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의대 정유석 교수 ‘한국의료윤리학회지’ 투고
“증원 사태 끝나도 전공의 상당수 돌아오지 않을 것”
“전임의 부족, 교수 소진에 대학병원 폐업 사태 발생”
전공의 수련체계 붕괴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공의 없이는 전문의도 없으며 의대 교육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겨우 버티고 있는 교수들마저 소진되면 문 닫는 대학병원도 나올 수 있다.
단국의대 가정의학교실 정유석 교수는 ‘한국의료윤리학회지’에 투고한 ‘2024년 의정사태와 한국 의료의 미래’에서 의대 증원 정책이 불러온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 수련체계가 무너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해가 바뀌었지만 전공의들은 수련 현장으로 복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제도권 내 수련을 거의 포기했다”며 “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 정책으로 어렵게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한 전공의들도 대부분 수련병원을 떠났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결과는 전문의 자격시험과 전공의 1년차 모집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2025학년도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한 의사는 557명뿐이며 합격자는 509명이다. 올해 신규 전문의는 전년도의 18.7% 수준이다. 다시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겠다고 전공의 모집에 지원하는 의사들도 없다. 2025년도 전공의 1년차 모집 결과, 지원율은 8.7%로 314명만 지원했다. 산부인과 지원자는 1명, 신경과는 2명, 소아청소년과는 5명, 심장혈관흉부외과는 2명뿐이다. 정 교수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한 의대 증원이 결국 필수 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실습 과정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소생시키는 필수의료의 장면에 매력을 느끼고 소위 ‘바이탈뽕’에 취해 고된 과정을 선택했던 전공의들이 한국 의료의 미래였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낙수과로 취급되는 자신의 전공에 회의를 느낀 전공의들이 많다. 미숙하고 무모한 정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필수 의료의 여린 뿌리를 뽑아 버렸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의대 증원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이미 사직 처리된 전공의들 상당수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공의 수련체계 붕괴는 전임의 부족과 교수진 소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대학병원 폐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전공의 없이 진행돼야 하는 의대생 임상실습 교육도 걱정이다. 정 교수는 “전공의 수련 붕괴는 연쇄적으로 학생 교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의대 교육에서 중요한 병원 실습에서 전공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이를 두고 교수들이 무책임하게 교육을 위임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의학교육의 속성에 무지한 발언”이라며 “의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교수뿐 아니라 선임 격인 전공의 역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에 “전공의 수련 공백은 학생들의 교육 공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4학번과 25학번을 한 학년에서 가르쳐야 하는 의대도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며 이 사태는 6년간 지속된다”고 우려했다. 현재 의대생들이 등록 후 수업 거부를 이어가면서 자칫 의예과 1학년은 26학번까지 ‘트리플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로면 내년에도 신규 의사 배출 절벽이 이어진다.
정 교수는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강한 저항감을 가진 의사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교육의 질 저하, 졸업 후 경쟁 심화 등 불안한 미래는 ‘좋은 의사’에 대한 각오보다는 더 ‘현실적’이 되라고 부추길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헤아려지지 않는 불안은 비관과 절망을 낳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세대는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개인적인 성공을 우선시하게 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의학 교육 질 저하를 막기 위해 정부가 “물적, 행정적 지원과 함께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수련병원 전공의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근무시간 단축,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등 수련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이 진료·교육·연구 삼중고를 명예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에 교수직을 외면하고 있다”며 “우수한 후학들이 교수로 남고 심도록 획기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대한의사협회로 대표되는 의사 직역의 환골탈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협은 개원의 중심이라는 비판을 넘어서 교수, 전공의들까지 참여하도록 구조와 체질을 완전히 개선해야 한다”며 “올바른 의료개혁은 의료계, 정부, 시민단체 등을 아우르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의료계가 먼저 화합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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