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發 자가진단키트 도입 논란
대통령 주재 회의서도 활용 방안 논의
실제 임상서 민감도 17.5% 불과
美CDC “검사 반복해도 민감도 향상 안돼”
서울시에 이어 정부도 자가진단키트 도입을 추진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구멍이 뚫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유흥업소 등의 영업시간 연장을 위해 자가진단키트 도입을 촉구한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도 자가진단키트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자가진단키트는 민감도(sensitivity)가 낮아 선별검사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신속항원검사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가진단키트 도입이 오히려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이다.
신속항원검사의 민감도가 낮아 위음성(가짜음성)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감도는 양성을 양성으로 판단할 확률을 말한다. 민감도가 낮은 검사는 위음성이 나올 확률이 높다.
실제 임상에서 신속항원검사 민감도 17.5% 불과
서울대병원 연구진이 지난 1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환자 98명을 대상으로 1인당 검체 2개를 채취해 RT-PCR과 신속항원검사를 모두 실시한 후 비교했다. 그 결과, 신속항원검사의 민감도는 RT-PCR 대비 17.5%에 불과했다. 사용된 진단키트는 국내 1호 신속항원진단키트인 에스디바이오센서의 ‘STANDARD Q COVID-19 Ag Test’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가 지난해 12월 검체 680개로 같은 신속항원진단키트를 검증한 결과에서도 민감도는 29%로 낮았다.
위양성(가짜 양성) 비율도 높다. 12일 기준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진행된 신속항원검사 1만8,289건 중 양성으로 나온 48건에 대해 RT-PCR 검사를 실시한 결과, 33.3%인 16건이 위양성이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자가진단키트로 반복 검사를 지속하면 낮은 민감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과 영국,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자가진단키트를 도입해 방역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노래연습장 등에서 신속항원진단키트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자가진단키트의 낮은 민감도를 반복적인 검사로 보완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가진단키트 도입 요구가 이어지자 “써보고 집단감염 사태를 겪어야 조용해질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서울시가 자가진단키트 도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 4명 중 3명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美CDC “신속항원검사 반복해도 민감도 향상되지 않아”
신속항원검사를 반복적으로 실시한다고 해서 민감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위스콘신 주에서 지난해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까지 한달 동안 2,110명을 대상으로 신속항원검사를 반복 수행한 결과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medRxiv’에 발표했다. 사용된 신속항원진단키트는 애보트의 ‘BinaxNOW’다.
그 결과, 신속항원검사의 민감도는 RT-PCR 대비 77.2%였다. 연구진은 그러나 반복된 신속항원검사로 민감도는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고 했다.
진단검사의학회 코로나19 대응 TF 팀장인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신속항원검사에서 위음성이 나오는 이유는 검출 한계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평가 결과에 따르면 실시간 RT-PCR 검사는 바이러스가 180~1,000개 정도면 검출 가능하고 엑스퍼트 익스프레스(Xpert Xpress)처럼 진화된 플랫폼을 갖고 있는 신속 RT-PCR은 5,800개 정도면 가능하다”며 “반면 국내에 출시된 신속항원검사는 바이러스 200만개가 있어야 검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위음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속항원검사가 위음성 문제를 극복하려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을 때인 증상 발현 5일 이내에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증상 발현이 언제 나타났는지 애매해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검사를 반복하면 민감도가 올라간다고 하는데 코로나19는 증상이 나타나기 2일 전부터 바이러스 배출량이 올라가고 증상이 나타나면 급격히 떨어진다. (증상이 지나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낮아지기 때문에) 신속항원검사를 며칠 동안 반복한다고 해서 민감도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의 경우 바이러스 배출량과 감염력은 별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위음성이 나올 정도로 바이러스 배출량이 적다고 해서 감염력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외국 사례만 봐도 항원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서도 세포배양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는 비율이 20~30% 정도다. 그 사람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며 “더군다나 노래연습장처럼 고위험시설에서 위음성 확률이 높은 검사를 실시하면 오히려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가진단키트 도입국들, 코로나19 방역 점수는?
자가진단키트를 도입한 미국과 영국,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가 코로나19 방역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 블룸버그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3월 코로나19 회복력 순위(Covid Resilience Ranking)’에 따르면 한국은 평가 대상 53개국 중 6위다. 반면 오 시장이 자가진단키트 도입 국가로 꼽은 미국, 영국,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는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체코는 53개국 중 52위이며 미국은 21위, 독일 23위, 영국 25위, 오스트리아 26위였다.
이 교수는 “서울시에서 거론한 국가들의 최근 코로나19 방역 상태를 봐야 한다. 방역을 잘하는 국가들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수십배에서 수백배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가진단키트를 도입한 것”이라며 “방역 성적만 놓고 보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왜 그런 나라들을 따라가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가진단키트를 도입한 미국에서도 바(BAR)를 열었다가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사례가 CDC ‘질병 발병·사망 주간 보고서’(MMWR) 등에 보고됐다”며 “자가진단키트로 나온 결과가 위음성임에도 진짜 음성인 줄 알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마시러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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