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자체를 없애는 상황 만들어” 의대 교수 일침
복귀하는 의대생을 향한 시선이 싸늘하다. 일반 대중만이 아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박수만 치지는 않는다. 일부 의대는 복학생에게 공동체 질서 준수 서약을 받고 있다. 이에 학생을 교육의 주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성실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고 학업 환경을 침해하는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마련해 의대들이 활용하도록 했다. 이 서약서에는 학내 공동체 질서 침해 시 학칙 등에 따라 책임과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서약서를 본 한 의대 교수는 “신뢰 자체를 없애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랜 기간 의학교육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이 교수는 “서약서까지 받아야 하느냐. 결국 학생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돌아오는 학생들과 면담해서 이미 복귀한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고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얘기해야지 서약을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렇지 않아도 학생과 교수 사이가 멀어졌는데 이 문제로 간극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무엇보다 서약서에 담긴 ‘책임·처벌 감수’ 내용이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서약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는 해도 향후 학칙에 넣을 수도 있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이유로 학칙 개정을 요구하면 대학은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의대생들이 단체 행동을 했을 때 대표 등을 제적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의대생 학부모들도 반발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학부모회연합(전의학련)은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질서라는 이름의 통제”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의대 교육의 위기를 말하려면, 그 위기의 책임 소재부터 돌아봐야 한다. 복귀생에게 반성문을 강요하기 전에 무너진 교육을 방치하고 정원 증원을 수용한 학교의 자기 성찰이 우선”이라고 했다.
의대생 대상 서약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업 등록 압박이 거셌던 올해 3월에도 대학들은 의대생들에게 수업을 충실히 듣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의대생들이 ‘등록 후 수업 거부’로 투쟁 방식을 바꾸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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