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계엄 醫 미온적 태도에 "아무것도 안 하나" 분통
불안한 전공의들…"죽은 뒤 장례 치를 건가" 격한 반응도
대통령은 탄핵 위기고 군은 수사 대상에 올랐다. 2차 계엄은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전공의는 여전히 불면의 밤을 보낸다. 선배들만 "군대가 코앞인데 잠들어 있다".
서울아산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지난 3일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멍청한 정부'라고 웃으면서도 섬뜩한 가슴은 어쩌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A씨는 "그 공포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지난 7일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의사도 탄핵 시위에 나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고 용기 냈다.
A씨가 자리 잡은 곳은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인근 서울대병원 참가자들이 내건 깃발 근처였다. 기자와 만난 A씨는 "우리 병원이나 학교 깃발을 아직 못 찾아서 여기 껴있다"고 했다. 100만명(주최 추산)이란 인파에 "안심이 된다"면서도 "의사 관련 깃발이 많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길 건너 설치된 의료 부스를 두고 "아는 단체가 맡으면 시민이나 다른 의사 참여자들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가 나오길 바라느냐고 묻자 "(의협이든 병원·의대든) 선배들이 있는 단체"라고 답했다. 곧이어 "정치적 문제라 (의협 등의) 공식적인 참석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의사도 나왔다는 것을 시민에게 알리고 싶다. 전공의라고 (본인을) 밝히기 어려워 아쉽다"고 했다.
A씨 소개로 이날 저녁 집회 현장에서 만난 같은 병원 사직 전공의 B씨는 "선배들은 대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불성립에 격앙된 상태였다. 대통령 직무정지가 무산됐으니 "'처단' 포고령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시기가 "당장 오늘 밤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른다"며 "(선배들은) 우리 다 죽고 장례 치러주러 올 거냐"고 격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B씨는 "대한변호사협회는 회장이 공개적으로 대통령 탄핵하라고 했다. 아까 여의도공원에 가니 변호사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법률 지원을 하고 있더라"면서 "반면 우리는 '의사들은 정부가 처단한다는데 왜 가만있느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여기 모인 시민"은 의협이 "입장을 냈는지도 모른다"면서 "우리가 (변호사보다) 더 직접 당사자인데 (입장 발표도) 느리고 (메시지도) 약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의협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가만히 있는' 의협…"'처단' 계엄이 남의 일인가"
실제 계엄 선포 뒤 의협 반응은 빨랐다. 포고령 공표 약 1시간 뒤인 4일 자정 경 대변인 SNS에 "계엄사령부에 알린다. (복귀 명령 대상인) 파업 중인 전공의는 없다"며 "전공의들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는 일 없도록 주의하라"고 올라왔다. 의협은 1시간 뒤인 새벽 1시경 같은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배포했다. 이번에도 대변인 명의였다. 의협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연락이 닿은 임원끼리 급히 정리해 나온 입장"이다.
하지만 B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뒤로 '대한의사협회' 또는 '회장(직무대행)' 명의 추가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B씨는 "계엄 해제나 포고령 철회, 책임자 처벌 등 구체적인 요구가 없었다"고도 했다. 변협은 같은 날 새벽 1시경 성명에서 계엄은 "위헌행위"라며 해제를 요구하고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임기 완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이와 비교하면 의협은 계엄을 "남 일 취급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8일 청년의사에 "의정 갈등 대응은 비상대책위원회가 거의 소관하고 있다. 지난 5일 비대위 입장이 나왔다. 그것으로 (의협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들 생각은 다르다. 충청권 대학병원 사직 전공의 C씨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그 사이 의협 입장이 안 나와서 매우 의아했다"며 "정상진료할 거고 피해 입으면 연락하라는 대변인 문자를 끝으로 협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에 대응하라고 회장 직무대행까지 세우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난 5일 의협 비대위 입장 발표 역시 "수위도 시점도 별로였다"고 했다. 이날 비대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망상'에 빠져 있다면서 하야하라고 했다. 포고령 작성자 처벌도 요구했다. 그러나 C씨는 "너무 늦고 너무 약했다"고 받아들였다. 이미 "대통령을 탄핵하고 내란죄로 처벌하라며 온 나라가 난리 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A씨와 B씨도 비슷했다. A씨는 "비대위 발표 시점을 (계엄 해제 당일인) 4일로 조금만 앞당겼다면 수위나 시점에 대한 아쉬움이 덜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단체로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정은 이해한다"면서도 "그 사이 공포와 황망함에 떤 전공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줬으면 했다. 우리는 다 따로 떨어져 고립돼 있다"고 했다.
B씨는 "비대위가 국회(집회)는 못 나와도 의협 회관 앞에서 긴급 규탄대회라도 열었어야 한다"고 했다. 계엄 당시도 탄핵이 무산된 현시점도 의료계는 "군대가 코앞"이라고 했다. "전공의는 또 잠들지 못하는데 선배들만 편하게 자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는 여전히 계엄 속 사는데 선배들 어디 갔나"
"전공의는 지난 2월부터 늘 계엄령 밑에 살아왔다."
8일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집회에서 만난 사직 전공의 D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간 "'의사 못 하게 만들겠다'는 위협 속에 살았다면 이제는 '죽이겠다'는 생명의 위험을 겪는 수준"으로 "계엄이 강화된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이번 계엄 선포와 '처단' 포고령이 "아이러니칼하게도 국민이 의사 처지를 제대로 보게 된 계기"라면서 "국민 여론이 '(처단 포고령)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들었다. 의사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대로 이날 집회는 전공의와 의대생 800명(주최 추산)이 참여했다. "500명 수준을 기대한" 주최 예상을 뛰어넘었다. 참석자들은 자유발언 뒤 "이 상황을 시민에게 알리고자" 대학로 일대를 행진했다.
D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사직 전공의 E씨는 행진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한낮에 날씨도 맑고 사람도 많으니까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안전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안전하다'고 안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씨는 "대낮 대학로 집회가 뭐가 무섭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3일 밤 포고령을 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최소한 내 삶은 여전히 계엄 상태"라고 울먹였다.
이날 저녁 E씨는 기자에게 "너무나 실망스럽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열린 전국의대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시국 선언대회 참석자가 100여명 수준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였다.
문자에서 E씨는 "교수님들이 우리 자리까지 맡아 진료하느라 힘들 거라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면 실망감부터 든다. 내가 너무 지쳐서 그런 걸까"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최소한 우리보다 (선배 의사들이) 더 자유롭지 않느냐"고 했다. 지난 1년 전공의는 "마스크 없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 익명 아니면 목소리 내지 못했다. 이제 총구 앞에 제일 먼저 세워졌다"고 했다. 그러니 선배 의사가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자유를 "전공의가 얼마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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