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창걸 교수

7개월 전 지방 음악대학에서 근무하는 S교수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는 테너 성악가로서 비엔나음대에 유학을 하고 독일정부 연구비를 수혜하여 독일가곡 연구활동을 수행한 바 있고, 한국슈베르트협회장을 맡고 있는 저명한 음악인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슈베르트 탄생 222주년 기념 S교수 독창회 초청장이 들어있었다.

‘아 드디어 독창회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성대가 회복되었구나.’

나는 놀라움과 기쁨에 차서 초청장을 재차 보면서 가슴 졸였던 10년 전을 떠올렸다.

진료실에서 처음 만난 S교수는 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연구년을 맞아 비엔나음대에서 성악활동을 하던 중 목이 쉬어 대학병원을 방문해보니 성대 한쪽에 혹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단순 성대결절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이었다. 다행히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완치되지만 성악가로서의 삶은 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자신의 생애에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이런 후두암 1기인 경우 수술 없이 방사선치료만으로 완치율이 90% 이상이라 의사로서 환자에게 크게 걱정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는데, 환자가 성악가 혹은 가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대에 생긴 암은 완치가 되지만 후두 전체를 방사선치료하게 되어 고음을 내면 방사선을 받은 조직은 약해서 성대부종이 발생될 수가 있다. 따라서 대부분 일상 대화는 문제가 없지만 노래방에서 고음을 내면 바로 목이 쉬어버리는데 목소리가 생명인 성악가, 가수의 경우는 치명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방사선치료를 권유받고 나를 찾아온 S교수는 성악가로서의 목소리는 꼭 유지하고 싶어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 성악가로서의 삶은 어려울 것이며 그래도 방사선치료의 완치율은 90% 이상이고 일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것 아니냐며 설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반드시 목소리를 되찾아 다시 성악을 꼭 할 것입니다.”

그의 결의에 찬 말에 나는 며칠간의 시간을 갖고 혹 다른 좋은 치료법이 있는지 의학도서관 문헌을 찾아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문헌에는 특별한 새로운 치료법이 없었고 특히 방사선치료 후 고음역대 음성을 보존 혹은 재활했다는 보고는 전무했다. 나는 방사선치료 범위를 후두 전체가 아닌 암이 발생한 한쪽 성대에만 국한하여 아주 작은 치료범위로 치료하는 것이 가능할지 처음으로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반대편 성대와 성대 뒤쪽 부위인 모뿔연골(arytenoid cartilage)부위를 방사선치료부위에서 빼준다면 성대부종의 정도가 매우 경미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런 치료법은 당시 병원에 도입된 첨단 방사선치료장비가 있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는데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한 가지는 암이 있는 쪽 성대를 치료하면 고선량의 방사선을 받게 되고 이 부위는 성대부종을 피할 수 없는데 나머지를 충분히 제외해도 과연 성악가로서 활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다른 한 가지는 이렇게 작은 범위로 치료하여 혹 재발이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는 점이었다. 성악가로서 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나는 한쪽 성대에만 국한하여 정밀 방사선치료를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기로 했다. 당시 비급여치료여서 상당한 치료비가 들었지만 목소리를 살린다는 절박함에 S교수는 치료를 받아들였다.

약 6주간, 주 5일 매일 치료를 하면서 쉰 목소리는 점차 호전되었고 치료에 따른 일반적인 부작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사선치료 후 한 달째 후두내시경 상에 암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후두 안은 방사선치료로 인한 염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S교수는 너무 만족스러워 했고 빠른 시간 내 음성재활에 돌입하겠노라고 하였다. 치료 후 6개월마다 경과 관찰을 하였고, S교수의 목소리는 고음대가 점차 호전은 되었지만 전문 성악을 할 만큼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그는 다소 실망하였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성악 지도와 합창지휘를 주로하면서 성대 재활을 계속하였다.

한번은 기회가 되어 비엔나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았는데 그 의사가 방사선치료한 것이 맞느냐며 후두 내부가 치료 흔적이 없이 너무 깨끗해서 어떻게 치료한 것인지 물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심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작은 범위로 치료한 것 때문에 재발이 혹 나타날까 걱정되었다.

드디어 치료 후 5년째 암재발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S교수는 나에게 본인이 녹음한 슈베르트곡 한 곡을 mp3 파일로 보내왔다. 성악에 무지한 나였지만 들어보니 너무 훌륭하게 곡을 소화해내서 감동을 받았고 내가 선택한 치료법이 어느 정도 그 효과를 발휘했다는 자부심에 내심 뿌듯하였다. 나는 S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보내준 곡 잘 들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물어보았다.

“이제 독창회까지 할 정도로 회복되신 건가요?”

