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한진 변호사
최근 실무에서 접한 ‘설명 후 충분한 숙고 시간을 주었는지 여부’에 관한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사건 경위는 이렇다. 원고(환자)는 지난 2018년 6월 7일 피고 병원에 처음 내원해 “며칠 전 넘어져 통증이 심화됐으며,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아파서 힘들다”고 호소하면서 치료를 원한다고 했다.
피고 병원은 X-ray 및 MRI 검사 등을 통해 척추관협착증, 전방전위증, 추간판탈출증으로 진단했다. 피고 병원 척추센터 의사는 이날 환자에게 “즉시 수술이 필요한 요추 4·5번 외에 향후 악화 소지가 있는 요추 3·4번, 요추 5번과 천추 1번에 관해서도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수술 목적과 방법, 발생 가능한 합병증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4일 뒤인 6월 11일로 수술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수술일인 2018년 6월 11일 오전 10시 30분경 피고 병원 내과의사가 경동맥 및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한 다음 환자에게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설명했고 40분 뒤인 같은 날 오전 11시 10분경 수술을 위한 마취를 시작했다.
이후 피고 병원은 약 6시간에 걸쳐 원고에게 이 사건 수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수술 직후 원고에게 뇌경색이 발생했고 좌측 편마비로 모든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1심과 항소심 법원은 피고 측 의료상 과실을 부정하면서 설명의무에 관해서도 “피고 병원이 2018년 6월 7일 원고에게 수술의 위험성,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했고 수술 당일인 6월 11일 내과 의사가 원고에게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으므로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설명의무에 대해서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가 행해질 때까지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행돼야 한다. 환자가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의료행위의 필요성 등을 환자 스스로 숙고하고 필요하다면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상의하고 결정할 시간적 여유가 환자에게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때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설명의무를 이행했는지는 의료행위 내용과 방법, 그 의료행위의 위험성과 긴급성 정도, 의료행위 전 환자 상태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개별·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수술 당일 마취 약 40분 전 동맥경화로 인해 뇌졸중의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설명했으므로 원고가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채 수술에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고, 원심은 원고가 숙고를 거쳐 수술을 결정했는지를 심리해 설명의무가 이행됐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당시 해당 환자는 응급 상태가 아니었고 수술을 선택한 것을 두고 과실이라 볼 수는 없지만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에 대법원은 수술 및 전신마취 전 설명을 하고 충분한 숙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하급심 법원들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적극 인용해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22년 4월 14일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혈관조영검사 후 구두 설명만 하고 바로 색전술을 시행한 사건에 대해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고 설명한 것으로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수술과 같이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시행하는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응급수술이 아닌 경우 적어도 1~2일 이상의 시간을 두고 설명 후 동의서를 징구해야 하고, 이에 따라 필요할 경우 진료 루틴도 수정해야 한다. 이번 사례를 참조해 추가 설명이 이어질 수 있는 내과 진료 등을 수술 직전에 시행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법원 판례를 참조해 적절히 대비함으로써 향후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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