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설계서 위암 특성을 충분히 반영 못해
라선영 교수 "화학요법 중단은 시기상조"
"면역+혈관생성 억제 기전…진화는 계속"

[시카고=김윤미 기자] "비록 화학요법의 중단과 제한적인 약물 선택의 한계로 실패하긴 했지만, 항 PD-(L)1 면역항암제와 혈관생성억제제 조합은 여전히 가능성 있는 기전입니다. LEAP-015 연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약물을 보완한 다음 연구가 곧 진행될 겁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는 실패한 글로벌 3상 임상 LEAP-015 연구 결과가 보여준 시사점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라 교수는 미국 시카고에서 진행된 2025년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에서 해당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ASCO 2025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됐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5년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에서 글로벌 3상 임상 LEAP-015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5년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에서 글로벌 3상 임상 LEAP-015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LEAP-015 연구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음성 위암 혹은 위식도 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펨브롤리주맙(상품명 키트루다)'과 '렌바티닙(상품명 렌비마)' 그리고 화학요법 병용을 화학요법 단독과 비교 평가했다.

시험군은 펨브롤리주맙 400mg과 렌바티닙 8mg/일, 연구자 선택 화학요법(CAPOX 또는 mFOLFOX6)을 병용한 유도요법을 받은 후, 렌바티닙을 20mg까지 증량하고 펨브롤리주맙과 병용하는 유지치료를 이어갔다. 대조군은 화학요법 단독 치료를 받았다.

주요 평가변수는 PD-L1 CPS ≥1 환자 및 전체 환자에서의 무진행생존기간(PFS)과 전체 생존기간(OS)이었으며, 중간 분석에서는 PFS와 ORR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관찰됐다.

PD-L1 CPS ≥1 환자군에서 병용요법군의 PFS 중앙값은 7.3개월로, 대조군(6.9개월)에 비해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으며, 2년차 PFS는 각각 20% 대 7%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군에서도 PFS 중앙값은 7.2개월 대 7.0개월로, 2년차 PFS는 각각 21% 대 8%였다.

객관적반응률(ORR)도 병용요법군에서 더 높았다. PD-L1 CPS ≥1 환자군에서는 병용요법군이 59.5%, 대조군은 45.4%였으며, 전체 환자군에서는 각각 58.0%와 43.9%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최종 분석에서는 전체생존(OS) 개선이라는 주요 평가변수 달성에 실패했다. PD-L1 CPS ≥1 환자군에서 병용요법군의 OS 중앙값은 12.6개월, 대조군은 12.9개월이었다.

"화학요법 중단은 시기상조"…임상 설계의 구조적 한계

라선영 교수는 임상설계 자체가 위암이라는 질환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라 교수는 "이번 LEAP-015 연구에서는 화학요법과 면역항암제, 표적치료제를 병용하는 유도요법 이후, 화학요법을 중단하고 펨브롤리주맙과 렌바티닙만으로 유지요법을 진행했는데, 이 시점 이후 일부 환자군에서 질병이 급격히 재진행하는 양상이 관찰됐다"며 "위암은 본질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종양이고, 화학요법의 역할이 여전히 중심적인 암종이기 때문에 이를 조기에 배제하는 디자인은 임상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위암 1차 치료에서 화학요법의 축이 여전히 강력한 표준임을 재확인시켜주는 분석이다.

특히 병용약물인 렌바티닙의 독성은 목표한 유지치료 효과를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라 교수는 "렌바티닙은 본래도 독성이 강한 약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LEAP-015 임상에서도 그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유지요법 단계에서 권장 용량은 20mg이었지만, 실제 환자들의 평균 투여 용량은 약 11mg 수준에 그쳤다. 이는 내약성 문제로 인해 용량 감량이 불가피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렌바티닙의 독성 프로파일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기전 자체는 유효…후속 임상 여지는 여전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

LEAP-015 결과가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 교수는 항 PD-(L)1 면역항암제와 혈관생성억제제 병용이라는 기전 자체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라 교수는 "LEAP-015는 전체생존 개선에 실패하긴 했지만, 항 PD-(L)1 면역항암제와 혈관생성억제제(angiogenesis inhibitor)의 병용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결론은 아니다"라며 "이 기전 조합은 여전히 과학적·임상적 가능성이 있는 분야이며, 최근에는 이 두 표적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 타깃 항체 중 일부가 고형암에서 유의미한 초기 결과를 보이고 있다. 향후에는 약물을 달리해 이 기전을 재평가하는 1차 치료 임상시험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LEAP-015 연구는 PFS와 ORR 측면에서 단기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전체생존기간이라는 핵심 평가 항목에서는 의미 있는 개선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기전 자체의 무용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라 교수는 "이번 결과는 실패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가야 할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기회"라며 "면역관문억제제와 혈관생성억제제의 조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중요한 건 환자에게 가장 이로운 방식으로 이 가능성을 실현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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