“아닙니다. 전문가로서 테너 독창회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요. 해마다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더 음성재활에 매진해서 독창회를 하게 되는 날 선생님께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그 때 이후 4년 반이 흘러 S교수 일을 거의 잊고 지내던 2019년 4월 초 드디어 S교수의 독창회 초청장이 날아온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악가의 노래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귀 기울였던 어린 소년은 성악가로 성장했습니다. 전문 독일가곡 성악가로 명성을 쌓던 중 성대암 판정을 받습니다. 10여 년의 오랜 투병생활은 좌절의 시간이었습니다. 치료가 되더라도 더 이상 성악가로서 무대에서 연주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는 재활훈련을 통해 오늘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그가 보낸 초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뭉클해졌다.

‘드디어 그가 해냈구나!’

인간승리, 그는 성악가로서 치명적인 후두암을 극복하고 10년간 음성재활훈련을 통해 드디어 재기의 독창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평일 저녁 지방에서 하는 공연이었지만 나는 진료를 서둘러 마치고 기차편으로 독창회에 참석하였다. S교수가 마련해준 특별석에 앉아 나는 1부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관객들도 10년만의 독창회를 갖는 S교수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었다. 첫 곡은 약간 거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다음 곡부터는 아주 훌륭하게 잘 소화해 내었다. 2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에 무대 뒤로 가서 S교수를 반갑게 만나 축하의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오늘날 이렇게 독창회를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2부 공연시작 전에 관객들에게 인사말씀 드릴 때 꼭 언급토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치료는 했지만 S교수님과 가족들 주변 지인들이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을까요? 그리고 지난 10년간 오직 오늘을 위해 음성재활에 매진해 오신 그 결과 아니겠습니까? 정말 수고하셨고 제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함께 다정한 사진을 찍고 다시 나는 객석으로 돌아왔다. 2부 무대가 열리고 S교수는 감격에 겨워 인사말을 하였고 이 독창회에 참석하여준 중요 귀빈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감사의 박수를 유도하였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나를 호명하면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S교수는 마지막에 그만 주치의에 대한 소개를 깜박하고 말았고 2부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잠시 후, 10년을 기다렸던 무대에 선다는 떨림 그리고 과연 후두암을 이기고 성악가로서 재평가 받는다는 두려움에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상황이 영화처럼 되진 않았지만 이런 점에서 10년만의 독창회는 더 인간적인 드라마라고 생각되었다.

슈베르트 전문 테너가 부르는 ‘아름다운 물방아간 아가씨, 겨울나그네, 백조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의사로서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았다. 귀경시간이 임박하여 나는 마지막 곡을 못 듣고 서둘러 역으로 나서야 했고 문자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 다음날 S교수는 전화를 걸어 큰 실수를 했다며 미안해하였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다음 기회가 되면 그때 인사를 하면 될 것이고 정말 감동적인 독창회에 초대해주어 감사했다고 전했다.

내가 방사선종양학과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암을 수술 없이 치료하고 장기를 보존하여 기능을 살리는 의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렇게 한 성악가의 암을 완치시키고 다시 성악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2019년은 슈베르트 탄생 222주년으로 뜻깊은 해이자 S교수는 성악가로 다시 태어난 해이다. 또한 라디오에서 나오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고 성악가가 된 S교수처럼 치료 후 그가 부르는 가곡에 매료되어 나도 슈베르트 매니아가 된 해이기도 하다.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슈베르트는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음악의 천재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친근감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그의 가곡을 듣고 성악가의 꿈을 이룬 S교수와의 만남은 나와 슈베르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222년 전에 태어난 슈베르트가 요즘 시대였다면 항생제 주사를 맞고 벌떡 일어나 그의 천재적 능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를 살리진 못해도 그로 인해 성악가가 된 S교수의 목소리를 요절 시킬 수는 없었다. 방사선종양학과를 전공하면서 배운 두경부암 치료의 원칙은 암을 완전히 제거하고 동시에 해당 장기를 최대한 살려서 그 기능을 보존하여 삶의 현장으로 다시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통상적인 방사선치료로 암을 완치시킬 수 있고 음성도 보전할 수 있으나 성악가의 삶은 접어야하는 한계가 있었다.

성악이 전부인 그에게 그 일을 포기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었고, 이를 계기로 암이 있는 한쪽 성대에만 아주 작게 방사선치료를 시도한 것인데 재발없이 목소리의 질이 훨씬 좋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 후부터 초기 성대암환자들에게 적용한 결과, 기존 치료처럼 높은 완치율과 동시에 성대 보존력이 뛰어난 것으로 판명이 나서 권위 있는 두경부암 잡지에 논문 게재 승인을 받게 되었다. 성악가 S교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기존 방식대로 치료를 계속해 왔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치료법의 탄생은 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고 새로운 신약의 수년간의 임상연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이전에 환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주려는 의사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그리고 환자의 투병의지가 함께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10년간 음성재활을 통해 부활한 S교수께 감사드리고 부족한 글을 우수상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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