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부산백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전담전문의(소아청소년과)
오전 4시.
어김없이 알람보다 앞서 눈이 떠진다. 긴장의 무게를 실감하며 푸석한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대충 눈곱을 뗀다. 어차피 잠이 든 두 시간 전과 큰 변화는 없(길 바라)지만, 인큐베이터 안 서른 명 남짓 꼬맹이들의 안녕을 확인하고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 계획을 세워주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화장실에 들르니 이미 출근해 일과를 수행 중인 미화부 직원과 마주치고 피차 연민 섞인 눈인사를 교환한다. 곧바로 니큐(NICU,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들어가 익숙한 얼굴의, 그러나 낮보다는 한 톤 어두운 얼굴의 밤 근무 간호사들에게 최대한 밝게 인사를 건넨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활력 징후를 예의주시하는 초미숙아, 장루수술을 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구토를 하며 소변량이 줄던 아기, 폐동맥고혈압이 심해 산소요구량이 꽤 많은 친구까지, 중증도가 높아 아무래도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아기들부터 돌아본 후 기록을 살피며 처방을 시작한다. 때 이른 노안老眼은 피곤할수록 심해져, 안경을 벗고 게슴츠레 모니터를 노려보는 자신을 알아챌 때마다 사뭇 의기소침해진다.
오전 6시.
아침 정규 시각에 시행하는 엑스레이 촬영과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는 한편, 몇 시간 후에 시작될 동백관개존증 수술 준비에 빠진 것은 없는지 점검한다. 신생아 입원 환자의 특성상 수술은 대체로 수술방이 아닌, 니큐 안에서 이루어진다. 해당 수술팀이 추가로 합류하기에 공간이 모자라다.
종종 하는 수술이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지연이 없게 하려면 동선 확보부터 시작해 도관 유지, 자세 조정 및 약물의 용량 확인 등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아 평소보다 품이 많이 든다. 더구나 간밤에 들어온 산부인과 공지에 따르면, 이제 25주를 갓 넘긴 아기를 둘이나 품고 있는 산모의 전신상태가 점점 나빠져 제왕절개 분만 가능성이 높다 했었다. 상황이 겹치게 되면,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다.
오전 10시.
세상과 맞닥뜨린 500그램 남짓의 쌍둥이들은 출생 후 호흡도 움직임도 없다. 부지런히 처치 후 인큐베이터에 아기들을 태우고 앰부백을 짜면서 니큐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는데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주머니 속 휴대폰 소리에 일순 깜짝 놀란다. 화면에 뜬 익숙한 번호. 뻔히 나의 상황을 알면서도 전화한 걸 보면 뭔가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하면서도, 내심 누군가 실수로 호출한 것이길 바라본다. 보조해주던 간호사가 전화를 받자, 쏟아내듯 터지는 절박한 목소리.
“갑자기 아기가 피를 토하면서 심박이 처져요! 앰부 짜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오전 10시 직후.
진동한동 도착한 니큐는 아수라장이다. 불그죽죽한 침을 뒤집어쓴 아기가 늘어진 채 퍼렇게 물들어가고 있고, 모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새된 목소리로 서로에게 지시하다 우리를 발견하곤 얼른 와달라고 한다. 병상 수를 꽉 채운 입원 환자와 이미 혼자 서너 명을 담당하는 간호사들. 거기에 의사는 나를 포함해 둘 뿐인 시간이라 아무리 급해도 데리고 있는, 방금 태어난 아기들을 인공호흡기에 연결시킨 뒤에야 손이 빈다.
먼저 처치를 끝낸 다른 선생님이 얼른 달려가 삽관을 시도한다. 다행히 심박수는 금방 안정을 찾았고 이내 모니터의 알람도 잠잠해진다. 미동도 없던 아기 또한 목구멍에 들어온 튜브에 놀랐다는 듯 팔다리를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데리고 들어온 쌍둥이들의 처치를 연거푸 시행한다. 초기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한편, 제대도관을 넣고 처방을 낸다. 불안 가득한 표정의 아빠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경과와 예후를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말하면서 동의서를 받아 둔다. 그러는 중 이미 수술팀은 도착해서 준비와 타임아웃을 마치고 집도에 들어갔다.
텐션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술 중인 아기의 인공호흡기 옆에 붙어 서서 상태에 따라 이리저리 값을 조절한다. 시계를 보니 한 시 남짓, 얼음 잔뜩 넣은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절실한 시각이다.
