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이서형 변호사(법학박사)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은 그간 번번이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의료계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헬스케어 분야 ICT 기술 혁신을 도입하는 국정과제를 추진하면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도 그 대상으로 본격 논의 중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종이와 같은 서면 대신 온라인 방식으로,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의무기록 등을 보험회사에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한편에서는 환자의 불편이 줄어들 것이 기대된다. 반면, 보험회사와 어떠한 계약관계도 없는 의료기관이 환자의 의무기록 등을 보험회사에 전송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의료법은 제21조 제3항에서 열거하는 예외적인 경우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으로 하여금 환자가 아닌 자에게 환자의 의무기록 등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교부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의료법 제21조가 현행과 같은 형태로 개정되기 전인 2009년에는 의료법이 아닌 여러 다른 법률에 근거해 환자가 아닌 자가 의무기록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의료법 규정이 환자 개인정보 보호에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각기 다른 법률에 의무기록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들을 규정할 경우, 정보주체인 환자는 물론 법률 전문가조차 그에 해당하는 모든 경우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규정들을 준수해야 하는 수범자인 의료인, 의료기관 역시 어떠한 법률에 근거해 환자의 의무기록 등을 열람 또는 교부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게 된다. 그에 따라 현행과 같이 의료법에서 열거한 경우에 한해 환자 의무기록 등을 열람 및 사본 교부할 수 있는 내용으로 2009년 의료법 제21조가 개정됐다.
그러나 최근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도입에 관한 논의는 이와 같은 의료법 개정의 연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2009년으로부터 약 14년이 경과한 현재는 의료법이 아닌 보험업법 상에 환자의 의무기록 등의 전송이 규정되더라도,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문제가 없을까.
법체계 측면에서도, 보험업법 상에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규정될 경우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등은 의료법과 보험업법 간에 어떠한 법률을 우선 준수해야 하는지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까. 법 적용에 관한 충돌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를 고려하는 가운데 어떠한 입법 방식이 이러한 목적 달성에 적절한지 사회적으로 숙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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