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신고 고뇌 담긴 〈무거운 통화〉 대상 영예
총 129편 접수… 의료대란 분위기 곳곳에 녹아 있어
소청과 의사 다수 응모… 대상 자리 두고 접전

의료계 신춘문예 ‘한미수필문학상’ 24번째 대상작으로 박수현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교수의 〈무거운 통화〉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서장혁 서피부과연세비뇨기과의원) ▲최고령 환자(성명순 순청향대구미병원 소아청소년과)▲혼자 하는 인계(이동준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에 돌아갔다.

장려상으로는 ▲징검다리(김대동 국제협력단 글로벌 협력의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태원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그녀의 마지막 편지(김혁 리서치팩토리)▲비가 오는 날엔(박민 유성선병원 신경외과) ▲한 할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박천숙 이샘병원 산부인과) ▲어느 부부와의 약속(이수영 전남대병원 대장항문외과)▲아홉달의 동행(이정무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간이식팀) ▲아프지 않게 해달라(이호중 김해 한서재활요양병원) ▲관장의 추억(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시지프스의 형벌(최영훈 닥터 최의 연세마음상담의원) 등 총 10편이 선정됐다.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심사 현장.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혜진 문학평론가,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장강명 소설가, 김혼비 에세이스트.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심사 현장.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혜진 문학평론가,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장강명 소설가, 김혼비 에세이스트.

이번에 새로 구성된 한미수필문학상 심사위원단은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펴낸 장강명 작가가 위원장을 맡았다. 여기에 〈82년생 김지영〉 등 굵직한 한국문학을 편집한 박혜진 편집자 겸 문학평론가와 에세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등을 쓴 김혼비 에세이스트가 심사 위원으로 합류했다.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수필 129편이 접수됐으며 출품된 수필 대부분 의료대란 여파가 직간접적으로 담겼다. 또한 소아청소년 환자와 관련된 사연이 많았다.

결선에 오른 27편 모두 의사이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상황과 그에 따른 고민을 다채롭게 녹여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심사위원단은 결선에 오른 27편을 놓고 치열하게 심사를 진행한 결과, 서로 다른 결말을 가져 온 두 건의 아동학대 신고 사례를 통해 의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고민한 〈무거운 통화〉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장 심사위원장은 "한미수필문학상 심사에 세번째로 참여했는데 이번 원고의 상당수가 의료대란 중에 집필됐기 때문인지 글 곳곳에 의료대란의 이야기가 녹아있었다. 예년에 비해 의료 현장의 고단함과 이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 고뇌가 더 많이 느껴졌다"고 평했다.

박 위원은 "이번 응모작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고령 환자의 성(性)을 다룬 작품들을 읽으며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올해 처음 심사를 맡은 김 위원은 "수필을 통해 질병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청년의사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됐다. 대상에는 상금 1,0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3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대상 수상자는 ‘한국산문’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제24회 한미수필문학상 심사평

긴 글을 써 온 사람으로서, 말이나 표정보다 글이 사람의 마음을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에세이는 말이나 표정보다 더 솔직하고 내밀한 표현 수단인 것 같습니다. 올해 접수된 원고들은 상당수가 ‘의료 대란’이 벌어지는 중에 집필됐을 것이고, 여러 원고에서 예년에 비해 의료 현장의 고단함과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 정서적인 고뇌가 더 많이 느껴진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그 원고들을 대하는 심사위원들의 마음 역시 여느 때보다 무거웠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 의사와 환자, 의사와 사회의 관계를 깊이 살피는 글을 더 지지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심사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심사위원들이 대상감이라고 올린 원고 세 편은 모두 소아청소년 환자를 다룬 글이었는데,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지를 놓고 가벼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접수되었는지 원고 번호도 거의 연이어 붙었습니다. 접수 순서대로 〈무거운 통화〉, 최고령 환자, 혼자 하는 인계입니다.

세 글 모두 어느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수작인데 소아청소년 환자라는 대상은 같지만 글쓴이의 생각이 머문 지점과 독자에게 주는 울림은 각각 달랐습니다. 그 외에 성(性) 문제를 말하는 글, 질병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다 넓게 보려는 글이 늘어나 반갑다는 촌평도 나왔네요.

심사위원들이 지지하는 작품은 하나로 쉽게 모아지지 않았고, 투표를 두 번이나 거친 끝에 무거운 통화가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의사는 여러 결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집니다. 그 중에는 아동 학대 의심 사례를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도 있습니다. 촘촘하게 짜인 의료 시스템, 사법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지만 그 개인은 시스템들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매뉴얼대로 한 행동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그저 규정에 정해진 대로 따르면 충분하다는 자세는 혹시 70년 전 나치 독일에서 아이히만이 지녔던 마음가짐과 같은 건 아닐까요. 반대로 자기 마음의 불편을 양심이라는 말로 포장해 수많은 사람들이 숙고하고 토론해 만든 규정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괴물로 향하는 길인 건 아닐까요.

무거운 통화는 그 고뇌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긴장감까지 얹어서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이야기가 비극일지, 행복한 결말일지, 하나의 해프닝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마지막 문단의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수상을 수상한 최고령 환자는 분량을 더해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였습니다. 길어져도 좋겠다고 썼지만, 현재 분량으로도 이야기로서 매력이 살아 있습니다. 그만큼 압축을 잘했고, 읽는 이의 감정을 효율적으로 건드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2살이 되어서도 어릴 때부터 진료 받던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는 ‘최고령 환자’ 젊은 여성, 아내를 여의고 이제 곧 딸과도 작별해야 하는 블루컬러 아버지, 그들을 지켜보고 때로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의사들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게 잘 전했습니다.

최고령 환자가 짧은 소설 같았다면 혼자 하는 인계는 아주 잘 쓴 르포르타주였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신생아 집중치료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바탕으로 소아과 의사 부족 현상과 열악한 진료 환경, 전공의 사직 사태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 이슈,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의 중압감까지 매끄럽게 풀어냈습니다. 역시 우수상을 수상한 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와 함께, 소명의 무게를 그 소명을 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글이었습니다.

의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는 소명의 무게를 그 소명을 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하는 글이었습니다. 가치 있는 삶을 만드는 고집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기는 좋은 직업 에세이의 본보기였습니다.

훌륭한 의사를 뽑아야 하는 걸까, 훌륭한 문장가를 뽑아야 하는 걸까, 매번 한미수필문학상을 심사할 때마다 위원들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늘 결론을 못 내는데, 올해는 훌륭한 의사이자 문장가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수상자 분들께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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