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민 교수, 10년 장기 추적 연구 'ASTRRA' 연구 발표
유방암 난소억제 맞춤치료 근거 확보…새 패러다임 제시
"타목시펜+난소기능억제 2년 전략, 40~45세 고위험군서 효과"
[시카고=김윤미 기자] 국내 의료진이 주도한 ASTRRA 연구가 10년 장기 추적 분석을 통해 젊은 한국 유방암 환자에서 '적정' 치료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번 연구는 항호르몬 치료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타목시펜(TAM)에 난소기능억제(OFS)를 추가하는 전략의 장기적 효과를 분석했으며, 특히 한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특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유방외과 유재민 교수는 지난 2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5년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에서 국내 연구자 주도 임상인 ASTRRA 연구의 10년차 장기 추적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에서 만난 유 교수는 "ASTRRA는 45세 미만 폐경 전 여성, 특히 항암치료 후 생리가 돌아온 환자만을 포함한 연구로, SOFT나 TEXT 연구보다 대상이 훨씬 더 한국 현실에 맞춰져 있다"며 "서양 연구에서는 50세 미만을 하나의 그룹으로 다뤘지만, 한국에서는 40~45세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 연령대는 치료 반응이 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ASTRRA 연구는 총 1,282명의 폐경 전 HR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1:1 무작위 배정을 통해 'TAM 단독 치료군'과 'TAM + OFS(2년간)' 치료군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주요 평가 변수는 무병생존율(DFS), 보조 변수는 전체생존율(OS)이었다.
이번 10년 추적 분석 결과, TAM + OFS 군은 TAM 단독군 대비 10년 DFS에서 7.8%포인트 높은 83.7%를 기록하며 재발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HR 0.68). OS에서 두 군 간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특히 HER2 음성 고위험군(복합 위험 점수 4~5점)에서는 TAM + OFS군이 10년 BCFI 76.6%를 보여, TAM 단독군의 65.7%보다 10.9%p 높은 결과를 나타냈다(HR 0.62).
유 교수는 "특히 40~45세 고위험군에서 2년 OFS만으로도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됐으며, 이는 불필요한 장기 치료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 단서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난소기능억제 치료는 재발 억제를 위해 중요하지만,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 폐경 증상 등 장기 부작용으로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특히, 40대 여성에게 5년 치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필요에 따라 치료 기간을 줄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ASTRRA 연구는 이러한 맞춤형 치료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복합 위험 점수 모델을 개발했다. 모델에는 나이, 종양 크기, 림프절 전이, 종양 등급이 포함됐다.
유 교수는 "우리는 암 크기, 림프절 상태, 등급 등을 기준으로 고위험과 저위험을 구분했고, 저위험군에서는 OFS 없이도 10년 BCFI가 90%를 넘게 나타났다"며 "굳이 OFS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위험군 내에서도 40세 미만 환자들은 2년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며, 반대로 40~45세 환자들은 2년만으로도 충분한 혜택을 확인했다"며 "누구에게 5년이 필요한지, 누구에게는 2년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구분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는 임상 가이드라인 개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유 교수는 "ASTRRA 연구는 이미 여러 메타 분석과 시스템 리뷰에 포함됐고, NCCN 등 국제 가이드라인의 근거 문헌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제는 한국 환자들에게 실제로 적용 가능한 맞춤형 치료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인 적용에는 여전히 제한이 있다. 유 교수는 "현재 국내외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OFS 5년 투여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보험 급여도 5년 기준이다. 이런 점에서 2년 치료의 현실적 도입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 연구 결과는 적정 치료를 위해 공유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삶의 질 역시 중요한 변수다. 유 교수는 "치료는 단순한 재발률 수치가 아니라, 그 여성의 삶 전체를 고려한 결정이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난소기능억제 치료가 알츠하이머, 골다공증 등과 관련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이를 확인하려면 장기적 후속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 유 교수는 "SOFT 연구팀과 협업해 2년 대 5년 치료 효과를 간접 비교할 예정이며, 미국의 재발 예측 키트와의 공동 연구도 추진 중"이라며 "또한 10년 이후의 장기 추적을 위한 전향적 관찰 과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매년 약 2만5,000명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하며, 이 중 약 40%가 폐경 전 젊은 환자다. 유 교수는 "젊은 유방암 환자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는 서양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한국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료 기준 마련이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연구는 제약사가 아닌 연구자 주도로 진행됐고, 상업적 이득보다는 환자의 삶을 최우선에 뒀다"며 "서양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우리 현실에 맞는 치료를 고민한 연구로서 가치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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