의 전문성이 내재돼 있는지 논리적으로 따져본 후에 판단해야 한다"면서 "초음파 검사는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수행한 의료행위도 아니고 그들이 발전시킨 의료기기를 이용하지도 않으며 한의학에 의거한 근거 수준을 확보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 역시 이 점을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대해 판단하면서 모호한 추정을 근거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면서 명확한 판단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가변성과 학문적 원리,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제도·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해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새로운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의료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물론 최근 10년 내 기존 판결 경향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나 요인도 없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책임론도 거론했다.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결만 믿고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한의사 초음파 사용이 합법화되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되는데도 이런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의협이 대체 어떤 노력을 했느냐'면서 "1·2심 판결에 안심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전환했을 때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앞으로 의협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지 말고 국회와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파업까지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을 즉각 실행에 옮기라"고 촉구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현재 사태는 의료인의 면허 범위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더 큰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피부과의사회는 “한의사들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해 의료법상 면허범위를 넘어선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속한다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라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도 “건국 이래 가장 어이없는 판결”이라며 “판결문 어디에도 한의사가 초음파로 찾으려던 ‘무엇’이 나오지 않으며 단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역사서에 나오는 음양으로 인체의 이치를 설명하는 동양 의학에서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현대의학의 원리에 따르는 초음파 검사가 활용됐다면 그 궤를 달리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한의사는 초음파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한의사는 자궁과 난소 치료 전문이라는 허명과 초음파라는 현대 의료기기를 이용해 시간을 끌었을 것”이라며 “환자가 잘못된 설명을 분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초음파를 이용해 환자를 기망하고 68회나 한의원을 내원하게 한 것이 사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의협도 행동에 나섰다. 이날(26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대법원 앞에서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와 함께 이번 판결을 규탄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도 매일 오전 대법원 앞 릴레이 1인 시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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