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유성선병원 신경외과
초여름의 더운 밤이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 해마다 내리는 비의 양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도 예전보다 점점 더 거세지는 듯했다.
굵은 빗줄기를 가르며 경찰차 한 대가 캄캄한 도로를 달린다. ‘끼익’하는 급정거 소리와 함께 병원 응급실 앞에서 멈춰 선 경찰차. 한 남자가 차에서 급하게 아이를 안고 내렸다.
“살려주세요! 제 아들입니다.”
남자는 다급하게 눈앞의 의사에게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내밀었다. 아이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축 처진 채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의식이 없어 보였다. 신경외과 전공의인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침대에 눕히세요.”
아이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그 작은 몸에 의료진들이 분주히 달라붙는다. 아이의 옷을 벗기자, 각종 검사 기구들이 아이의 작은 몸에 부착됐다. 나는 곧바로 아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아이는 혼수상태였고, 눈의 동공은 모두 열려 있었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상당했고, 혈압도 불안정했다. 아이는 생명의 끝자락에 겨우 매달려 있는 듯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내 질문에 아이의 아버지가 급히 대답한다.
“3층에서 떨어졌어요. 제가 왔을 때는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떨어지는 걸 직접 본 건 아니에요? 어떻게 아이가 떨어졌다는 걸 아셨어요?”
“제가 아까 집을 나올 때 3층 창문에서 아이가 인사를 했어요. 평소에도 애가 책상을 밟고 창문까지 올라가서 엄마가 오는지 보곤 했거든요. 저는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집으로 왔는데, 아이가 밑에 떨어져 있었어요.”
남자는 경황이 없는 듯 횡설수설했다.
“일단 CT부터 찍어 봅시다.”
곧바로 뇌CT를 촬영했다. 머리에는 방사형 골절이 있었고, 신체 다른 부위에는 골절이 없었다. 하지만 머리 내부에는 외상성 뇌출혈이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당장 응급수술로 감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뇌출혈이 너무 심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며 일단 기다려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엄마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 열댓 명이 우르르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의 엄마는 곧바로 아이를 보며 울부짖었다.
“엄마가 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당신이 뭐가 미안해! 이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딘지 이상한 부부의 대화를 뒤로하고 경찰이 더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3층에서 떨어졌다고요? 저 남자분이 편의점으로 아기를 안고 가서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던데요? 저희는 편의점 직원의 신고로 출동한 겁니다. 도착했을 때 아기가 피도 흘리고 의식이 없어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한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그랬나? 왜 경찰을 불렀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나에게 상황을 듣고는, 다들 전화기를 붙잡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그때, 어느새 연락을 받고 내려온 신경외과 당직 교수님이 뇌CT를 살펴보며 경찰에게 말했다.
“3층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몸 다른 곳에 골절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머리뼈의 골절 양상이 좀 특이하네요. 만약 낙상으로 인한 골절이라면 충격이 넓은 부위에 분산되어 분쇄골절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마치 충격이 한 점에서부터 퍼져나간 양상이라서…….”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교수님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수박을 망치로 쳐서 깼을 때와 떨어뜨려서 깼을 때의 모양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 머리뼈 골절 양상이 충격점이 작은 것으로 보아 낙상보다는 다른 원인에 의한 외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말에 의심을 품은 경찰은 곧바로 아이의 아버지를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왜 바로 119를 부르지 않고 편의점으로 가서 경찰을 부르셨나요?”
“제가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어요.”
그때 정장을 입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다급히 말했다.
“지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이는 서울로 옮기겠습니다.”
그렇게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부모는 경찰과 함께 급히 병원을 떠났고, 아이는 헬기를 통해 곧바로 서울로 이송되었다.
조용해진 응급실. 한 간호사 웃으며 들어왔다.
“헐, 밖에 뭐에요? 저렇게 비싼 외제차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처음 봤어요.”
하지만 그녀는 곧 응급실의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침묵했다.
얼마 후, 경찰 두 명이 응급실로 들어와 의료진들에게 사건의 반전을 이야기해 주었다.
“증인이 있었어요. 지나가는 두 여성이 아이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봤고, 그중 한분이 119에 신고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그 아빠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갔다고 하네요.”
“아……, 그렇군요.”
“그 시간에 119에 신고 접수된 것도 확인됐고요. 저희도 사고로 종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렇게 흉악범죄인 것처럼 보인 사건은 결국 단순 사고로 종결되는 듯했다.
경찰들이 다 돌아가고 응급실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나와 당직 교수님은 모니터 앞에 모여 조용히 상의했다.
“이건 분명 충격이 한 점에 가해 졌을 때 보이는 건데.”
“높은데서 떨어져서 이렇게 보이긴 어렵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안도하는 나와 달리 교수님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다른 곳에서 일하고 뒤늦게 온 나이 많은 간호사가 물었다.
“아기는 어떻게 됐어요?”
“아기는 서울로 갔어요. 그런데 아기가 밖에 3층 창문에서 떨어진 거래요. 증인도 있었다고 하고.”
다른 간호사가 설명하자, 나이 많은 간호사는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아기 옷이 깨끗하던데.”
“네?”
“아까 제가 벗긴 아기 옷 여기 있어요. 한번 보세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 3층 높이에서 땅에 떨어졌는데, 옷에 흙이 하나도 안 묻는다는 게 말이 돼요?”
급하게 처치하느라 가위로 잘라낸 아이의 하얀 옷을 모두가 바라보았다. 옷은 모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응급실에는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만이 가득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에도 뜻깊은 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먼저, 제가 쓴 수필과 관련해 궁금해 하실만한 것들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1. 아이의 옷에 왜 흙이 묻지 않았을까?
당시 저는 당연히 아이가 흙바닥에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경찰이 “여기는 빌라라서 시멘트 바닥 이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옷에 흙이 거의 묻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 두개골 골절이 한 점에서 퍼져나간 양상이었던 이유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떨어진 바닥에 돌 같은 물체가 있었을 가능성을 추측할 뿐입니다. 사실 뇌출혈 자체가 워낙 심각해서, 망치 같은 다른 원인에 의한 외상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3.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저 역시 그 사람들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끼리 ‘유명 조폭일 수도, 대기업 회장님의 수행원일 수도, 혹은 국정원 직원일 수도 있다’며 추측했지만, 여전히 저에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4. 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
나중에 다시 찾아온 경찰에게 들은 바로는, 아이의 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5. 아이의 아버지는 왜 휴대폰으로 전화하지 않고 편의점으로 갔을까?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도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제일 먼저 눈앞에 보이는 곳을 찾아간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제 수필 제목은 비스트의 노래 ‘비가 오는 날엔’에서 따왔습니다. 수필을 쓰는 내내 이 곡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제목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쓴 소설 『기억을 캐는 의사들』이 올봄 출간을 앞두고 있어 잠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뇌수술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적극적 존엄사’를 주제로 신경외과에서 펼쳐지는 SF, 의학 드라마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든 늘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유리와 튼튼하게 잘 자라주는 두 아들 시온, 시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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