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학회·모체태아의학회 공동 성명 발표
“유죄 판결 시 의대 산과학 교육 부정적 영향”

자연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사례로 서울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불구속기소된 것과 관련해 산부인과학계가 '국내 산과학 멸종을 부를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자연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사례로 서울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불구속기소된 것과 관련해 산부인과학계가 '국내 산과학 멸종을 부를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수년전 자연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사례로 서울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불구속기소되자 산부인과학계가 “국내 산과학 멸종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5일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 분만 관련 의료사고 형사 불구속기소’ 관련 공동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해당 사건은 서울의대 A교수가 수년전 자연분만으로 받은 아기가 출생 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게된 것을 이유로 발생한 분만 관련 형사사건으로, A교수는 지난 8월 26일 불구속기소됐다.

이들 학회는 뇌성마비는 생존아 1,000명당 약 2명 빈도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며 분만 진통과정 자체와 관련된 경우는 의학저으로 5%에 불과한 상황에서 A교수의 불구속기소로 우리나라 산과학 멸종이 시작됐으며, 분만 인프라 붕괴가 심각한 국내 모자보건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분만은 본질적으로 매우 큰 위험성을 지니는 의료행위로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를 다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산모, 신생아 사망 및 뇌성마비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 선진국에서는 분만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손상이나 단순 과실에 대해 의사를 형사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의대 중 산부인과 교수가 아예 없거나 1~2명에 불과해 산과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40개 의대 중 21개에 달해 산과 의사가 절멸되는 상황에서 지식과 절차에 따라 아기를 분만한 의사에 대한 형사 기소는 산과 교수 이탈, 고위험 분만 마비 등의 사회적 문제를 낳아 산모와 아기, 가족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산부인과학회 김영태 이사장은 “우리나라처럼 분만 관련 사고가 형사 기소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며, 이는 필수의료를 지탱하는 산과진료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모체태아의학회 박중신 회장은 “진통 중 태아심박동감시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제왕절개수술이 전세계적으로 급증했음에도 정작 뇌성마비 빈도가 지난 40여년간 감소하지 않았다”며 “대부분 뇌성마비가 몇시간의 분만 진통 과정에서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기간 중 약 7,000시간이라는 긴 자궁 내 환경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학적 증거가 이미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기소 처분이 우리나라의 제왕절개수술률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키고 어려운 분만 환경 속에서 자연 분만에 최선을 다하려는 의료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역사적 오류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명서

최근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출생 후 뇌성마비가 진단된 건에 관하여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교수가 형사 고소를 당하고, 나아가 불구속 기소까지 된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의학적 사실을 외면한 부당한 사법적 폭력이며, 산부인과 의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위험천만한 선례가 될 것인 바, 대한산부인과학회 및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분만 과정은 예측불가능한 위험을 수반한다. 의료진이 교과서적 진료 지침을 충실히 준수하고 충분한 주의의 의무를 다하더라도 산모,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과 뇌성마비와 같은 중대한 합병증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뇌성마비의 발생은 전세계적으로 1,000명당 약 2명이며, 이 중 대부분은 분만 과정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즉, 뇌성마비는 분만 과정의 특정한 의료행위 하나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기 어렵다는 것이 의학계의 공통 결론이다. 미국산부인과학회 (ACOG)와 국제산부인과연맹 (FIGO) 역시 뇌성마비의 원인을 분만 의사의 과실로 단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공식 지침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신생아 뇌성마비의 발생을 단순히 의사의 잘못으로 단정하여 형사 법정에 세우는 것은 의학적 근거를 무시한 무리한 기소이며, 산부인과 의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분만 환경은 이미 많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만을 접게 만든 지 오래다. 반면 혼인, 출산 연령의 상승으로 고위험 산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고위험 산모 및 태아의 진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산과 교수의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4시간 분만장을 지킨 의료진에게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한 형사 처벌이 감행된다면,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어느 산과 교수가 우리나라의 분만 현장을 지킬 것인가? 최선의 진료를 다했음에도 불행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의사를 가해자로 내몬다면, 이는 곧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분만장을 모두 떠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례가 이어진다면, 이제 전국 의과대학의 산부인과 교수들은 더이상 산과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나라 분만 인프라의 멸종이라는 국가적 재앙으로 초래될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및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다음을 엄중히 요구한다.

1. 불가항력적 분만 관련 사고를 의사 과실로 단정하여 기소하는 관행을 즉각 중단하라.

2. 산부인과 의사가 더 이상 분만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형사처벌이 아닌 제도적 보상체계를 시급히 마련하라.

3. 향후 불합리한 형사처벌로 인해 분만 기피, 교육 중단,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등 수사기관에 있음을 천명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및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산부인과 의사의 정당한 권익과 안전한 분만 환경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며, 이러한 부당한 사법적 폭거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할 것을 선언한다.

2025년 9월 5일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모체태아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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