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가 개입된 정책의 결과는 ‘혼돈’이다. 하루아침에 결정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발표된 이 정책은 정권의 기대와는 달리 득표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의료체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다.1년 6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은 의료 현장을 파편화시켰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자 병동과 수술실 등 현장 곳곳에는 공백이 생겼다. 진료지원 인력(PA)으로 그 자리를 메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응급실 셧다운 소식이 들렸고 상급종합병원들은 중증·고난도 수술을
전공의·의대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의정 대화를 재개한 대한의사협회는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마련됐다”고 했다. 그들이 돌아오면 한숨 돌리겠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밀어붙인 정책은 오히려 필수과를 전공하려던 의사들이 떠나는 결과를 낳았다. 의정 갈등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필수과 전공의 복귀율은 낮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렵게 확보한 필수과 전공의들이 이렇게 사라진다.복귀한 이후도 문제다. 내과와 외과, 소아청소년과는 분과 전문의 제도를 기반으로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의대 정원이 다시 3,058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2,000명 증원’이 불러온 의정 갈등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의료계 내부 균열도 깊어졌다. 특히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교수에 대한 반감이 크다. 스승과 제자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장면도 펼쳐진다.교수는 어느새 ‘씹수’가 됐다. ‘중간착취자’라고 부르는 건 이제 ‘점잖은 비판’으로 보일 정도다. 대학병원에 남아 있는 교수는 ‘공공의 적’이 됐다.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의대생들이 휴학했을 때 교수들도 함께 대학병원을 나왔으면 이번 사태가 조기 해결됐을 거라는 말도 한다.
기승전‘수가’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의료계와 의료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다 보면 ‘수가 인상’으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결국 원하는 게 수가 인상 아니냐는 비판적 의미가 담겼다.하지만 건강보험제도 기반으로 운영되는 한국 의료에서 수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수가가 책정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아무리 좋아도’ 환자에게 제공하기 힘들다. 섣불리 비급여로 책정해 제공했다가는 환수되기 십상이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고 치료 효과가 좋아도 수가가 없으면 그 혜택을 받는 환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대표적인 사례가 중증환자 재활치료다.
“망했다.” 지난해 2월 이후 의료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을, 의대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정부가 내놓은 그 어떤 ‘유화책’도 소용없다. 결국 올해는 신규 의사가 10분의 1로, 신규 전문의는 5분의 1 이하로 급감한다.의사가 부족하다며 내놓은 정책으로 인해 의료 현장 인력난은 심화됐다. ‘지친’ 교수와 전임의도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다. ‘낙수과’로 전락한 필수의료 분야는 더 심각하다. ‘서전(surgeon )’도, 마취할 의사도 부족
제43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서 김택우 후보가 당선되자 의료계에서는 ‘세대교체’라는 말이 나온다. 1964년생인 김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직전 회장은 1970년생이었다. 이번 의협 회장 선거판을 사직 전공의를 주축으로 한 젊은 의사들이 좌우했기 때문이다. ‘전공의’가 중심이 됐던 의협 회장 선거는 없었다.임현택 전 회장이 취임 6개월 만에 불신임(탄핵)된 데에도 전공의들과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공개적으로 임 전 회장의 불신임을 촉구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이어 구성된 의협 비상대
‘교수 1인당 학생 8명.’ 정부가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67%나 증원해도 교육 질 저하가 없다고 강조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법정 기준이다.교육부 오석환 차관은 지난 4일 긴급 브리핑에서 의대 40곳의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평균 1.6명이며 가장 높은 곳도 4.8명으로 법정 기준인 ‘교수 1인당 학생 8명’을 “여유 있게 충족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이같은 인식은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법정 기준을 근거로 “3,000~5,000명 증원해도 평균 학생 수는
‘회의록은 없지만 회의 내용 요약본은 있다. 하지만 요약본도, 위원 명단도 공개할 수 없다.’논란이 된 의대 학생정원 배정위원회 운영 방식에 대한 교육부 입장이다. 배정위는 증원된 의대 정원 2,000명을 32개 대학에 배정했다.대학별 정원 배정이 끝나고 뒤늦게 배정위에 충북도청 소속 공무원이 참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충북은 의대 정원이 가장 많이 증원된 지역으로 211명이 늘었다. 충북의대는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결국 ‘깜깜이 배정’, ‘밀실야합’ 논란이 일었다. 그래도 교육부는 위원 명단 공개를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 추진됐던 지난 2020년, 의사 단체행동은 전공의들이 주도했다. 여기에 의대생들이 가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 문을 열고 대한의사협회가 닫았다.이번에도 전공의가 앞장서고 의대생들이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의협은 지난해 11월 범의료계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총파업까지 고려한 대정부 투쟁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하겠다고 했다. 이어 12월에는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 온라인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투쟁 전략’이라며 한 달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협
해외에서 보는 한국 의료는 ‘우수’하다.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타티스타(Statista)와 함께 선정해 발표하는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 세계 최고 병원에 많은 병원이 이름을 올린 나라 중 하나다. 내분비내과, 종양학, 비뇨의학, 소화기내과 등 임상 분야별로 세분화하면 세계 TOP10 안에 드는 한국 병원들도 있다. 뉴스위크는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병원(World’s Best Smart Hospitals 2024)’을 발표하면서 미국 메이오 클리닉, 클리블랜드 클
