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에 "진료 공백" 우려
대전협 "인력 부족, 수련 격차 해소 함께 가야"
"햇볕 강하면 그림자 커져"…사회적 협의 거쳐야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 추진에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전공의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고 호소하지만 전공의가 퇴근하면 대책이 없어 수련병원은 진료 위축을 우려한다(관련 기사: 전공의 연속근무 제한에 수련병원 '전전긍긍'…"병원 안 돌아간다").
이런 우려는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도 나왔다. 지난 15일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 세선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위원장인 고려대구로병원 신정호 교수는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이 수련병원이나 전문과 쏠림 현상을 부채질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전공의가 많은 병원은 근무 시간을 맞추지만 부족한 병원은 맞추지 못한다. 그러면 전공의 쏠림 현상을 더 심해진다. 전공의가 메우지 못하는 곳은 이제 펠로우가 메워야 하고 그럼 그 병원은 펠로우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비뇨의학과는 정원을 제한해 반등했지만 산부인과는 당직 때문에 정원 감축이 어렵다"며 "24시간 당직이 필요한 과는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우려 이해하지만 열악한 환경 언제까지 전공의가 부담해야 하나"
젊은 의사들도 이런 우려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의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쳐둔 채 언제까지 전공의가 그 짐을 부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 세션 다음날인 지난 16일 '전공의 수련 교육의 현재와 미래' 세션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신유경 전공의실태조사위원장은 근무 시간 단축이 "현재 보건의료 체계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과도한 요구로 들릴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몇 년 전 전공의 수련환경이 정책적 문제로 대두됐을 때 국가와 의료기관이 책임지고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전공의는 피교육자고 일차적 목적은 수련이지 의료 서비스 제공이 아니다. 근무 시간 단축이 필연적으로 수련 질을 저하하고 환자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면서 "이는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사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으로 특정 수련병원이나 전문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면 "국가가 정책적 차원에서 지원해야지 큰 병원으로 쏠리니까 근무 시간을 단축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고 했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인력 문제를 전공의 부족으로만 읽지 말고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대전협 강민구 회장은 쏠림 현상을 지적하기 전에 병원 수련환경 격차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대전협은 수련병원 권역별 통폐합으로 수련 질 표준화를 주장해 왔다.
강 회장은 "근무 시간이 단축되면 수련 환경이나 인력 현황이 열악할수록 대체 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전국 수련병원 간 수련 환경 격차가 큰 상황에서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적절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지금 전국 40개 의과대학과 240개 수련병원이 모두 적정한 교육·수련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전공의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병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서 수련병원이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질은 어느 수준인지, 수련병원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햇볕 강하면 그림자 커진다'…사회적 협의로 부작용 최소화해야
의학계는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이 가져오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대전협 임원을 지낸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새롬 교수는 "전공의가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필수 인력인 상황에서 노동 환경 개선 조치는 수도권에 무조건 유리하다"며 "더 취약한 병원과 지역의 의료 공백은 '설계상의 위해'"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미 간호 분야도 가산 제도 도입으로 간호인력 이동 현상이 일어났다"며 "더 양질의 수련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공의가 쏠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지받기 위해서는 "공적 가치와 연결해 정부와 사회에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는 국가와 전문가 두 집단만 존재하지 않는다. 전공의들은 세금과 보험료로 운영하는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공통의 이익을 강조해야 한다"며 "아울러 다른 직종이나 업계에서 힘들게 일하고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와 연대해 국가적 정치·경제 문제로 다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의학회 박정율 부회장(고려의대)은 "햇볕이 강하면 그림자가 더 커지는 곳도 있다"면서 의학회 차원에서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 수련환경 개선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박 부회장은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은 KMA POLICY 안건으로도 제안됐고 앞으로 대한의사협회 주요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충분히 협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한 내용이 정부의 수련·교육 환경 개선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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