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2023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공개
38.5% '업무량 과도' 호소…식사나 휴식 시간 확보 안 돼
인력 부족→업무 가중→사직 '악순환'…"아파도 못 쉰다"
"9·2 노정합의 이행 인력 확충하고 업무 기준 마련" 촉구
전국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최소한 휴식이나 식사도 못 챙기는 극단적인 환경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부족에서 시작한 업무 부담이 인력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인력 확충과 적정 업무량 기준 확립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0일 7월 총파업을 앞두고 '2023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보건의료 현장은 사실상 인력대란에 치달았다"며 9·2 노정합의에 기반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실시한 이번 실태조사는 전국 200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노동자 4만8,049명이 참여했다.
인력 수준 적정하다 26.7%…보건의료노동자 70% 육체적 '번아웃'
전체 조사 참여자 가운데 업무량과 노동강도 수준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40.2%였다. 직장 인력 수준에는 26.7%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간호사는 업무량과 노동강도 만족도 35.7%, 인력 수준 만족도 22.8%로 전체보다 낮았다. 또한 3교대 근무자 중 인력 수준이 적정하다는 응답은 43.1%였다. 3교대 근무자 66.5%가 결원이 발생해도 충원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체 보건의료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7%가 '본인 업무 외 다른 업무까지 처리'하고 있었다. 보건의료노동자 42.6%가 지금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 범위가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업무량이 '근무시간 내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는 대답도 38.5%였다.
과도한 업무와 부족한 휴식 시간으로 제때 식사조차 못 챙기는 보건의료노동자도 많았다. 응답자 절반인 50.5%가 최소 1주에 한 번 이상 식사를 거른다고 답했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주5회라는 응답도 9.6%나 됐다. 이동 시간과 휴게 시간을 포함해 평균 식사 시간이 30분 미만인 노동자가 64.8%였다.
극심한 노동 강도는 '번아웃'을 불러왔다. 보건의료노동자 70.4%가 스스로 육체적 소진 상태라고 느꼈다. 64.4%는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자주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꼈고(54.6%) '다음 날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하거나(64.5%) 현재 하는 업무에 '어떤 의미나 열정도 느끼지 못한다(40%)'고 했다.
환자 40명 혼자 돌봐…아파도 못 쉬는 업무 환경에 사직 악순환
과도한 업무는 '줄 사직'으로 이어지고 남은 노동자의 업무 부하로 돌아갔다.
사직의 악순환은 간호사에서 두드러졌다. 지난 3월 보건의료노조가 진행한 '산별총파업 요구 관련 현장 사례조사' 대상인 전국 31개 의료기관 가운데 5곳 이상이 지난 2022년 간호사 1년 사직률 25%를 넘겼다. 사직률이 35.6%에 이르는 기관도 있었다.
높은 사직률은 그만큼 간호사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자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기관 가운데 일반 병동 환자 20명, 야간병동 환자 40명을 간호사 1명이 모두 감당한 사례도 있었다.
간호사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고 "담당 환자가 15명이어도 실제 20명 이상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중증 환자가 많아 "환자 1명만 상태가 안 좋아도 모든 업무가 마비"된다고 했다. 환자 수십 명을 혼자 담당하니 "환자가 어떤 환자인지도 모르고" 일하거나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들은 "식사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근무환경에서 버티다가 "유산하거나 불면증과 공황 장애"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롭고 계획적인 휴가 사용은 어려웠다. 휴가는 "동료 업무가 가중되고 환자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여겨졌고 "연차 휴가는 꿈도 꿀 수 없고" "아파도 병가가 불가능해" 계속 근무해야 했다. 당장 급한 수술이 아니면 "수술을 몇 달 뒤로 미루라고 권유하는" 병원도 있었다.
이는 다시 잦은 사직으로 이어지고 간호사 업무 숙련도 저하를 불러왔다. 업무 숙련자가 적은 현장은 "간호사는 16명이지만 능숙한 간호사는 10명뿐이라 매번 불안하고 위험하게 근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나머지 간호사가 분담해 업무 강도가 더 높아지고" 응급사직이 "또 다른 응급사직으로 이어지는 사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간호사들은 "사직자가 너무 많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한 달에 20명이 사직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신규 입사자 70%가 1~2년 내 그만둔다"고 했다. 신규는 물론 "중간 연차나 경력 간호사들도 사직"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인력 부족→환자 피해…"政, 노정합의 이행 안 하면 7월 총파업"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력 부족이 의료 서비스 질 저하는 물론 신속한 응급상황 대처를 가로막고 각종 의료사고로 이어진다고 했다. 결국 보건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력 확충과 업무 부담 완화 등 대책이 즉각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오는 7월 예정한 총파업 투쟁도 보건의료인력 확충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진행한다.
아울러 지난 2021년 보건복지부가 체결한 9·2 노정합의 사항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충분한 인력 확충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 기준으로 간호등급제 개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 배치 기준 상향 ▲의사 인력 확충과 불법의료 근절 ▲직종 간 업무 범위 명확화 등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보건의료 현장은 인력대란 상황을 맞았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심각한 번아웃, 줄을 잇는 사직으로 의료 현장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보건의료인력 문제를 전면 해결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결단을 보이지 않으면 오는 7월 총파업 투쟁은 불가피하다"며 "더 이상 때를 늦추며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된다. 정부는 9·2 노정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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