“의사들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먹거리 찾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대한한의사협회 홍주의 회장이 필수의료 공백과 응급의료전달체계 붕괴 원인을 ‘의사 탓’으로 돌리며 한 말이다. 그러면서 한의사 역할을 확대하면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재건할 수 있다”고 했다.31일 ‘한의사의 필수의료 참여와 한의약의 역할 확대 방안’을 주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한의협은 이 토론회를 주관했다. 한의계는 이날 토론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보다 이미 배출된 의료인인 한의사를 활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홍 회장의 발언도 그런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에 앞장 서 온 의료인들이나 병원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병상을 비우고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해온 공공병원들은 직원에게 줄 월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영 상태가 악화됐다. 정부가 주는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은 끊겼지만 진료실적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보낸 환자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코로나19 피해가 컸던 요양병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원팀’이다. 서로 손발을 맞추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이들이 ‘간호법’ 등장 이후 병원 밖에서 ‘원수’처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그 중심엔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가 있다.현재 간협 홈페이지에는 ‘의사가 아니라 장례전문가, 낙선운동지도사, 약자 코스프레 전문가, 파업지도사, 무관심 지도사, 연기 지도사로 부르자’는 문구가 캠페인처럼 메인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국민 여러분, 의사 집단이기주의에 회초리를 들어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서비스에 찬성한다.” 대한의사협회 김종민 보험이사가 지난 14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기존 의협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엄밀히 말하면 의료계는 환자 편의를 위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자체에 반대한 적이 없다.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주체를 의료기관으로 강제하는 방안에 반대해 왔다. 민간보험사가 해야 할 실손보험 청구 업무를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넘기고 의료기관에도 행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문제라는 입장이다.김 이사도 국회 토론회에서 “의료계는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선거가 높은 투표율 속에 끝났다. 강민구 후보가 71%, 주예찬 후보가 29%를 각각 득표했다. 두 번째 출마한 주예찬 후보는 지난해(42.7%)보다 훨씬 낮은 지지를 받았다.‘코로나19 백신에서 미확인 생명체가 발견됐다’거나 ‘팍스로비드 안에 마이크로칩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백신 접종 전면중단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에도 참여하고 있는 소규모 의사 단체(코로나진실규명의사회, 코진의)에서 주 후보가 활동한 이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직후 대한간호협회 회관 앞에서 원색적 문
“과학 방역이 아니라 ‘침대 방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의료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과학 방역’을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에 빗대어 그 실체가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때부터 전문가들은 재유행을 예고했다. 그리고 재유행이 시작됐다. 두 달 가량 대응체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재유행이 시작된 지금, 현장은 더 혼란스럽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다시 코로나19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격이 됐다. 대한의사협회가 처한 형국이다.의협은 8일 오전 10시 30분경 용산임시회관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예비후보와 간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홍 후보는 의료계가 반발하는 ‘수술실 CCTV 설치법’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었다.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홍 후보는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유는 환자 입장에서 의료과실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의료과실 입증
정치가 개입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대책은 세우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속항원검사를 기반으로 한 자가검사키트다. 민감도가 낮아 선별검사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전문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가검사키트가 도입된 배경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지난해 12월 신속항원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 150여곳에 즉각 도입됐다. 당시에도 위음성(가짜음성)을 걸러낼 방법은 없었다. 정치권은 한 발 더 나가 신속항원진단키트를 자가
시작부터 어수선했던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는 현재 의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지난 28일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의협 제71차 정총은 국민의례가 끝난 뒤 애국가 음악이 나오고 참석하지도 않은 내빈이 참석자로 소개되는 등 어수선하게 시작했다.이날 정총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자유한국당 신상진·이완영·박인숙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윤일규·정춘숙 의원,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었다. 하지만 자한당 윤종필 의원, 민주당 신동근·김병기 의원도 참석자로 소개됐다.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도 이날 참석하지 않았지만 참석자
직역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 각 단체의 현안을 해결해 주겠다는 게 단골 멘트다.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도 마찬가지였다. 정총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간무협이 법정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 법정단체화는 간무협이 올해 사활을 건 사안이다.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좀 달랐다. 단상에 오른 오 의원이 한 말은 ‘예상 밖’이었다. 오 의원은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