오후 2시.
무사히 수술이 끝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며 계획을 의논 중에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생후 한 달여가 되어가는 칠삭둥이의 엄마, 응우옌이다. 취업 비자로 일을 하던 중 동향인과의 사이에서 아기가 생겼고 뭐가 급했는지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와버렸다. 오전에 있었던 난리법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급성기도 한참 지나 안정을 찾고 있는 와중의 폐출혈이라니. 지극히 이례적인 이 사건을 포함한 검사 결과 등 여러 정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모종의 선천 질환마저 의심되는 상황이다. 상태와 추가 검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동의가 필요하지만 엄마의 거주지는 병원에서 두 시간 거리인 데다 근무 일정도 빡빡하여 한 달에 한 번 오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는 터라 전화 설명도 어렵고 통역과 함께 직접 방문하기만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것. 그런데 정작 설명하는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사진. 찍. 야 해요, 얼. 굴 사진”
간절함이 밴 어눌한 한국어다. 사정인즉슨, 취업 비자는 곧 만료되는데 이미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입원 비용이 발생 중인 아기가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아기 본인의 여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대사관의 여권 업무는 심각한 정체 상태라 보통 삼 개월은 걸린다고 하고, 그때는 엄마가 불법체류자가 된다. 그러므로 하루 빨리 여권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
하필 이렇게 눈 돌아가게 바쁜 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미룬다고 해도 어차피 대신해 줄 사람도 없으니 의료진 중 누군가 해야 한다. 아직 인큐베이터가 세상의 전부인, 앉기는커녕 목도 못 가누는 겨우 1.5킬로그램짜리 아기.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적다. 여권 규정에 맞추기 위해 흰색 배경이나 의료 장비들은 포토샵으로 어떻게든 해본다손 치더라도, 눈까지 그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모두 옆을 지날 때마다 기회를 엿보지만 애초에 사진 찍는 데 할애할 시간은 거의 없다. 아쉬운 대로 확보한 것은 반쯤만 눈을 뜬 사진이다. 관공서의 관용을 기대하며 엄마의 휴대폰으로 이미지를 전송한다.
오후 5시.
정규 시간이 저물어가고 다시 시작될 당직을 준비한다. 주의 환자 목록에 응우옌 아기와 오늘 수술을 마친 아기가 추가되었다. 새로 태어난, 둘이 합쳐 일 킬로그램짜리 쌍둥이들은 두말하면 잔소리.
꽉 찬 당직이 예상되기에 빈 위장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이내 귀찮아져 되돌아온다. 당직실 한편에 수북이 쌓인 컵라면 하나를 뜯어 물을 붓고 기계적으로 밀어넣자, 그것도 식사라고 식곤증이 밀려온다. 엎드려 잠깐 까무룩 잠이 들던 찰나, 전화가 다시 울린다. 신생아실이다.
“낮에 태어난 당뇨 산모 아기가 수유를 했는데도 혈당이 계속 낮아서 연락드렸어요.”
공손한 목소리였지만, 한숨부터 나온다. 아무리 단순한 환자라 해도 일단 니큐에 입원을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이런저런 ‘업무’가 발생하고,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얼마길래 그래요? 제대로 측정한 거 맞아요? 왜 지금 알려줘요?”
괜한 트집. 태어난 시각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간에 필요한 조치를 하고 나온 정확한 결과다. 잘 알면서도 날 선 목소리로 입원을 통보한 뒤 밀려오는 자괴감. 저 선생님은 당연한 보고를 하면서 왜 조심스러워하고, 나는 왜 짜증을 내고 있는가.
오후 10시.
새로 입원한 아기의 처치를 마치고, 다른 아기들의 크고 작은 여러 증상 및 결과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그 사이 저녁 면회를 온 보호자들까지 만났다.
“선생님, 요즘 괜찮으세요? 혹시 선생님도 그만두시는 건 아니지요?”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전공의 사직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해답 없는 혼돈의 시국이라, 부모님들 중 일부는 걱정하며 안부를 묻는다. 거기에는 의사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동정도 조금은 있겠으나, 아마 대부분은 피붙이를 환자로 둔 부모의 입장에서 갖게 마련인 불안의 투사이리라.
‘다행스럽게도 소아청소년과는 한참 전부터 전공의가 없었어요. 우리는 원래 이렇게 일하고 있었답니다.’
