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사실 관계도 의학 이해도 없이 판결"
도 넘은 법리 해석…"국민 건강 침해" 우려도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 영역이 의학 분야에 대한 이해가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7일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유화진법률사무소 유화진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토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목했다. 이미 원심(2심)과 1심에서 한의사가 보조 수단이 아닌 서양의학적 방식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대법원, 산부인과처럼 초음파 검사했다는 2심 판결 외면”).
유 변호사는 "원심 판결문에 한의사가 자궁내막 두께를 판단해 치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심 진행 과정에서는 한의사가 한방의 변증법적 내용이 아니라 서양의학적 진단명과 초음파 검사 방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증거에 의한 사실관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어떤 논리와 문구만으로 초음파(진단기기 사용이) 한방 의료행위가 아니라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면서 "판결문을 봐도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변증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이 전부다. 환자가 입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단 보조수단으로 쓰면 보건위생상 위해 없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한방 의료행위를 하면서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의료계가 지적해온 것처럼 법조계도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다가 암 진단이 늦어진 사건에서 위해가 없다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관련 기사: "국민 건강 위한다는 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 환자 피해는 숨겼다").
유 변호사는 "그간 대법원은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추상적 위험만으로도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왔다. 이 사건은 추상적 위험이 아닌 실제 위해가 발생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위해가 발생할 위험이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규정은) 의사와 한의사는 각자 영역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국가로부터 관련 의료에 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검증받는데 이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하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일반 공중위생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하게 판시했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임상 영역에 새로운 의료행위가 도입될 때마다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라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새로운 의료행위는 임상시험이라는 엄격하고 검증된 절차를 거쳐 의료행위 영역에 들어온다. 어떤 의사 개인이 사용한다고 해서 들어올 수는 없다"면서 "초음파 진단도 서양의학에서 검증된 진료 방법이기 때문에 의료행위로 인정됐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초음파 진단이 변증법적으로 한방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했다.
보조적 진단 수단에 대한 규명도 없어…"오진 이어질 위험"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대법원이 보조적 진단 수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주 진단 수단이나 한의학적 진단과 관계는 규명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주 진단 수단과 보조 진단 수단 간 상관관계를 밝히고 보조 진단에 대해 주 진단이 더 정확하다는 점을 규명해야 한다. 소변검사로 간편하게 당뇨 여부를 알아내기도 하지만 당뇨병 진단은 혈당 측정으로 이뤄지는 것이 그 예"라면서 "대법원 논리라면 (보조 진단인) 현대 진단기기보다 주 진단 수단인 한의학적 진단이 더 정확해야 한다. 그런 판결문에는 그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한의사가 (초음파)진단기기를 보조적 진단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과 한의학적 진단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환자 질병 진단과 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진단기기 사용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오진으로 이어지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했다.
대법원이 법적 근거 없이 의료기기를 진단용과 치료용으로 구별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사법부 역할인 법리 해석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료법에는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를 구별해 업무 범위를 허용하거나 제한한다는 내용이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를 구별해서 진단용 의료기기에 한해서 결론을 내렸다. 아무런 논거가 없다"면서 "법 해석을 넘어 법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대법원은 진단과 치료행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면서 이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만약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치료(행위)가 달라진다면 그 전제인 한의학적 진단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판결에는 이런 내용은 없다"면서 "대법원이 진단과 치료가 불가분한 관계라는 뜻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한의사 사용 금지 규정 없다=한의사 사용 허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근거 중 하나로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의료행위마다 특정 의료인의 사용 가능 여부를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이 곧바로 허용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의료에서 진단과 치료행위는 너무나 다양하므로 법에 특정 행위를 나열하고 규정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확장 해석하면 의사가 사용하는 기기는 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한의사가 하는 기기도 마찬가지다. 특정 의료인의 특정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행정처분도 마찬가지다. 의료법 시행령에 (의료인은)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행위를 해 품위를 손상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수많은 행위를 일일이 나열하고 금지할 수는 없다"면서 "헌법재판소가 그간 한의사의 특정 행위가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실체적으로 파악해 의료법 위반 여부를 가리면 족하다고 밝힌 이유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유 변호사도 금지 규정 부재가 허용으로 이어지는 논거가 부족하다면서 지난 2016년 대법원의 치과의사 안면 보톨리눔 톡신(보톡스) 시술 허용 판결을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치과에 구강악안면외과가 있고 안면부에 대한 교육과 수련이 이뤄진다는 점 등을 들어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 근거 중 하나기도 하다.
유 변호사는 "금지 규정이 없다는 것 자체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논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치과의사 보톡스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치과 전문과목에 구강악안면외과가 있다는 점을 중요 논거로 삼았다"면서 "반면 이번 초음파 진단기기 사건은 한방에 영상의학과에 준하는 전문 과목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이 점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방의료행위 과학화 필요하지만 현대의료기기 허용은 논리 비약"
대법원은 한방 의료행위 과학화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처럼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 의료행위로 한의약 외연 확대를 목적으로 지난 2011년 개정된 '한의약 육성법' 개정 취지를 언급했다.
법조계는 한방 의료행위 과학화 필요성에 동의했지만 곧장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으로 이어질 수 없다면서 대법원 재판부가 과학화 취지를 잘못 해석했다고 봤다.
박 교수는 " WHO가 전통의학에 대한 근거 중심 의학 체계 수립을 권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전통의학 시술자가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라면서 "WHO의 전통의학전략 그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한의학 육성법 개정 취지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의학 이론과 이를 기초로 한 한방 의료행위를 토대로 서양과학적 원리를 접목해 검사·진단 기기 개발을 장려하자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지 않은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사법부가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자료가 정확하고 검증됐는지 판단도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의료라는 전문 영역에 대해 너무나 적극적인 견해를 제시했다"면서 "이는 자칫 전문 영역을 침해하고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역행하는 판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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