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시간 단축은 일부, 오히려 '정상진료' 안내
개원가 "연가 낸 간호조무사도 많지 않다"
"불명확한 파업 지침에 오합지졸 됐다" 비판도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부분 파업을 시작했지만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부분 파업에 대한 명확한 지침 부재가 원인으로 꼽혔다.
당초 환자 불편 등 의료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참여 여부나 시간은 자율적으로 진행키로 했지만 구체적 지침 부재로 오히려 일선 의료기관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청년의사는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부분 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강남구, 구로구, 노원구, 마포구, 서대문구 등에 위치한 의원급 의료기관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진료 시간을 단축하는 곳은 일부에 불과했다.
부분 파업에 참여한 개원의들은 오전 진료는 진행하고 지역별로 개최되는 ‘간호법·면허박탈법 강행처리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 참석을 위해 오후에는 휴진할 예정이다. 간호조무사들이 신청한 연가를 승인하고 이날 하루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개원의 A씨는 “간호조무사 일부만 연가를 쓰기로 했다. 의원은 정상 진료를 하다가 오후 5시 30분 규탄대회 시각에 맞춰 참석하기 위해 일찍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형외과 개원의 B씨도 “오전 정상진료를 하고 국회 앞 규탄대회 참석을 위해 오후에는 휴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정상 진료를 한다는 곳이 더 많았다. 아예 병원 문 앞에 ‘5월 3일 오전·오후 정상진료’한다고 안내한 곳도 있었다. 연가를 낸 간호조무사들도 많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투쟁'보다는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급하다고 했다.
중구 소재 정형외과의원 원장 C씨는 “휴무 안 하고 앞으로도 병원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할 생각도, 집회에 나갈 계획도 없다.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중 참여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은 안 그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하루 쉬면 매출도 매출이지만 다른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들이 생긴다"며 "‘여기는 갑자기 휴진하는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 개원의 입장에서는 큰 일 아닌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이라 절대 쉽지 않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D씨는 “오늘 문 닫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 의사 파업한다고 애들 팽개쳤다고 부모들도 난리난다”며 “같은 건물에 휴진하는 곳도 없다. 우리 직원(간호조무사)들도 다 출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간호법이 문제냐. 소청과 살려달라고 시위하면 나갈지도 모르겠지만 간호법은 (파업까지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내과 개원의 E씨도 “부분 파업 때문이 아닌 매주 수요일 오후는 휴진이지만 규탄대회 등에 참석할 계획은 없다”며 “간호조무사 중 연가를 낸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일선 간호조무사들도 집행부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간무협에서 연가투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카카오톡 채널 등을 통해 홍보에 나섰지만 투쟁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
1차 연가투쟁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한 간호조무사는 “뉴스에서 보긴 했지만 다들 모르는 눈치고 투쟁에 관심도 없는 것 같다”며 “주변 간호조무사들도 조용하다”고 했다.
“불명확한 파업 방향에 ‘오합지졸’ 됐다”
투쟁 지침 등 명확한 방향 제시가 없다보니 힘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진행된 파업과 비교된다고도 했다.
산부인과 개원의 F씨는 “정상진료를 하다가 오후부터 휴진을 하라는 건지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다”며 “간호조무사들이 대한간호협회에 항의하는 투쟁에 의사들이 협조하는 방향으로 휴진하는 것인가. 구체적 지침이 없다보니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F씨는 “물론 지침이 없다고 (부분 파업)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각자도생처럼 돼 버렸다”면서 “이렇게는 힘을 모으기 어렵겠다. 더욱이 연가를 내겠다는 간호조무사들도 없다”고 했다.
가정의학과 개원의 G씨는 “서울은 국회 앞에서 오후 5시 30분 궐기대회를 한다는 말 뿐이지 휴진 시간 등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보니 일선 회원들도 난감한 상황”이라며 “지난 2020년 총파업 당시 명확한 지침 하에 움직였던 경험을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 방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G씨는 “이번 부분 파업은 일방적으로 법률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항의인데 대통령 거부권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애매한 부분도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분 파업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개원의 H씨는 “리더십 문제가 있다. 소통 채널을 의협이든 비대위든 일원화할 필요도 있다. 동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야 하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파업이라는 메시지는 명확했지만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 회원들이 오합지졸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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