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학회 설문조사 결과, 17% 사직서 작성하거나 이직 알아봐
5명 중 1명 "대학병원 야간 당직 응급 상황 함께 대처할 인력 전무"
분만과 고위험산모 진료도 이제 '선택과 집중'…"권역별로 대처해야"

'지역 유일한 분만의료기관'들이 차례로 문 닫는 가운데 고위험 산모나 응급 환자를 맡아온 대학병원도 흔들리고 있다. 대학병원 산과 전문의 4명 중 3명이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 안 그래도 열악한 분만 인프라를 홀로 지탱했는데 의정 갈등까지 겹쳐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은 '함께 일할 동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지난 7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추계학술대회 '산과 교육 그리고 의료, 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세션에서 공개한 '대학병원 산과 당직과 근무환경 실태 설문조사' 결과다.

지난 9월 3일부터 11일까지 진행한 이번 설문조사는 2024년 3월 기준 대학병원에서 전임의 이상으로 근무한 산과 전문의 111명이 참여했다.

참여자 월평균 당직 일수는 6.4일이었다. 45.0%(49명)이 월 11회 이상 당직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26.6%는 한달에 20일 이상 온콜(on-call) 당직을 맡고 있었다. '한 달 내내 온콜 당직'이라는 응답도 14%였다.

이번 의료 사태가 발생한 뒤로 산과 전문의 절대 다수가 신체·정신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건강 악화로 관련 과 진료를 받거나(18%)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나 상담(14%)을 받기도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학병원 산과 당직과 근무환경 실태 설문조사' 발표 현장(ⓒ청년의사).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학병원 산과 당직과 근무환경 실태 설문조사' 발표 현장(ⓒ청년의사).

이 때문에 75%가 '의료 사태 뒤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사직서를 작성하거나 이직할 병원을 알아본 경우가 17%였다. '사직을 고려한 적 없다'는 응답은 21%였다. 한 참여자는 "그만두고 싶어도 산모가 불쌍해 그만둘 수가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3월 이후 대학병원을 떠났거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응답은 1%였다.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대학병원 산과 인력 부족 문제는 극심했다. 이번 설문조사 참여자 20.7%가 야간 당직 중 분만이나 수술 등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이 아예 없다'고 답했다. 교수나 전공의는 물론 간호사도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응답자 73%가 '응급 상황에 대비할 전문인력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당직비 인상(49.5%)', '당직 이후 휴식 보장(48.6%)', '당직의 충원(48.6%'이 뒤를 이었다.

산과 전문의들은 분만 인프라를 회복하려면 이제는 '선택과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권역별 전문기관을 세우고 '통합 당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의는 "산과 전문의와 신생아중환자실을 병원마다 두기보다는 권역별 전문병원을 세우고 모여서 함께 일하는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했다.

또다른 전문의도 "인력 없는데 환자를 받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러느니 시스템을 갖춘 소수 의료기관에 모든 고위험 환자를 집중해야 사고를 줄이고 자원 낭비도 막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다른 응답자도 "결국 뭉쳐야 한다"며 "대학병원에 산과 전문의가 1~2명씩 근무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응급과 전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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