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학회 한승범 이사장 “본말 전도된 상종 구조전환 사업” 답답함 토로
중증도 분류 체계 재정비 시급 “이대로 시범사업 끝나면 정형외과 초토화”

대한정형외과학회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의 중증도 분류 기준 개선을 촉구했다(ⓒ청년의사).
대한정형외과학회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의 중증도 분류 기준 개선을 촉구했다(ⓒ청년의사).

정부가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는 불합리한 중증도 분류로 인해 정형외과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증도 분류 기준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중증환자 비율을 올려야 하는 병원들이 경증환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면서 정형외과가 찬밥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대한정형외과학회는 지난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의 중증도 분류 기준 개선을 촉구했다.

정형외과 질환 코드가 세분화돼 있지 않아 중증이어도 경증으로 분류되면서 상대적으로 중증도가 낮은 진료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주요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시행한 수술 중 중증질환군인 A군 수술 비율은 평균 1% 미만으로 나타났다.

한승범 이사장(고대안암병원)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으로 정형외과가 유탄을 맞았다”며 “정형외과 환자 70%가 중증질환이 아니라고 분류된 데는 질병명과 수술명 분류가 미숙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근골격계질환 분류가 2,000개 정도로 세분화 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200개 정도로 분류돼 있다. 척추는 재수술이나 (척추) 마디 분류도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철 홍보위원장(순천향대서울병원)도 “코드가 세분화 돼 있지 않아 중증질환이지만 척추고정술을 한 마디 수술하든 여섯 마디하든 모두 C군이다. C군 척추수술을 하게 되면 대학병원 중증도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라며 “수술 난이도가 아닌 빈도로 중증도 분류 기준이 돼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 홍보위원장은 “이는 정형외과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 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수술실이 줄어들고 마취과 전문의 배정이 감소했다. 또 원로 교수가 은퇴한 자리에 새로운 교수 충원을 해주지 않는 일도 있다. 중증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형외과에 입원실 할당량을 감소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앞으로는 재수술 등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오더라도 1·2차 의료기관으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홍보위원장은 “환자들은 스스로 경증질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료 실패 후 상급종합병원에 전원되는 경우도 많고 여전히 대학병원 치료를 선호한다”며 “상급종합병원에 온 환자를 회송시켜야 하지만 설득도 어렵다. 내과적 질환으로 이미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 정형외과 수술은 1·2차 의료기관에서 해야 한다면 납득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철추, 인공관절, 골절 등 정형외과 주요 수술이 동네 의원이나 2차 병원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환자 선택권과 안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형외과학회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이미 시작된 만큼 중증도 분류 체계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논의는 되고 있지만 의정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이사장은 “(중증도 분류에 대해) 의개특위에서 논의는 하고 있다. 복지부도 중증도 분류를 다시 하겠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지금은 의대생 복귀가 미뤄지고 있고 전공의들도 안 들어오고 있는,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급한 상황이라 중증도 분류 체계까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이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처음부터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의료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 후 중증도 분류도 우선 마련해 놓고 시작했어야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이봉근 교수는 “중증적합질환군 분류 담당 부서는 의개특위지만 단기간에 재정비 할 능력도 없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를 위한 중증도 분류 체계도 용역을 통해 몇 년에 걸쳐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범사업이 진행되다가 이대로 정착 돼 버릴 것 같아 우려된다. 정착되는 순간 해결이 어렵다. 중증도 분류 체계 재정비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릴 텐데 그 사이 시범사업이 끝나버리면 정형외과는 초토화 돼 있을 것”이라며 “의료개혁을 하는 방향은 좋은데 환자 분류를 정확히 한 다음에 시작했어야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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