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의협 '무대응의 일관성'만 보여줘…이제라도 구심점되길"
"젊은 세대 목소리 '전달' 넘어 실현시킬 구조 만들겠다"
1년 4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권 교체가 곧 국면 전환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도 사그라들고 있다. 24·25·26학번이 한번에 수업받아야 하는 '트리플링'이 현실화됐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는 상태다. '이제는 돌아가라', '아직 아니다'로 갈린 의료계 목소리도 좀처럼 힘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최근 언론과 만난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의협의 "무대응의 일관성"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지난 1월 출범한 김택우 집행부가 주요 변곡점을 "그대로 흘려보냈다"고 했다. 정부가 움직이길 기다리며 내부 논의가 미뤄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잃었다는 평가다. 의협 부회장이라는 '내부자'로서도 젊은 의사 지지를 받아 탄생한 집행부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뼈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을 국면 전환의 기점으로 삼고, 이제는 의협이 "선제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정책 주체로서 환자와 국민은 물론 의료계 내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의견 수렴 구조를 개선하고, 전략적으로 국민을 설득해 "전공의 의대생을 위한 실질적인 복귀 기반"을 마련하자고 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의사회 차원에서 전공의와 의대생 협의체를 꾸려, 의료계와 정부 간 대화 창구를 열 생각이다. "젊은 세대 목소리를 전달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참여하는 구조로 바꾸겠다"고 했다. 임상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법적·재정적 지원도 더 체계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의료인으로서 상처 입은 정체성"이 치유돼야 '대책'도 '제도'도 작동한다는 판단이다.
황 회장은 "의료계는 원래 하나였다"고 말했다. 교수와 전공의, 개원의와 의대생을 갈라놓는 프레임을 깨고, 의료계가 다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시의사회는 "그 여정의 선두에 서겠다"고 했다.
- 서울시의사회장이자 의협 부회장이다. 의협 김택우 집행부는 젊은 의사 지지 속에 출범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의협 외부자이자 내부자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뼈아픈 지적이다. 내부 의견 수렴 구조는 경직돼 있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 창구도 부족했다. 정책 대응 메시지가 일관되지 못한데, 결정의 타이밍조차 번번이 늦었다. 정부가 정책을 강행하는 동안 의협은 내부 합의에 머물렀다. 지난해 12월, 올해 2월, 그리고 트리플링이 가시화되던 5월 모두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때마다 책임 있는 결정이나 방향 제시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이제라도 조직문화 개혁과 미디어 전략 강화에 나서야 한다. 의료계 내부와 국민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실행력이 요구된다.
- 의협은 정부 책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이재명 정부의 사과와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지난 정부 과오를 인정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이나 '의료개혁'은 지난 정부에서 비롯됐고, 현 정부는 그 과정에 책임이 없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정권은 교체됐고 현재 정부는 아직 책임자조차 임명되지 않은 상태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도 없는 상황에서 정책 대안을 요구하면서, 정작 대화는 이들이 임명된 후에 하겠다고 한다. 이런 자세가 실질적인 대안 마련과 사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의협이 먼저 정책 방향을 정리하고 젊은 세대 요구를 정제해 정부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전공의 7개안, 의대생 8개안 등을 다시 검토해 의료계의 대안을 제시하며 주도권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의료 정책 방향은?
의정 갈등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제자리로 복귀'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니 의정 갈등을 정치가 아닌 역사의 시각에서 접근해 달라. 의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의료계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 수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의료 정책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 사회적 합의가 기반이 돼야 한다. 의료계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료인력 수급은 의대 정원 확대해서 해결하자는 식의 단편적인 방법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핵심은 신뢰 회복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젊은 의료인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들을 향한 행정 명령이나 유급 압박은 갈등을 장기화시킬 뿐이다. 정책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복귀를 설득할 수 없다. 정책 실패 책임을 진 관계자를 문책하고, 일관된 기준과 약속의 이행으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시의사회는 사태 초기부터 전공의·의대생 대표들과 간담회를 진행해왔다. 정부에도 유급 시한 유예 등 현실적인 조정을 요구했고, 정책의 수정 가능성을 열어둘 것을 촉구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공의와 의대생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추진 중이다. 이를 정부와의 소통 창구로 공식화하고자 한다. 젊은 세대 의견을 단순히 전달하는 단계를 넘어, 이들이 직접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 이 외에 서울시의사회 차원에서 마련하는 지원책이 있다면.
단기 복귀 유도에 그치지 않고 젊은 의료인이 의료 현장으로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임상 감각 유지를 위한 트레이닝 과정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내 2차 병원, 중소병원, 로컬 네트워크 병·의원과 연계해 진료 경험을 쌓고, 임상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유급, 제적 등 행정 문제에 대응할 전문가 자문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의대생을 위한 학업 장려금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의정 사태를 젊은 세대 눈으로 되돌아보는 백일장 개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복귀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의료계 전체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은 전공의와 의대생이다. 이들은 단지 진로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의료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들의 좌절과 분노, 외로움과 불안을 결코 외면하지 않겠다.
그동안 의료계 내부가 너무도 분열돼 있었다. 교수, 개원의, 전공의, 학생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중간 착취자, 이기적인 교수, 고립된 학생이라는 프레임은 이제 끝내야 한다. 다시 존경과 신뢰, 애정의 선후배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의사회는 그 회복의 출발점이 되겠다. 이재명 정부와 대화하고 국회와 협력하며, 지역의사회와 연대해 '의료계 회복의 여정' 맨 앞에 서겠다. 젊은 의사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단순한 복귀가 아닌 새로운 의료 10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가겠다. 우리가 함께하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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