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교수 “행위별 수가제 진료비 관리 한계 존재, 개편 必”
의협 윤용선 부위원장 “지불제도 개편보다 적정 수가 보장부터”
복지부 이중규 국장 “지불제도 문제보다 병상 과잉 문제 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기존 행위별 수가제 전면 개편과 함께 전체 진료비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정부는 행위별 수가제 개편보다는 병상 과잉 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는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가 개최한 ‘건강보험 재정 균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행위별 수가제는 가격과 진료량을 모두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전체적인 지불제도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발제를 통해 건강보험이 도입된 1989년 이후 1인당 건강보험 급여비는 37.4% 증가했고 보험료 부담은 2배 넘게 늘었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보장 혜택은 제자리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외래 진료 이용률은 OECD 평균을 크게 웃돈다.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17.2회로, OECD 평균인 6.8회보다 약 2.5배에 달하며, 국민의료비도 GDP 대비 수준에서 OECD 평균을 초과했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61%로, OECD 평균인 73%보다 12%p 낮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민간공급자가 주도하는 보건의료체계에서 행위별 수가제를 기반으로 하는 의료비 지불제도가 재정 불안정성과 보건의료체계 비효율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총 진료비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불제도 개편 우선순위로 비급여 관리 시스템 확립을 제안했다. 건강보험 환자에게 시술한 모든 비급여 진료비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목록정비, 명칭과 코드 표준화, 표준수가 설정, 신규 비급여 사전 승인 등 관리 체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수가와 진료량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총 진료비 관리 시스템 도입도 함께 제안했다.
그는 “보장률 확대와 보험료 인상이 반복되며 재정 지출도 늘어나는 구조 속에서 비급여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지난 수십 년 간 반복돼 온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며 “비급여를 허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되 관리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총 진료비는 국민 부담 능력, GDP나 소비자 물가 상승 지수 등 거시경제 지표와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급여 관리 시스템을 포함해 총 진료비를 설정하고 부문·기관·월별 관리를 통해 병원, 의원, 한방 의료기관, 약국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선임연구위원도 “행위별 수가제로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신 위원은 행위별 수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가치수가 점수 왜곡’이라고 지적하며 “환산지수 체계를 없애는 게 답”이라고 주장했다.
신 위원은 “수술이나 처치 보상은 적고 검사 보상이 많이 되는 구조인데 점점 더 왜곡이 심화시키고 있는 게 환산지수”라며 “환산지수가 매년 평균적으로 올라가다보니 검사 영역도 매년 점수가 올라가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신 위원은 행위별 수가제를 대안할 지불방안으로 포괄수가제와 일당정액제, 성과기반 단위 보상 등을 제시했다.
신 위원은 “의료기관 행위가 성과를 냈을 때 보상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는 이유가 현행 법 체계에 있다”며 “현행법은 행위별 수가제에서만 보상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시범사업을 통해 대안을 실험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을 바꿔서라도 대안적 지불 제도를 통해 성과를 많이 내는 기관들을 더 보상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 “지불제도 문제 아니라 저수가와 정책 실패 원인”
의료계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 원인을 단순히 행위별 수가제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의료비 상승 원인은 ‘저수가’와 ‘잘못된 의료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지불보상제도TF 윤용선 부위원장은 “의료비 상승 원인을 행위별 수가제에서 찾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수가가 원가와 적정 이윤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불 제도를 포괄수가제나 주치의제, 일당제 등으로 바꿔도 공급자 행위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적정 수가 보장이 전제돼야 행위량 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부위원장은 “지불제도를 개편하려면 우선 적정 수가를 보장 돼야 한다. 또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을 했음에도 의료비가 상승했다면 이에 대해 정책 입안자들이 책임져야 한다. 의료 수요자의 행위량 조절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불제도 개편만으로 재정 절감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 “복합 지불제도 검토…병상 감축 우선 추진”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지불제도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단일 지불 방식이 아닌 복합적 방식의 지불 제도를 적용해 진료비를 관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병상 과잉 문제를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원인으로 보고 공급 구조를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이중규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현재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이 약 30조원 규모다. 일시적으로 짧은 기간 사용 가능한 수준”이라며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 내부에서도 다소 비관적인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병상 자체가 의료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지불제도 문제도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 병상이 과잉이라고 보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을 하면서도 4,000병상 정도를 줄였다. 앞으로 정책을 추진할 때도 가급적 병상을 줄이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지불 제도를 묶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지불제도 개편 시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 의료이용 행태 변화도 살펴야 한다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급자 관련 제도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국민 의료 행태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 이용이 너무 자유롭게 돼 있는 상황에서 그걸 제한하는 순간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 의료 행태를 바꾸는 일은 현재로선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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