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전 의원, 의정활동 8년 경험 살려 의협 회장 도전
"의협 발판 삼아 국회 가려는 '의협 사유화 세력'에도 책임"
국회의원으로 8년을 지내고 돌아온 의료 현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아픈 곳이 발견될 때마다 “일회용 반창고만 붙여 놨던” 의료시스템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바이탈(Vital)을 다루는 과뿐만 기피하는 게 아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려는 의사 자체가 줄고 있다. 위험 부담이 큰 중증 환자들이 많은 대학병원도 ‘기피 대상’이 됐다.
박인숙 전 의원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제42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정치가 한국 의료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 모든 문제를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게 박 전 의원의 생각이다. 국회의원 출신 의협 회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의정활동 8년’의 경험을 살려 “한국 의료를 다시 살리겠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5일 서울역 인근에서 ‘의권 강화’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의협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출신 의협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자신했다.
박 전 의원은 한국 의료 현실을 ‘동전 진료, 주차권 진료’라고 표현했다. “보여주기식 정책만 남발”하면서 “소아청소년 진료비는 껌 값 수준의 600원짜리 동전 진료, 주차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주차권 진료가 돼 버렸다”고 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프레임을 씌워 악마화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의사 때리기는 심심풀이 땅콩이 돼 버렸고 오랜 기간 전문성을 기른 의사들은 광대가 돼 버렸다”며 정치권이나 정부뿐만 아니라 “의협을 발판 삼아 국회로 가고자 하는 ‘의협 사유화 세력”에 그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의 정치세력화라고 하면서 머리 띠 두르고, 구호 외치고, 단체사진 찍는 행위는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왜곡된 한국의료를 바꾸려면 “의사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의협은 “의사 회원들이 외면하는, 존재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단체가 됐다”고 꼬집었다.
- 그렇다면 의협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말도 안되는 공무원 갑질에 대한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대응 시스템을 의협이 갖추고 회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민원을 모아 갑질 근절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더 이상 악인으로, 또 욕심쟁이로 소모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점은 젊은 차세대 의사 리더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들이 후에 정계, 국회, 고위공무원, 산업계, 언론계 등에서 보건의료계 리더로 진출하도록 적극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 의협 회장 선거가 시작되면 더 구체적으로 말하겠다.
- 8년간 의정활동을 해온 국회의원 출신을 강점으로 꼽았다.
의료제도가 바뀌려면 결국 법이 바뀌어야 한다. 법을 바꾸려면 정부와 국회를 움직여야 한다. 정부와 국회를 움직이게 하는 노하우를 알고 인맥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자신 있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계가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8년간 활동해 보니 알겠더라. 의사 출신 국회의원 한두 명 더 배출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국회의원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박 전 의원은 의협 회장 선거가 본격화되면 기존 의협 회장 또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정책들을 더 많이 공개하겠다고 자신했다. 말만 하는 의협 회장이 아닌,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의협 회장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경험이 다르면 능력도 다르다”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서울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소아심장 분야 국내 1인자로 불렸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베일러의대(Baylor College of Medicine) 부속병원인 텍사스어린이병원(Texas Children's Hospital)에서 소아심장과 전임의, 교수로 15년을 재직했다. 지난 1989년 귀국해 그해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여성 최초로 울산의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