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모든 수단과 방법 동원하겠다" 반발
"피해자 존재하는데도 위해 가능성 무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14일 한의사도 초음파 기기 등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14일 한의사도 초음파 기기 등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반발했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사법부 판결에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4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뒤집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새로운 판단 기준'에 따라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따랐다.

의료계는 반발했다.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이를 간과하고 보건위생상 위해 가능성까지 무시한 불합리한 판결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선고 당일 입장문을 내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판결"이라면서 "현행 형사소송 절차에서 허용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법부 판단이 올바르게 다시 내려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의협은 "의료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의료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방법을 필요에 따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현대의료기기인 초음파 진단기기는 판독과 진단을 아우르므로 잘못 사용하면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의협은 "이 사건은 한의사가 68회에 걸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도 자궁내막암 발병 사실을 제떄 진단하지 못한 게 핵심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명백한 사실마저 묵과했다"며 "앞으로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보건의료전문가단체로서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처벌하지 않은 이번 판결이 "무면허 운전 정당화와 똑같다"고 비판했다.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판결"이라면서 "환자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명백한 결과가 있는데도 처벌하기 곤란하다니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자격(면허) 없는 사람이 몰래 한 행위가 문제 없었으니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다고 한다. 무면허 운전자가 차 몇 번 몰아보고 사고 안 났으니 모든 무면허 운전자 운전이 괜찮다는 말을 사법부가 하고 있다"고 했다.

한의계가 이번 판결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나 최근 면허 관련 판결을 이용해 의과 영역을 침해하려는 시도도 중단하라고 했다.

김 회장은 "최근 한방이 필수의료를 맡겠다고 하는데 검사와 진단은 한다고 해도 수술·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 셈인지 묻고 싶다. 즉각적인 처치가 불가능한데 진단만 따로 떼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근 사법부 판단은 결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급여화를 허가하지 않았다. 판결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의과 영역을 침해하려는 시도는 그만큼 (한의학이) 불완전하다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학계 "위험 줄이고자 전문성 강조"…의료일원화 필요성도 제기

의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임원인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이번 판결이 "국민 건강이라는 가장 단순한 명제를 등한시했다"며 "앞으로 이번 사건 피해자(환자)처럼 유사 피해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최근 의료계에서 진단이 늦었다는 이유로 전문의에게 고액 배상을 명령한 판결이 나왔다. 이번 사건을 동일 선상에 두고 보면 한의학적 차원에서 보조 진단 수단으로 사용하니 문제없다는 결정은 (논리와 형평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의계가 현대 의료기기를 "단지 한의학 진료의 신뢰 확보 차원에서 이용"해도 문제라고 했다.

홍 교수는 "한의원이 초음파 검사를 한다고 명시하면 환자는 이를 믿고 이용한다. 오진과 진단 지연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의학 진료를 받고 각종 약재를 처방받게 된다"며 "이런 행위 자체가 국민 건강에 지대한 위협이다. 앞으로 유사한 피해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영상의학회 황성일 의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는 한의계가 주장하는 "초음파는 특정 질환을 찾기 위한 보조 진단 수단"이라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사법부가 이를 별다른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했다.

황 이사는 "초음파는 본인이 원하는 특정 질환만 찾아낼 수 없다. 초음파 진단은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이 함께 나온다. 그래서 훈련된 전문의가 판독해야 하고 이 때문에 의료인이 수많은 수련을 거친다"고 했다.

황 이사는 "어군 탐지기를 예로 들지만 특정 목적과 목표가 설정된 기기와 초음파 진단기기는 다르다. 양성과 음성, 위양성과 위음성이라는 결과가 모두 나올 수 있다"며 "위험을 줄이고자 전문성을 강조하는데 단순히 의사가 독점하려는 시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면허 체계에 사법부가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황 이사는 "면허 관련 사법부 판결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유지한 의료 질서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선택이 사법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고 했다.

다만 "의학계나 정부가 (이원화 면허 체계에 대한) 교통정리를 못 한 부분도 있다. 50년, 60년간 방치한 제도적 모순을 결국 사법부가 강제적으로 정리한 셈"이라면서 "앞으로 의학계가 더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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