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관장이란 약물을 항문으로 넣어 대변을 보게 하는 것이다. 변비가 심해 먹는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직접 항문에 약물을 집어넣어 빼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손가락으로 파내야 한다. 그러니 변비는 정말 고약한 질병이다.
아침마다 변기에 앉아 애를 쓰는 것은 변비 환자들의 일상이다. 그렇게 한참을 힘을 주었는데 아무 보람도 없을 때 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마저 흐른다. 사투를 벌이다 보면 해결되기도 하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는 때도 있다. 돌덩어리같이 굳어버린 변이 항문 바로 위에서 입구를 막아버린 경우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손가락으로 변을 파내야 한다. 혼자서는 무리이기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다. 그럼 의사는 손가락을 넣어 변을 파낸다.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돌같이 굳은 변이 크기마저 크면 쉽게 빼낼 수 없다. 이런 경우 손가락으로 직장 안에서 변을 쪼개어 조각낸 후 제일 작은 덩어리부터 손가락 끝에 걸고 직장 벽을 따라 끌고 내려와 항문 밖으로 빼내야 한다. 시간을 줄여보자고 무리하면 항문이 찢어져 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 천천히 달래고 달래서 조각난 변을 살살 빼내야 한다.
며칠째 대장 안에서 숙성된 변이 나오면 파장이 아주 강렬하다. 숙성된 냄새는 병원 전체를 휘돌고, 손가락에 밴 냄새는 한참을 간다. 그렇게 막힌 변을 빼내 주고 나면, 변을 못 봐 하얗게 질렸던 환자의 얼굴빛이 그제야 분홍색으로 바뀌고 이제 살 것 같다고 한다. 관장은 숭고하다. 고역이지만 보람도 많은 일이다.
관장이 항상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었다. K의 경우가 그랬다. 조현병과 강박장애를 가진 그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오랜 기간 약을 먹고 있었고 잦은 입원과 퇴원을 하였다. 그런 그가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오직 변비 때문이었다.
그의 변비가 무슨 원인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는 한사코 어떤 검사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오직 변비약만 달라고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변비약을 먹어도 변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직장수지검사를 했는데 돌같이 굳은 변이 항문을 막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변을 파 주었고 남은 변은 관장액을 집어넣어 빼내 주었다. 그도 시원해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제 그는 배변을 오직 관장에만 의존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찾아와 관장을 해달라고 했다. 관장이 그의 강박이 되어버린 것이다.
씻지 않는 것도 그만의 룰이었다. 똑같은 옷을 한 번도 빨지 않고 입고 다니는 것도 그의 강박이었다. 그가 노숙인의 모습으로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다른 환자들이 자리를 피했다. 그의 행색이 그러니 직원들도 그에게 관장해 주기를 꺼려했다. 결국 그의 관장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은 오전에 왔다가 다시 또 오후에 오기도 했다.
하루는 그가 관장을 한 후에도 변이 남아 있다며 또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날은 직장수지검사에서도 변이 많지 않아서 관장을 해도 변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좀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배 사진도 찍어 보여 주면서 변이 우측 장에 주로 있어 시간이 걸린다고도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다른 환자를 진료하는 중에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관장을 해달라고 했다. 또 내시경을 하는 중에도 내시경실을 벌컥 열고 들어와 관장을 해달라고도 했다. 접수창구를 가로막고 다른 환자가 접수도, 수납도 못 하게 했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어떤 환자는 그에게 대놓고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자꾸 이러면 진료 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그는 돌아갔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강박장애라면 새로운 강박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있다는 말에 고분고분해진 그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관장은 10일에 한 번씩 가능하다. 아무 때나 오고 싶을 때 오는 것이 아니며, 10일마다 와야 한다. 두 번째로 10일 만에 한 번씩 올 때마다 하나씩 임무를 주었다. 손발톱을 깎고 와라. 이발도 하고 머리도 감고 와라. 속옷을 갈아입고 와라. 이 임무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관장은 없다고 말해 주었다.
