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문변호사가 본 ‘의료 사법 리스크’ 원인
“의료감정, 법원 판단 모두 의료 현실 감안해야”
과실 인정률 높은 민사 먼저 하고 형사소송으로
“형사처벌 가혹해지고 있다…누가 필수의료 하겠나”

의사들이 필수의료라고 하는 ‘바이탈(vital) 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법 리스크다. 형사처벌에 수억원대 손해배상까지 물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법적 부담 완화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하고 형사처벌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관련 기사: 매일 의사 2명씩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됐다).

의료전문변호사로 수십년 째 활동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법원이 요구하는 임상의학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이같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를 평균으로 보는 의료감정도 법원의 ‘눈’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했다. 의료감정 상당수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교수)에 의해 수행되는데 평가 기준이 ‘통상의 의사’ 수준보다는 ‘교수’에 맞춰지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개원가와 대학병원은 제반 시설과 의료자원 수준이 다른데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된다고도 했다.

현 변호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의료감정을 하는 의사는 의료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곳이 지역 중소병원이라면 그 수준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결과를 다 알고 되짚어보면서 논문 쓰듯이 판단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의료 분야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려면 의료현실을 직시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의료 분야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려면 의료현실을 직시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 하는 원인 중 하나로 법적 부담을 꼽는다.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보는가.

관련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은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는 순간 엄청난 심적 부담을 갖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무죄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재판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직업에 회의감을 갖게 된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진료했는데 환자한테 고소당하고 피고인으로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이런 판결이 이어지면 어떤 의사가 필수의료 분야를 하려고 하겠는가.

-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사고로 의사를 기소하거나 형사처벌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확하게 비교할 만한 통계자료가 없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기소 및 유죄 인정 비율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법원이 요구하는 임상의학 수준을 너무 높게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의료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의료사고도 많았다. 하지만 의사들이 진료수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기에 의료사고로 인한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명백한 의료사고는 줄었다고 본다. 반면,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의료인들은 정해진 수가만 받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은 진료과목은 당연히 기피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필수의료 영역에서 의료인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충분한 지원이나 보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 법원이 임상의학 수준을 너무 높게 책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판단 근거 중 하나가 의료감정 결과다.

의료과실 여부는 임상 현실 수준에서 판단돼야 하고 그 기준은 ‘통상의 의사’다. 법원이 통상의 의사 수준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감정을 받는다. 그런데 의료감정 대부분이 대학병원 교수에게 맡겨지고 이들은 통상의 의사 수준이 아닌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또한 의료감정을 하는 의사들은 사건이 발생한 모든 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단계마다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의학자로서 당연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학병원 교수가 판단하는 의료 수준과 진료 당시 통상의 의사가 할 수 있었던 것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의료감정의사는 의료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곳이 지역 중소병원이라면 그 수준에서 인력과 시설·장비 등을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 결과를 다 알고 되짚어 보면서 논문 쓰듯이 판단하면 안된다.

- 그런 의미에서 법원이 임상의학 수준을 너무 높게 책정했다고 한 것인가.

물론 판사들이 의료감정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감정의가 (의료사고 발생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판사는 임상 의료 수준을 규범적으로 판단하기에 ‘현실이 그렇더라도 이 정도는 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판사가 임상 수준을 높게 책정하더라도 의료분쟁으로 이어지는 건수 자체가 적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법원이 ‘통상의 의사’ 수준에서 판단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현실을 봐야 한다. 환자 피해 구제를 위해 인과관계 입증을 완화하고 추정해 왔다. 그 결과 의사의 진료권이 침해되고 의료소송 위험이 높은 진료과는 아예 기피하는 상황이 됐다.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료과실 여부나 인과관계 판단은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환자 피해 구제를 위해 추정해서는 안된다. 엄격하게 판단한다면 유죄 판결이 쉽게 나올 수 없다.

- 설명의무 위반 관련 판결도 논란이다. 독감 치료제인 ‘페라미플루’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에 5억7,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러 가지로 논쟁거리가 많다. 법원은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부작용이기는 하지만 의약품 설명서에 주의 사항으로 기재돼 있기에 의사에게 이런 부작용도 지도·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의료계는 의약품 설명서에 기재된 모든 부작용과 주의 사항을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의료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문제는 의약품 부작용피해구제 사업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약사법은 의료사고의 경우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의약품 처방이나 투여 과정에서 의사 과실이 있거나 설명이 부족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외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 향후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현두륜 변호사는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로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혹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현두륜 변호사는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로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혹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민사로 과실 인정받고 형사로…처벌도 가혹해지고 있다

현 변호사는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로 의료과실에 형사책임을 묻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했다. 처벌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한 뒤 그 결과를 이용해 형사소송을 진행하는 게 대세로 자리 잡았다. 형사에 비해 민사소송은 의료진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횡경막 탈장을 조기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응급의학과 의사 사건이 그랬다. 이 의사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대법원도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응급실을 떠났다. 장폐색 환자를 빨리 수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외과 의사 사건도 민사소송이 먼저였다.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먼저 민사소송을 제기해 병원 과실 책임을 인정받은 다음 관련된 개별 의사들을 형사고소한 사건들이다.

- 의료사고 관련 재판이 형사책임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돼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의료과실이 명백하지 않으면 형사고소는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주로 협상을 위한 압박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수사기관 역시 의료사고에 대해 기소하는 비율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자들이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해서 그 결과에 따라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민사는 형사소송보다 의사의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민사소송에서 과실이 인정되면 그 판결문을 증거로 형사고소를 제기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민사 재판에서 과실이 인정됐기 때문에 기소하지 않을 수 없다.

- 형사 처벌 수위는 어떤가.

가혹해지고 있다. 최근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에서 의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법정 구속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는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 양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에서 과실이 인정돼도 피해자와 합의가 안 되거나 피고인이 범죄를 부인하면 법원은 양형기준에 따라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 사건도 이런 기준에 따라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거나 의사가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원은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키고 있다. 무분별한 법정구속은 의사들의 방어권을 심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 의사를 법정구속하면 그가 진료하는 환자들도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의사는 무조건 합의할 수밖에 없다.

-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처럼 처리한다는 것인가.

의료사고와 교통사고를 동일하게 보고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의료사고는 교통사고와 달리 과실과 인과관계에 관한 판단이 어렵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등은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의료사고는 그렇지 않다. 검사나 수술이 늦어서 환자가 사망했는지, 기저질환 때문에 상태가 나빠졌는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판례들을 보면 악결과는 모두 의료과실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너무 쉽게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판단한다.

또한 형사책임이 인정되면 일반적인 양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 교통사고 양형 기준을 의료사고에도 적용한다. 일반 업무와 동일하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양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는 전혀 다르다.

- 의료계는 필수의료 분야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가칭)을 제정해 형사책임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면 그로 인한 형사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이는 필수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이 인정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임상의료 수준을 너무 높게 책정하고 의료과실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을 너무 쉽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임상의료 현실에 따라 의료수준을 판단하고 의료과실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을 보다 과학적으로 한다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도 신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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