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형사처벌하려면 ‘고의성’ 입증해야
민사소송 손해배상 한도 정해 놓은 주(state)도

미국에서 의사가 의료과실로 형사처벌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청년의사).
미국에서 의사가 의료과실로 형사처벌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청년의사).

‘소송 천국’인 미국도 의료 분야는 신중하다.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 민사소송에서도 의사가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법적으로 손해배상 한도를 정해 놓은 주들이 많다.

미국 사법제도는 의도적인 위해와 실수나 사고로 인한 위해 행위를 구별한다. 이에 인디애나 주 등 여러 주법(State Codes)에 따르면 의료과실로 형사 책임을 물으려면 의사가 ▲의도적으로(Intentionally)나 ▲고의로(Knowingly) ▲무모하게(Recklessly) 의료행위를 했는지 입증돼야 한다.

미국 법률사무소 Wilson Kehoe Winingham(WKW)는 “미국 법은 형사 사건에 Mens Rea(범행 의도) 개념을 적용한다”며 “의사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환자 상태를 악화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이는 범죄 의도가 없는 일반적인 과실 행위다. 의사는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지만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WKW는 “형사상 의료과실이란 의료인이 의도적으로나 고의로 또는 무모하게 치료 표준을 벗어나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말한다”며 “의사에게 과실이 있지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면 피해자인 환자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미국에서 의사가 형사 처벌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미국 의료 현장에 있는 한국인 의사들이 “한국처럼 의료과실로 의사를 쉽게 형사 처벌 하는 나라는 없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관련 기사: 매일 의사 2명씩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됐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 의과대학 혈액종양내과 강현석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통해 “의사 형사처벌은 미국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형사적 책임(criminal liability)을 입증하려면 의도성이 입증돼야 한다”며 “무모하게(Recklessly) 의료행위를 했다며 형사적 부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있지만 이것도 입증 요건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수로 치사량의 약물을 주사(처방)했다거나 매우 명확한 진단을 놓쳤다거나 하는 경우 형사 고발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미국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마취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자 그의 주치의였던 콘래드 머레이(Conrad Murray)는 비자발적 살인 혐의(involuntary manslaughter charges)로 기소됐고 최종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사 처벌에 면허 취소까지 당할 수 있는 범죄 중 하나가 보험 사기다. 강 교수는 “미국에서 중범죄로 간주되는 것 중 하나가 보험 사기”라며 “메디케어(Medicare)나 보험사를 상대로 의료기록을 조작하고 하지 않은 시술을 했다고 청구하는 등 보험 사기 행위를 하면 중범죄로 형사 처벌 받으며 보통 면허도 박탈당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외 의료과실로 형사 소송이 제기되는 일 자체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드물다. 미국 앨라배마대학병원(University of Alabama at Birmingham, UAB) 이비인후과 조도연 교수는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통상 의료과실이 형사 소송으로 이어지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형사 사건으로 보고 처벌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미국도 산부인과가 소송이 제일 많은 과 중 하나이지만 형사는 거의 없다. 형사 소송이 제기됐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라고 했다.

미국 앨라배마대학병원 조도연 교수와 UCSF 의대 강현석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처벌하려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미국 앨라배마대학병원 조도연 교수와 UCSF 의대 강현석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처벌하려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민사 손해배상 한도(Cap) 정해 놓은 주도 많아
의료배상보험 100% 가입, 보험료 병원 부담

대신 민사 소송이 많다. 의료과실이 발행하면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으로 간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의료배상보험체계가 정교하게 짜여 있다. 병원들은 모두 의료배상보험에 가입하고 이는 개원의(private practice)도 마찬가지다. 보험료는 의료행위 범위와 전문과목, 진료 장소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전공한 전문과목이 아닌 다른 분야를 진료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액이 올라가고 최악의 경우 보험 가입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

강 교수는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에서 책임져 주고 보험료도 병원이 부담한다. 개원의(private practice)는 개인이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미국에서도 의사면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제한이 없지만 의사들이 자기 전문과목 외 다른 분야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감당해야 할 배상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험료가 비싸지거나 보험 가입이 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배상액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주 차원에서 손해배상 한도(damages caps)를 정해 놓기도 한다.

미국 법률사무소 Koonz McKenney Johnson & DePaolis LLP 피터 드파올리스(Peter DePaolis) 변호사가 조사한 주별 의료과실 손해배상 한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가 의료과실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를 적용하고 있다. 손해배상 한도는 주별로 다르다.

콜로라도 주는 총 상한액이 100만 달러(약 13억5,000만원)로 법원에 재량권이 있다. 비경제적 손해배상 한도는 30만 달러(약 4억500만원)다. 캘리포니아 주는 비경제적 손해배상 한도로 25만 달러(약 3억3,750만원)가 규정돼 있다.

반면 손해배상 한도를 주법으로 규정했다가 위헌 판결로 폐지한 주도 있다. 앨라배마 주는 비경제적 손해배상 한도로 40만 달러(약 5억4,000만원)를 규정했지만 지난 2003년 위헌 판결로 폐지됐다. 플로리다 주도 심각한 부상에 대해서는 최대 100만 달러로 손해배상 한도를 정해 운영했지만 지난 2017년 6월 위헌 판결이 나오면서 폐지했다.

조 교수는 “한도가 없는 주에서는 한화로 4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며 “ 때문에 미국 병원이나 의사는 100% 의료배상보험에 가입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손해배상 부담 부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료사고로 인한 민사소송에 대비해 진료기록도 철저히 관리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진료기록을 누가 열어 봤는지, 누가 언제 수정했는지 등이 모두 기록된다. 대학병원들은 진료기록부가 100% 전산화돼 있고 검사 시각 등은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한다”며 “무엇보다 의료 행위 중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전원 등 후 처치를 제대로 했으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미국에서 성형외과는 소송이 많고 환자들의 콤플레인(complaint)도 많은 과로 꼽힌다. 그래서 성형외과를 기피하는 의사들도 있다. 한국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며 “외과, 흉부외과 등 고위험 수술을 많이 하거나 중환자를 많이 보는 전문과목은 그만큼 보상해 준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이비인후과를 전공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 두경부외과를 꼽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상황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위험 부담만 큰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 인력이 유입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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