새로운 강박은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손톱을 깎고 오더니, 다음에는 발톱을 깎고 왔다. 그다음에는 머리를 감고 오더니, 속옷도 갈아입고 왔다. 그래도 바쁜 오전 시간에 그의 이름이 접수 대기자 명단에 뜨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처치실에 가서 바지를 반쯤 내리고 마른 엉덩이를 내놓고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위생 상태를 확인한 뒤 관장을 시작한다. 내 손가락을 환자의 직장에 집어넣고 변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한다. 손으로 파야 하는지, 아니면 관장액만 넣어도 되는지를 확인하고 관장액을 넣고 나온다. 그 사이 그는 이번엔 정말 변 좀 많이 나오게 해달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10일은 금방 찾아왔고, 나는 의사로서 원인도 파악하지 않고 검사도 없이 이렇게 관장만 해주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그의 강박이 관장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가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병원에 그가 오지를 않았다. 정말 다른 것으로 강박이 옮겨간 것일까? 이제 드디어 관장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를 보며 내 머릿속 범주에 있는 질병들을 깔끔히 치료하고 경과도 좋은 그런 진료가 편했다. 두세 달이 지나도 그는 오지를 않았다. 접수창구에 혹시 K씨가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는데, 따로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이전에 10일마다 올 때는, 오는 날에도 오전에 여러 차례 전화해서 내가 근무하는지를 확인했던 그였다. 나는 접수창구에서 그의 집 주소를 알아내 메모한 후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그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의 집은 나라에서 마련해 준 임대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렸다. 그는 나를 보고 무척 놀란 듯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에게 “잠시 들어가도 되지요?”라고 말하고는 선물로 사 온 바나나를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의 집은 단출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였고, 잠을 자는 방에는 전혀 빨지 않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었다. 부엌에 나와 있는 식료품은 라면이 전부였다.
매일 오전 시청에서 보내 주는 가사도우미가 오면, 라면 하나 끓여 주고 청소를 해주고 간다고 했다. 저녁으로는 뭘 먹느냐고 했더니, 시장에서 사 온 꽈배기 하나를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먹고 산다면 변비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왜 그동안 안 왔냐고 물었다. 그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병명은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 기간이었다. 다른 가족은 없냐고 물었다.
“저 혼자 살아요. 누나가 있는데 연락을 안 하고 산 지 오래됐어요. 그런데 저 이제 괜찮으니 다시 병원에 가도 되지요? 경찰은 안 부르실 거죠? 다른 병원은 저를 아예 받아 주지도 않는데, 여기만 진료를 봐주셔서요. ”
이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 원인을 정확히 알고 치료의 끝을 알 수 있는 진료를 바랐다. 그것이 의료라고 생각했다. 원인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치료가 낯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이유도 모르고 답은 더더욱 모르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원인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치료가 낯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이유도 모르고 답은 더더욱 모르는 일들이 많다. 알 수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일은 그가 올 때마다 잘 맞아 주고 위생과 영양 상태를 점검해 주면서 10일 후에 다시 오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 그가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가 그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발끝에 차인 은행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가 관장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 웃음이 났다.
『K의 집을 다시 찾았다. 한동안 그가 병원에 오지 않아 그의 안부를 물으려고 과일 한봉지를 들고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당황해 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는 밝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이제 병원을 안 가도 되겠다고 했다. 집에서 규칙적으로 변을 잘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 설치한 에어컨과 온열기를 보여주었다. 누나가 해 주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여름을 보내고 쓰러졌었다. 병명은 횡문근융해증이었다.
여름내내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라면만 먹고 생활한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근육이 녹아버린 것이었다. 입원을 하고 나온 그의 소식을 들은 누나가 찾아와 집에 에어컨을 달아주고 겨울을 대비해 온열기를 달아주었다.
외로이 살아가던 그가 가족의 손길을 느끼자 그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변비도 사라졌다. 그와 나는 관장으로 맺어진 관계였다. 나는 그의 변비를 치료하려고 애를 썼다. 그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 알게 된 건 그의 병이 내가 배운 병태생리에 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것은 그의 외로움, 그의 가정사,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였다. 예전과는 다르게 밝아진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병원에 안 오셔도 되고, 언제든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고 그의 집을 나섰다.』
글을 심사해 주시고 상을 주신 작가님들과 한미약품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를 보내며 저의 진료를 성찰해 봅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진료였습니다. 다시 한 번 글에다 제 삶과 진료를 매어 보려고 합니다. 항상 제 글쓰기를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올해 고3인 막내 아들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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