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대학병원 산과 교수 24인 성명 "국가가 책임 져야"
불가항력 의료사고 형사 면책과 국가 책임제 도입 촉구
"의료대란 때도 자리 지켰는데 이제는 떠나야 하겠느냐"
신생아 뇌성마비로 담당 산부인과 교수가 불구속 기소되면서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대학병원 산과 교수들이 "더 이상 의료인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며 직접 나섰다. 의료사고가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분만 인프라가 붕괴한 지 오래라는 점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등 전국 16개 대학병원 산과 교수 24인은 이같은 내용을 담아 13일 공동 성명을 냈다. "대학병원에서 산모와 태아를 돌보는 30~40대 산과 교수"라고 밝힌 이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러시안룰렛처럼 벌어지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 대상이 된 현실에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은 ▲분만 사고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해 형사 기소 대상으로 삼지 말 것 ▲국가 차원에서 산모 안전망을 구성하고 피해에 대해 충분히 보상할 것 ▲의료진이 산과를 떠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적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내 모성사망이 출생아 1만명당 1명, 자궁내 태아사망은 200명 중 1명 빈도로 일어난다. 신생아 뇌성마비도 1,000명당 2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도 자궁내 환경, 태반 기능, 조산 여부 등 복합적이다. 분만 과정 자체가 원인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당시 의학적으로 내린 최선의 판단"을 "사후적 관점에서 일률적으로 재단하고, 결과론적 관점에서 따지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현장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사후 평가는 방어진료만 부추긴다고 했다.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산과로서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의료사고의 불가항력성과 인과관계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형사 책임을 물으려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의료사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24시간 응급 대응이 필요한 분만의 특수성이나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 지역 분만 인프라 붕괴, 의료전달체계 미비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40개 의대에 산과 조교수가 단 36명뿐이다. 소수의 인력이 고위험 산모와 태아를 돌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의료 대란 때도 분만실을 떠나지 않고, 대한민국 산과 진료를 지탱해 왔다. 하지만 환자를 도우려는 최선의 진료가 '범죄'로 낙인찍힐지 모른다는 공포에 '지금이라도 분만 현장을 떠나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우리 젊은 산과 교수들은 이 순간에도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고자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동시에 이번 형사 기소 사건을 목도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실감한다"며서 "이대로면 대한민국에서 산과는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절규를 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은 멈춰야 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의료사고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하고,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의료진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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