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 추진됐던 지난 2020년, 의사 단체행동은 전공의들이 주도했다. 여기에 의대생들이 가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 문을 열고 대한의사협회가 닫았다.
이번에도 전공의가 앞장서고 의대생들이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의협은 지난해 11월 범의료계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총파업까지 고려한 대정부 투쟁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하겠다고 했다. 이어 12월에는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 온라인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투쟁 전략’이라며 한 달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협 범대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는 임시대의원총회도 열렸다.
의협이 주춤하는 사이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조직을 추스르고 있다. 대전협은 전공의 86%가 단체행동에 동참하겠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의대협 비상대책위원회와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전공의 4,200여명이 있는 수련병원 55곳에서 진행됐다. 대전협은 전체 전공의 대상 단체행동 참여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하면 “사직서를 제출하자”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설 연휴 이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한다는 보도에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2~3월은 대학병원 내 전공의 인력 이동이 많다. 숙련된 3~4년차 전공의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수련을 끝내고 아직 서툰 인턴과 신입 전공의가 근무를 시작한다. 이 시기 다른 전공의들이 단체로 쉬거나 사직하면 그 파장은 더 클 수 있다. 의대생들은 동맹휴학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대응도 전공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복지부는 대전협이 단체행동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법적 조치까지 언급했다. 이어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통해 수련병원별 전공의 대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도 의협은 대전협이 단체행동을 결정하면 한 달 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정부 투쟁 수위를 정하겠다고 한다. 의정 협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도 좁아 보인다.
결국 일련의 과정이 3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대중의 비난은 단체행동을 주도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집중됐다. 그 여파로 젊은 의사 조직은 위축됐다. 의대협은 3년째 수장을 뽑지 못하고 있고 대전협도 어렵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후배 의사들이 앞장서고 선배 의사들이 뒤따르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전공의 파업이 파급력이 더 크다는 이유로 ‘투쟁 전략’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선배들이 먼저 나서주길 기대했을 전공의나 의대생들이 결국 다시 나서고 의료계는 이를 기폭제로 여기고 있다. 이번 의대 증원 정국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총알받이’는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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