사실을 전달할 뿐이지만 목소리로 나오는 순간 내 말투에 섞일 비아냥이 염려되어 말을 삼킨다.
“코드블루! 6층 신생아 중환자실! 코드블루!”
잘못 들었나? 갑작스런 원내 방송에 귀를 의심하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코드블루? 누구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억누르고 당직실을 뛰쳐나온다. 눈앞에는 이미 시퍼렇게 변한 아기가 간호사들의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
오늘 수술을 마친 미숙아다. 왜 이렇게 됐지? 분명 얼마 전까지 혈압도 잘 나오고 소변도 보고 있었는데. 아니, 그 전에 내가 언제 잠들었지? 언제 불렀는지 부모님들도 이미 옆에서 눈물을 쏟으며 오열하고 있다. 필요 약물을 구두로 지시하고, 곧장 가슴 압박을 한다. 지속하는 소생술에 보람도 없이, 아기의 심박수는 나의 것과 반비례하듯 눈에 띄게 늘어진다. 기도에 연결된 가느다란 삽관 튜브를 통해 선홍색 피가 솟구친다……,
그때 잠에서 깼다.
새벽 2시.
기록을 정리하다 자정이 넘은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누웠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꾼 것도 참 오랜만이다. 어딘가에 각인된, 지난달 비슷한 상황에서 세상을 떠난 아기의 마지막 순간이 파란만장한 하루의 파도에 쓸려 드러난 모양이다. 아직도 꿈에 이런 게 나오는 걸 보니 나도 아직 멀었구나, 자조하면서 가슴을 쓸며 다시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긴다. 불길한 꿈을 꾸었으니 가서 직접 확인해야지.
오전 6시.
당직을 마무리하면서, 인계할 사항을 추리는 동안 마음 속으로는 또 다른 보고를 갈무리한다. 현대의학의 시대 이전, 정화수에 담긴 엄마의 소망과도 같은 것들을 스스로에게 인계한다.
■ 응우옌 아기 : 최대한 잘 나온 사진을 보냄. 무사히 여권이 나오길 바람. 유전 검사에서 무엇이 나오든 부디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길.
■ 쌍둥이 아기들 : ‘건강이’랑 ‘튼튼이’라는 태명 그대로 아무 합병증 없이 잘 먹고 커서 퇴원하길.
■ 면회 부모님 : 다툼을 위해 아기들의 건강을 볼모로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사실을 부디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 어제 수술한 아기 : 꿈은 반대이므로, 빠르게 회복하여 곧 정상 심기능 확인될 것.
그리고,
■ 지난 달에 세상을 뜬 아기와 꿈속에서 스러지던 아기 : 한없는 고민과 최선을 다한 시도들로 밤을 지새워도 결국 허무함만 남는 순간들이 있음. 그것은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닐 것이고, 다만 해야 할 것은 그런 전례가 예언이 되지 않도록, 복기(復棋)하며 조금이라도 결과를 바꾸기 위해 한없이 저항하는 것뿐.
비일상이었던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늘 그랬듯 또 적응들을 하고 있습니다.
태생이 백면서생인지라 누군가처럼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높일 재주도, 의지도 없고 그저 하던 일만 고집하는 미련퉁이지만 소위 말하는 필수 의료 종사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저로서는,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 더욱 서글프게만 느껴집니다.
사건 사고가 유난히도 많던 어느 날, 일과를 정리하면서 몸보다도 마음이 더 지치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돌려보려 애썼던 행복 회로 같은 것들을 글로 남기고픈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밖은 밖대로 난국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여전히 가슴 철렁한 순간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그렇게 정리된 글은 저에겐 일종의 다짐으로 남아 또 하루를 버티게 해 줍니다.
의료계 뿐 아니라 한미약품 관계자들도 힘든 한 해를 보내고 계신 줄로 아는데, 다시 한 번 수상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며, 졸작이지만 변함없이 독려해주시는 청년의사 편집부와 당선의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들께 역시 고개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관련기사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 최고령 환자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 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 의료대란 녹아든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대상은 박수현 교수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무거운 통화
- [공지]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자 발표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징검다리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그녀의 마지막 편지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비가 오는 날엔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한 할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어느 부부와의 약속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아홉 달의 동행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아프지 않게 해달라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관장의 추억
-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시지프스의 형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