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암 걸렸던 성악가 심두석 교수…"방사선 치료 받으며 성대 단련"
세브란스병원 이창걸 교수 “암 완치, 과거 모든 일상으로 회복”
치료에 머물지 않고 ‘환자경험’ 높일이려는 고민…새치료법 만들어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창걸 교수는 "암의 완치는 환자가 과거의 모든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창걸 교수는 "암의 완치는 환자가 과거의 모든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성악가가 후두암 치료를 위해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의사에게 단순한 암 치료에 머무르지 않고 성악가라는 꿈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의사는 새로운 치료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가 과거의 모든 일상으로 회복하는 일이 암의 완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 2009년 후두암 초기였던 환자는 성악가로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지난 2009년 후두암 초기였던 성악가 심두석 전 국립 목포대 음악과 교수와 그를 치료한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창걸 교수의 이야기다.

이 교수는 28일 청년의사 주최로 일산 명지병원에서 열린 ‘HiPex 2022(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2, 하이펙스 2022)’에서 심 교수와 함께 주치의와 환자로 ‘암의 완치’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공유했다.

이 교수는 당시 성악가인 심 교수를 만나고 큰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초기 후두암으로 치료하면 90% 완치가 가능했지만, 성대를 써야 하는 성악가로서는 어떤 치료든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당시 도입된 고정밀 영상유도 암치료장비인 토모테라피(Tomo Therapy)로 종양이 있던 오른쪽 성대만 국소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의사였던 이 교수는 치료를 시작하며 “조마조마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통상적인 방사선 치료는 재발 가능성 때문에 후두 전체를 치료한다. 수술도 암 주변을 넉넉하게 떼 내는 게 원칙”이라며 “치료가 되더라도 성악가로서는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정밀 방사선 치료기가 도입돼 한 쪽 성대만 치료하면 성대 주변 방사선 치료를 줄여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한 번도 해본적 없었지만 성악가로서 의지가 컸던 분이라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했다.

환자인 심 교수에게도 새로운 치료는 모험이었다. 재능을 꽃피울 시기에 절망을 마주해야 했지만 성악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에게 방사선 양을 조금 줄이는 대신 치료 횟수를 늘리는 방안을 제안한 것도 심 교수였다.

당초 주 5회 총 35회 방사선 치료가 치료계획이었으나, 심 교수의 제안에 방사선 양을 조금 줄이는 대신 총 37회로 수정돼 치료가 시작됐다. 심 교수는 방사선 치료 시간은 단 4분이었지만 미동없이 숨죽여야 했던 그 시간이 “두렵고 떨렸다”고 했다.

치료가 시작되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수업은 말수가 적은 교과목을 택해야 했지만 후두암에 걸렸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알릴 수도 없었다. 대신 심 교수는 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성악가에게 후두암은 치명타다. 정신적으로 절망감도 컸지만 후두암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성악가였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며 “다르 사람들에게 후두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싫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방사선 치료 횟수를 더해갈수록 소리는 탁해졌지만 성대는 깨끗해졌다”며 “헬스장에서 체력단련을 했고 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려고 노력했다. 성대 균형이 맞지 않아 목이 쉬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매일 성대단련 훈련을 했다”고 했다.

치료도 성공적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몇 달 후 재발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던 시간도 5년이 흘러 심 교수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성악가로서 완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 교수가 심 교수의 독창회 초청장을 받은 것은 5년 후인 2019년이었다. 정확히 심 교수가 후두암 판정을 받은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심 교수는 지난 2019년 3월 슈베르트 탄생 222주년을 기념한 독창회 무대에 섰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이후 성악가로 무대에 다시 서겠다는 의지로 성대 단련 훈련을 10년간 지속한 결과였다. 당시 그의 나이 67세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후두암을 이겨낸 심두석 전 국립목포대 음악과 교수는 지난 28일 명지병원에서 열린 '하이펙스 2022'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감동을 안겼다. 
후두암을 이겨낸 심두석 전 국립목포대 음악과 교수는 지난 28일 명지병원에서 열린 '하이펙스 2022'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감동을 안겼다.

심 교수의 재기 무대를 현장에서 지켜 본 이 교수도 뭉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무대는 슈베르트 탄생 222주년을 기념해 ‘겨울나그네’를 포함한 슈베르트 3대 연가곡을 올리는 무대였다.

이날 심 교수는 독창회 2부를 시작하며 주치의였던 이 교수를 소개하기로 했는데 잔뜩 긴장한 심 교수가 이를 빠뜨린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교수는 이 에피소드를 청년의사가 주관하는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해 우수상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5년 완치 후 음성파일을 보내주셨다. 들어보니 슈베르트 가곡을 연습한 파일이었는데 이렇게 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잘 했지만 심 교수님이 생각하기에 독창회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는지 노력하고 있다고만 했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심 교수의 독창회를 보며 이 분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드릴 수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 기뻤다. 암 완치는 환자가 과거의 모든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치료법의 탄생은 환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주려는 의사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환자의 투병의지가 함께 결합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함께 HiPex 2022 무대에 선 심 교수를 향해 “잘 나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심 교수는 HiPex 2022 현장에서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부쳐’ 등을 불러 감동의 무대를 선물했다.

심 교수는 독일 빈(wein) 국립음대에서 리트(Lied)와 오라토리오(Oratorium)를 수학했다. 독일 정부의 학술교류(DAAD) 연구비로 뮌헨 국립음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목포대 생활과학예술체육대학장과 한국슈베르트협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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