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항소심 “의사가 해야” 벌금 2000만원 선고
의사 입회했어도 간호사가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
병의협 “어떤 형태라도 무면허 의료행위 허용 안돼”

법원은 침습적인 검사인 골막 천자는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로 전문간호사가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법원은 침습적인 검사인 골막 천자는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로 전문간호사가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전문간호사가 골수 채취를 위해 골막 천자를 의사 지도·감독 하에 시행했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로 불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의사가 지시하거나 위임했으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혈액·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시행하는 골막 천자는 골반뼈 부위를 바늘로 찔러 골수 혈액을 채취하고 더 굵고 긴 바늘로 골수 조직을 채취하는 침습적 검사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최근 간호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해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서울아산병원에 대해 무죄라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종양내과, 소아종양혈액과에서는 지난 2018년 4월부터 11월까지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골막 천자를 종양전문간호사가 시행했다. 종양전문간호사들은 한 달 정도 의사들이 골막 천자를 할 때 옆에서 관찰하고 검사 방법과 유의사항 등을 교육받았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2018년 PA(Physician Assistant) 불법의료 신고센터를 통해 이같은 제보를 받고 병원과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1심 "무면허 의료행위 아니다"→2심 "골막천자는 의사가 해야"

검찰은 벌금 3,0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의사가 직접 골막 천자를 해야만 하고 종양전문간호사에게 지시하거나 위임해 시행하면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했다. 해외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수행하고 있다고도 했다. 골막 천자로 환자에게 신경 손상이나 심각한 출혈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의사 지도·감독 하에 전문간호사가 이를 수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학회 의견이 판결 근거가 되기도 했다.

검찰은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종양전문간호사가 수행하는 골막 천자는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규칙을 개정해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의사 지도 하에 수행하는 업무’로 규정했더라도 침습적 의료행위인 골막 천자는 의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의사의 현장 입회 여부를 불문하고 골막 천자를 간호사가 직접 수행한다면 이는 진료 보조가 아니라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며 “간호사의 행위(골막천자)는 자격 범위를 넘는 의료행위로 의료법 제27조 1항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다른 병원에서 골막 천자를 받던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존재한다며 “환자 상황에 따라 출혈 등으로 인해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아산병원은 의사가 예약프로그램을 통해 골수검사를 의뢰하면 의사 입회 없이 간호사가 수행했다며 “의사의 직접적인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은 간호사 1명당 하루 12건으로 골막 천자 검사 횟수를 정해 놨으며 이를 초과하면 의사가 수행했다.

종양전문간호사 자격에 대해서도 “종양 분야 전문성을 가진 간호사 자격을 인정받은 것 뿐”이라며 다른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의사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다”고 했다.

종양전문간호사가 의사보다 골막 천자 숙련도가 높아 의료사고 위험이 없고 해외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수행한다는 서울아산병원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숙련도는 특정 의료행위를 얼마만큼 수행해 왔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뿐”이라며 “의료법령이나 의료체계가 상이한 해외에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의사들의 업무 과중을 이유로 전문간호사에게 이 사건 의료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도 했다.

단, 종양전문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수행해 환자의 건강이 손상되는 등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고 고발이 이뤄진 후 의사가 직접 골막 천자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병원의사협의회 "불법 PA =무면허 의료행위 인정한 판결" 환영

이번 사건을 고발한 병의협은 반겼다. 병의협은 9일 성명를 내고 “이번 판결을 통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는 어떤 형태라도 허용돼선 안된다는 사실을 공고히 하는 법적 기준이 마련됐다”며 “불법 PA 의료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병의협은 “특정 의료행위 시행 주체를 정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고 의사가 시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의료행위가 되려면 수많은 검증과 연구, 의료진 전체와 환자의 동의가 필수”라며 “골막 천자라는 매우 침습적인 의료행위가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된다면 골막 천자에 비해 덜 침습적이지만 지금까지 의사가 하도록 규정된 수많은 의료행위의 주체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1심 판결에서 나온 무죄 논리가 항소심에서 모두 반박됐기에 대법원 판결도 항소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종 판결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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