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인 지난해 6월 13일 대한의사협회 언론 브리핑 현장은 방송 카메라가 빼곡했다. 의협은 전면 휴진을 앞두고 정부에 제시할 새 요구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기존 입장은 없던 일로 하는 건지, 누구와 어디까지 상의한 건지' 질문이 쏟아졌다. "추후 공개하겠다"는 대변인과 "그럼 브리핑을 왜 열었느냐"는 기자들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현장은 혼란스러웠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의협이 부르면 언론이 온다. 하는 말에 따라 판세가 바뀔 수도 있다.'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의협 회장과 대통령이 바뀌었다. 지난 4일 같은 장소에서 김택우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의협이 처음 메시지를 내는 자리였다. 현장 분위기는 차분했다. 혼란도, 설전도 없었다. 질의응답은 대통령 보건의료 공약에 대한 의협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선에서 약 10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브리핑에서 의협은 정부가 의대생과 전공의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했다. 교육수련 환경을 개선해야 하고, 의료 정책은 전문가 의견을 물어야 하며, 이 대통령이 공약한 공공의대 설립으로 지역·공공의료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앞으로 보건부를 신설하고 정책 거버넌스도 개선하자고 했다. 의료계 입장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너무 익숙해서 새롭지 않을 뿐이다. 앞선 브리핑과 대선 정책 제안 보고회, 국회 토론회와 의료정책포럼에서 반복해 온 말들이다.

지난 1월 당선 직후, 김 회장이 정부에 던진 메시지는 선명했다. '의대 교육 정상화 계획을 내놓으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물밑 교섭도 이어졌다. 그러나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골든타임'은 계속 연장됐다. 마지노선도 몇 차례 다시 그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4월 안에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대선 정국에 돌입하자 "정부 출범 전에 매듭지어야 한다"고 고쳤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이제는 "조속히 해결되길 기대한다"로 바꿨다.

새 정권 출범 당일이다. 축하는 건네고 말은 아끼되 '내가 전에 한 말 잊지 말라'는 당부에 그치는 것이 좋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이날 여당에서 "국정 운영의 허니문이 최소 1년은 가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의료계에 허니문 여행을 떠날 여유가 있나. '대통령이 파면되면', '대선이 끝나면'이란 마지노선이 허물어졌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허니문이 지나면'이라는 새로운 선을 세우자고 한다. 정부와 의협 중 정말 허니문을 원하는 것은 어느 쪽인지 묻고 싶어진다.

대선 정국에서 의협은 의료 정상화가 새 정부 최우선 국정과제여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사에는 관련 내용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보기에 급한 불은 아니라는 판단일까 아니면 국민 뇌리에 남기엔 메시지의 힘이 약하다고 본 것일까. 어느 쪽이든 경각심을 되살려야 할 시점이다. 의협이 경보를 울리면 언론도 정부도 다시 뛰어오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둔감해진 경보음은 새로 바꿔야 한다. 화재 저지선이 아니라, 발화점에서 경보를 울릴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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