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원, 인턴 수련과정 전면 개편 필요성 제기
2년제로 바꾼 일본, 교육비로 1000억 이상 지원
“남의 자식 취급하는 인턴, 차라리 폐지하자”
“의사 중에서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자”를 양성하는 제도로 전락한 인턴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인턴제 폐지를 추진했던 의학계는 일본과 영국처럼 일차진료의사를 양성하는 2년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인턴 수련교육 과정 2년을 마쳐야 '진료면허'를 취득해 개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16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열린 대한의사학회 학술대회에서 ‘기초의학교육에서 졸업 후 의학교육으로의 Transition: 인턴 수련교육’ 세션을 진행하고 인턴제 개편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개편 방향으로 제안된 안은 ‘인턴 2년제’다. 영국과 호주, 일본처럼 일차진료의사를 양성하는 2년 과정으로 개편하자는 것이다.
영국은 의대를 졸업하면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가 주관하는 파운데이션 프로그램(Foundation progran)을 2년간 의무적으로 수련해야 한다.
지난 1968년 인턴제를 폐지했던 일본은 2004년 이를 다시 부활시켜 2년 동안 임상 수련(Clinical training)을 받도록 했다. 의대를 졸업해도 임상 경험이 부족해 일차진료의사로서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는 게 일본판 인턴제인 ‘임상연수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특히 일본은 임상 수련에 드는 비용을 후생노동성이 보조하며 한해 예산만 2019년 기준 110억엔(약 1,000억원)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인턴 수련교육비로 연간 1000억원 이상 지원
의평원 이선우 졸업후교육위원장(충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영국과 일본 인턴제도를 소개하며 우리나라도 인턴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비용 지원이 필수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인턴 수련비용으로 한해 110억엔을 지원한다. 인턴 월급이 아니라 수련교육을 담당하는 지도전문의에 대한 교육비다. 시설과 장비에 대해서는 따로 또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고령사회로 노인 질병 특성상 동반질환이 많아 의대를 졸업해도 충분한 진료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2년 임상 수련을 의무화했다”며 “특이하게도 2년차 때 지역의료를 배우기 위해 도서·벽지 소재 의료기관, 진료소 등을 선택해 연수를 받는다. 병원선을 타고 낙도를 가기도 한다. 선택연수로 보건의료행정을 배우기도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 인턴 수련이 역량중심, 성과바탕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주기적인 평가도 없다며 “희망하는 전공과목조차 인턴수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턴제 전면 개편해야” 2년 수련 후 일차진료면허 부여 제안
이에 인턴제를 유지하되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단기적으로는 실태조사를 통해 인턴 교육목표와 술기를 보완하고 교육과정과 평가방법, 교수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의대 졸업 후 ‘의사 가면허’를 받아 인턴 과정 1년을 마쳐야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그 이후 내과와 외과 계열로 나눠 1년 더 수련교육을 받아야 일차진료면허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결국 의대를 졸업하고 개원하려면 인턴 수련 2년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전공의 과정을 3년으로 단축한다.
이 위원장은 국가 지원을 강조하며 “국가 차원에서 의사면허체계를 재검토하고 국가 주도 인턴수련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의평원 졸업후교육위원회 위원인 가톨릭의대 응급의학과 김영민 교수는 교육을 담당할 ‘임상교육전문가(CE)’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행 인턴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재원인데 당연히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인턴제 개편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질 관리도 되려면 그 프로그램을 이끄는 임상교육전문가가 필요하다. 또한 독립적인 평가인증기구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턴 남의 자식 취급하는 나라에서 2년 늘린다고 해결 안돼”
‘인턴 2년제’ 도입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차라리 인턴제를 폐지하자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승원 부회장(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4년차)은 인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현재 의대 실습교육과정은 전문의 수련교육과정에 상당 부분 기생하고 있다. 인턴 수련교육은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각각의 교육과정이 독립된 인격체로 작동해야 하는데 지금은 분리, 개별화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전공의들한테 인턴, 학생 교육 일부가 맡겨져 있는 현실에서 새로운 인턴 수련교육 과정이 도입한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 부회장은 “일차진료의사를 재정의하고 이를 위한 교육과정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의대 교육 과정을 정립하고 동시에 인턴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수련의 교육과정을 신설해야 한다”며 “반대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이를 지탱할 수 있는 재원을 같이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 교육할 수 있는 인프라와 지원을 정부가 책임져야 바뀐다. 정부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영미 학술이사(고려의대)도 인턴 2년제에 “비관적”이라고 했다. 이 이사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을지 걱정된다. 교육 소유권이 아직도 의국 중심이고 인턴은 남의 자식 취급하는 나라에서 인턴 수련 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1년을 공통교육으로 했을 때 과연 그 공통교육을 누가할지, 교육 주체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며 “인턴제를 없애도 학생들에게 가면허를 줘서 적극적으로 주치의 역할을 하는 안이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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